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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키키 Apr 20. 2020

떡볶이

이렇게 쉬웠어?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유행 때문에 아이를 3주째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라 어쩔 수 없이 할머니의 도움을 요청했다. 장모님은 하필 감기에 걸리셔서(다행히 코로나 진단에서는 음성이었다) 도와주시지 못하고 대신 엄마가 우리 집에서 숙식을 하며 아이를 돌봐 주시기로 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갈 필요도 없이 바로 퇴근하면 엄마와 아이가 기다리고 있어서 그리고 엄마가 집에 있는 재료로 요리까지 해주시니 퇴근 후 엄마가 해주는 집밥까지 먹게 되어 좋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고 엄마도 점점 힘들어 지자, 엄마도 내가 퇴근하기 만을 기다리시는 듯했다(참고로 아내는 퇴근이 좀 늦다. 보통 아홉 시). 육아로 힘들어하시는 엄마한테 밥 차려 달라고 하기는 미안해서 내가 집에 있는 반찬을 꺼내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배달 음식을 굉장히 싫어하신다. 소화가 잘 안된다고 하시는데 그 보다는 냉장고에 먹을 음식이 있는 것을 못 참아하신다. 어릴 적에도 집에 거의 먹을게 김치 정도밖에 남지 않아야지 통닭 한 마리를 시켜 먹을 수 있었다. 엄마가 집에 오래 계시자, 우리 집 살림에 손을 대시기 시작했다. 먼저 냉장고 정리를 하시기 시작했다. 엄마는 잔소리와 함께 냉장고 속 유물들을 마구 꺼내셨다. 마치 '냉장고를 부탁해'의 게스트가 된 듯했다. 냉장고 맨 위에 칸에는 냉동식품과 함께 보내지는 포장 얼음만 한 가득 있었다. 식재료들은 이곳저곳 분산되어 있었다. 떡볶이 재료들은 냉동실 둘째 칸 그리고 맨 아래칸에 동시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엄마가 냉장고 청소를 해주셔서 땡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며느리들이 '극혐'하는 것이라는 것은 나중에 여동생이 이야기해줬을 때 알았다. 


금요일 저녁 엄마의 육퇴를 기념하여 통닭을 시켜먹자고 제안을 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집에 있는 거 먹자고 하셨다. 나는 엄마의 뜻에 따라 떡볶이 재료가 많으니 떡볶이를 해 먹자고 했다. 보통 때였으면 '떡볶이를 해 먹자'가 아닌 '떡볶이 만들어 줘'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3주 동안 애 본다고 집에만 콕 박혀서 고생한 엄마에게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바로 검색창에 '백종원 떡볶이'를 입력하고 레시피를 숙지했다. 생각보다 쉬웠다. 


먼저 떡볶이 국물을 만들 육수를 만들었다. 물 양은 떡볶이 내용물만큼. 더 넣으면 국물 떡볶이가 되겠지. 냉동실의 다시마와 멸치를 꺼내서 넣으려고 하는데 엄마는 멸치는 너무 오래되어 냄새가 난다고 하셔서 뺐다. 냉동된 떡은 물에 불려 놓았다. 물에 불릴 때 설탕을 한 숟갈 넣었다. 그리고 물이 팔팔 끓자 고추장 한 숟갈, 간장 반 숟갈, 설탕 두 숟갈, 고춧가루 두 숟갈 그리고 물에 불려둔 떡볶이를 넣고 끓인다. 살살 저어주다가 뭔가 그렇듯한 모양새가 갖추어지면 어묵과 썰어놓은 대파를 집어넣고 조금만 더 끓이면 된다. 



떡볶이가 만드는 법이 이렇게 간단할 줄이야! 아내가 잘하는 음식 중 하나가 떡볶이였는데 앞으로는 내가 굳이 자존심을 구겨가며 아내한테 떡볶이를 만들어 달라고 애걸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떡볶이 맛을 봤는데 깜짝 놀랐다. 냉장고 재료 소진을 목적으로, 맛없으면 버린다는 생각으로 만든 나의 첫 떡볶이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고춧가루 두 숟갈을 넣어 약간 매웠지만 첫 요리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다음에 또 한다면 멸치를 넣어 육수를 좀 더 맛있게 만들고, 많다 싶을 정도로 파를 많이 넣고.


요리를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다. 말기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아내를 위해 그리고 아이를 위해 요리를 만들어 주는 남편이 쓴 이야기인데. 담담하게 쓴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눈물 한 방울이 책 위에 떨어져 있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아내를 위해 아이를 위해 몇 가지 요리는 할 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2년 전이다.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2년이 걸리다니. 



올해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 되면 도대체 뭐를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새로운 취미? 건강을 위해 운동? 아니면 인문학 소양을 기르기 위해 논어?('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때'라는 책이 있다;;) 두 달이 넘게 이런저런 고민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떡볶이를 만들어 보니 진작 해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아내와 아이를 위한 요리를 한번 만들어 볼 생각이다. 그리고 그 과정-과정이기보다는 음식을 만들면서 느낀 나의 감정과 생각을 기록해 보고 싶다. 사실 벌써 다음에 무슨 요리를 해야 되나 벌써 걱정이 되긴 하지만 나의 성공적인 첫 요리 떡볶이를 떠올리며 자신감을 얻고 싶다. 


해보니 생각보다 쉽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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