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없이 부족한 시간, 전략 또 전략
5월이 되자 집 주변의 독서실을 등록하고 비상체제로 돌입했다. 인강을 돌렸던 과목들의 복습부터 시작했는데 처음 들었던 감정은, <아는 것이 없다>였다. 복습과 교재 회독을 사정상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이 없는> 느낌이었다.
모든 걸 다시 제로라고 생각하고 해야 했다. 솔직히 1차 시험은 짧은 공부 기간이어도 어쩌면 가능할 것이라고 봤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도 그 합격한 인터넷상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5월 교재를 다시 펴 보니 아쉽고 부족한 공부량으로 지나버린 지난 2개월과 마침내 full로 주어진 한 달이라는 시간은 물리적으로 범위를 커버만 하는데도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5월 1주 차 안에는 노동법 1,2를 한번 쭉 처음부터 끝까지 1 회독을 돌리는 걸 목표로 했고 2주 차에는 민법과 경영학의 회독을 시작하기로 했다. 시험일의 2주 전에 사회보험법을 시작하는 것으로 계획하였는데 아무리 휘발성이 강하고 분량이 적다 해도 전문직 1차 시험의 엄연한 1과목을 2주 전에 시작한다는 것이 꽤나 불안했다.
하지만, 사회보험법을 미리 시작할 정도로 나머지 과목의 공부가 되어 있는 상태가 도무지 아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무척이나 불안했다.
공부와 별개로 나의 생계에는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지만, 퇴사를 하자마자 괜찮은 회사에서 면접 기회가 왔고, 조금이라도 면접을 준비하고 참석하는 시간들까지 생겨나면서 더 시간이 촉박하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전략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껏 100점을 목표로 하는 시험만을 준비해 왔다 보니 생소했지만 모든 전문직 시험은 전 과목 평균 60점을 맞고 한 과목이 40점 기준인 과락만 면하면 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모든 범위, 모든 내용을 다 알고 들어가야 하는 100점짜리 목표 시험과 달리 얕고 넓게 60점만 맞도록 준비하는 부분을 연습해야 했는데, 어차피 시간이 부족하여 전 범위를 커버할 수 없는 나로서는 익숙하진 않았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범위를 보는 것을 포기하고 버릴 부분은 과감히 버리는 선택이 필요했다.
결국 노동법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과목들에서는 6~7문제씩 출제되는 범위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공부한 범위를 만에 하나 다 맞는다면 18-19문제, 70점대 이상 득점이 가능하게끔 만들어 놓고, 그 공부한 범위들도 완벽하지 않으니 몇 문제 더 틀린다는 전략을 세우게 되었다.
만약 일부과목이 예상보다 더 틀리게 되어 60점 밑으로 간다 해도 전 범위를 커버한 노동법 1,2의 2과목을 7-80점씩 득점하여 평균값으로 상쇄하자는 게 내 계획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어느 정도 머릿속에 정리가 되어가던 노동법을 전략과목으로 삼아 시간을 더 투자하기도 했다.
시험이 1주 정도 남자, 지난 기출문제급 난이도로만 시험이 출제된다면 자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25문제 체제의 ‘마지막’ 시험인 올해에 난이도가 급상승할 것이라는 것이 정론이었다.
강사님들도 그래서 이전 시험보다 더 많은 범위를 강의로 준비시켰다.
지난 기출급 난이도 문제들과 새로이 어렵게 나와 탈락을 좌지우지할 킬러 난이도 문항 몇 가지 가운데 60점을 사수하느냐 마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렇게 5월 27일, 나는 시험장으로 향했다.
독서실을 통학하며 자주 들었던 생각이, 내가 지금 이 나이, 이 연차에 공부를 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었는데 시험장에 들어가니 제법 나이 지긋한 중년 수험생 분들이 꽤나 보였고 내가 ‘늦은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괜스레 위안되기도 했다.
시험장에 앉아 칠판에 쓰여있는 ‘공인노무사 시험’이라는 문구를 보며 무척이나 짧아서 내세우기 창피할 정도인 지난 ‘3개월’이란 공부 시간을 떠올렸다.
1차 시험이지만 이것을 시작으로 2차 시험으로 나아갈 것이라 생각하니 대학입시 이후로 이렇게 큰 시험을 치러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지금은 고작 1 차지만 여하튼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고 이것은 결국 내 인생의 아주 큰 시험의 첫 시작과 다름없었다. 내 직업을 바꿔줄 수 있는, 우울로부터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기도 했다.
더 제대로 노력해야 할, 더 커다란 부담을 안겨 줄 2차 최종 시험도 어찌 됐던 이 날의 1차 시험을 넘겨야 응시가 가능했다.
문제 풀이는 휘발성이 강한 ‘사회보험법’부터 시작했는데 첫 과목부터 멘붕이었다. 기출문제급에서 나오지 않던 난이도에 듣도 보도 못한 범위에서 문제들이 튀어나왔다. 최악은 매년 4문제 정도 출제되어 버리는 범위에 속했던 국민연금, 보험 파트가 노무사 시험 최초로 6문제 출제되었다.
경영학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전에 출제되지 않았고 준비되지 않은 범위에서 문제들이 속출했다. 처음 두 과목을 풀이하며 확실하게, 이번부터 탈락자를 늘리려는 전략이라는 것이 딱 느껴졌고 이 두 과목에 대해 과락까지 걱정될 지경이었다.
멘털이 잡힌 건 전략과목으로 생각했던 노동법을 풀이하면서부터였다. 노동법 2과목과 민법은 내가 준비하고 생각한 수준 안에서 문제가 나온 느낌이었다. 민법은 준비한 대로 60점, 노동법은 1,2 모두 7-80점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사회보험범과 경영학이 과락만 면한다면 그리고, 노동법 고득점으로 평균점수를 상쇄한다면… <이거 가능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얼마 안 지나 나온 가답안을 통한 가채점 결과는,
예상외로 전 과목 60점 이상 득점, 노동법 1,2는 모두 80점 이상을 맞아
결국 총 평균 약 70점을 넘겼고,
그렇게 노무사 1차 시험에 합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