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을 쓰기 시작하며 - 출근길의 주문
보잘것없는 내가 글을 쓴다면 어떤 글을 쓰게 될까.
독립출판을 할 때쯤이면 정말 근사한, 까지는 아니더라도 뭐라도 된 30대 전문직 여성이 되어있을 거라고 막연히 상상해왔다. 삶을 녹여내 글을 써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떳떳하고, 배울 만하며 매력 있는.
아직 퇴사를 바라보며 하루들을 버텨내는 나에게, 언젠가인 그날까지의 삶이 너무나 막막해서 일단 글을 쓰기로 했다. 뭘 쓸 수 있을까. 일기장의 작은 칸을 다 채우고도 흘러 남는 하루들의 감정을 담기로 한다.
요즘 나는 너무나 불안하다. 정신적 과잉 활동 상태이다.
매너리즘에 빠지면서도 매일 새로운 이슈를 다루고 시간에 쫓기는 일의 특성상 정신이 바쁘다. 할 일이 없어 몸이 놀아도 감정이 바쁘다. 사람과의 관계가 매상 떨리지만, 끔찍이도 싫어하는 타인의 일상에 개입하는 일을 한다. 때론 성가시게 하거나, 감춰둔 본인의 명예 또는 상처를 만인에게 재가공해 보여준다. 보람될 때가 많은 일이지만, 진심이 닿는다기 보단 회사와 맞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뿐이다.
난 아직도 매사 어색하고, 어설프고. 항상 거북스럽다.
나를 위한 출근길의 주문들을 만든다. 월요병이 점점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글처럼 마디로 센다면, 한두 마디의 의미 없는 생각 사이에 불안한 회사에서의 내 모습이 불쑥불쑥 끼어들기 때문이다. 고작 한두 마디를 걸러서 말이다. 평안하고 안온하게 보내야 할 일요일을 그렇게 날린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하나씩 이성적으로, 또는 거시적으로 나의 존재와 내가 신경 쓰는 작은 사회의 존재를 미미하게 만들어 내버린다. 방 스위치를 끄는 것처럼 달칵, 생각의 방을 암전 시킨다.
오늘 찾은 출근길의 주문들은 바로 이렇다.
- 내가 고통스럽게도 인정받으려(평타는 치기 위하여) 버둥대는 이 사회는 고작 20명 안팎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디작은 이 사회 속에서 난 내 단출함을 감추려 얼마나 개헤엄을 쳐댔나. 그만하면 됐다. 어차피 잘 볼 사람은 실수로 넘기고, 못 볼 사람은 나를 그런 사람으로 알 뿐이다. 그게 나는 아니니까.
- 나에게 하는 '조언'만 받아들일 것. '감정'까지 받아들이는 건 무리.
- 내가 감당해야 할 몫보다 추가되는 기대를 거절할 권리가 있다.
- 해야 될 말은 해야 한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말끝을 흐릴 필요 없다.
- 수요일이 가고, 다음 주도 갈 것이고, 둘째 주도 결국 갈 것이다. 하루하루 그 상황에 집중해 해결하면 된다. 곧 벚꽃도 나 몰래 필 것이다. 회사 밖에서도 시간은 간다. 난 편의점 아르바이트 시절에도 매일 손님맞이가 떨렸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출장날 전날도 편히 잠을 지새우지 못했지. 그래도 하루들은 다 지나간다. 내 두근거림은 나만 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순간 긴장한다. 내게도 떨려한다.
내 두근거림은, 나에게만 신경 쓰이는 것. 내 일을 해결하는 건 내 몫이다.
- 사람들의 평가보다 일, 내일보다 오늘에 더 충실할 것.
이런 주문마저 안 통할 땐, 내게 두려운 사람들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본능적이고, 기본적인 욕구를 따르는 인간이라는 생물 그 자체로의 모습들. 계급과 권력을 다 떠나 태초와 가까워지면 그 또한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마저도 효과가 오래가지는 않는다.
결국 해결법은 닥치는 날들에 무참히 찢어발겨지더라도 살아내는 것뿐.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외강(을 추구하는)초내유의 20대 심약자, 개쫄보가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이야기. 옛날 일기들을 참고해서, 매일이 생각과 고민이 많던 내게 그때의 고민과 불안은 사실 먼지 한 톨만큼 지금 보면 개지지리도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내게 말해주면서 이 시기도 결국 지나갈 것이리라. 매일 부담스러웠던 하루들이 사실 좀 더 용기 내서 살아봄직한 하루들이었다고 최소한 내게 위안을 주는 글을 써보기로 한다. 부디, 꾸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