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년 전 대학생 신분일 때만 해도 나는
2018.03.01-2018.03.07에 촬영한 55장의...
네이버 MY BOX·by 3년 전 오늘
무심코 열어본 알림함에 와있던 소식. 네이버 클라우드는 마이박스로 이름을 바꿨나 보더라. 열어보니 다짜고짜 슬라이드가 시작됐다. 맘에 안 드는 약간 촌스러운 배경음을 깔아줬는데, 빠르게 돌아가는 사진을 멈추는 법을 몰라서 그냥 그렇게 무참히 추억에 발가벗겨져 버렸다.
친구가 해줬던 미역국부터, A4용지에 과제로 그려냈던 나의 인생 곡선 그래프를 찍어둔 사진,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난 그와 친구였을 적의 사진도 있었고, 지금보다 훨씬 긴 머리의, 붙는 옷을 입고, 볼드한 귀걸이에 화장까지 한 내 모습이 있었다. 불편했고, 날씬했고, 지금보단 더 채도가 있는. 생기 있는 웃음을 띠고.
그리고 지금도 좋아하는 풍경들, 텅 빈 배드민턴장, 시청 위 하늘, 안갯속 도로 등을 찍은 사진들이 있었고, 어둑한 조명에 인디 가수들의 노래를 방방 틀던 작은 펍 내부라든지, 맥주, 오돌뼈..친구들과 노래방을 갔던 때의 동영상도 짤막짤막 재생돼 자동으로 웃음이 새나왔다. 지금도 좋아하는 식당에서 먹은 치즈케익과 와인, 또 다른 낮의 순대국밥 사진도(먹을 건 오지게 먹고 찍어댔다). 마지막으로 이젠 절교해서 안 보기로 한 두 친구 사이에 얼굴을 붙이며 찍은 사진이 있었다. 트리오로 몰려다녔던 우리. 두 친구 사이 눈을 한껏 찡그리고 볼이 찡긴 작은 스티커 사진에서 나에겐 둘도, 그때의 나도 애틋하게 다가와서 다시 사진을 캡처해뒀다.
대학생일 때가 참 좋았지, 싶지만 그때의 나도 사실 갈등과 이슈가 없었을 뿐 삶이 참 재미없고, 고민도 많았고, 관계에 지금보다 훨씬 치이며 살았다. 지금도 습관처럼 조용히 숨죽여 울지만 3년 전만 해도 꺽꺽대고 소리치며 울 때가 있을 정도로 솔직했고. 지금과 같이 '뭐 해먹고 살지'가 매일의 관심사이자 한숨거리였다.
국어교육 전공에서 언론홍보학과로 복수 전공을 선택한 뒤, 무서움 반, 존경 반으로 따랐던 광고 수업 교수님께 내 인생곡선 그래프(과제)를 제출하러 사무실에 갔었다. 그때 날 바라보던 그 눈빛이 엄마와 겹쳐서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는 약간의 오지랖과 같은 호구조사를 하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홀로 이 일을 하신다ㅡ익숙해지지 않는 가족 얘기를 마쳤을 때, 교수님이 뭐라셨더라. 자세히는 아니지만 '얼른 돈을 벌어 어머니를 도와드려야겠구나'와 비슷한 맥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좋았다. 나에게 매일 속삭였던 '나는 얼른 취업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해'와 상통하는 말씀을 하셨다. 영어 공부 많이 하고, 외국계 광고 회사를 준비해보라고 하셨다. 추후에 기자가 되어 지역 언론사에 들어갔단 얘길 듣고선 왜 프롤레타리아가 됐냐고 하셨더랬다. 역시 취업준비와 영어 공부를 좀 더 할 걸 그랬을까. 허허.
3년 전 그린 인생 이력서의 2019년 이후 모습은 이랬다.
- 취업과 안정화&전문화
- 고양이 입양하기(2030)
- 직접 인테리어 한 깔끔한 집에서 엄마와 함께 살기(2043)
- 어떤 일의 전문가가 될 것(2043)
-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2043)
역시나 고양이. 고양이 없는 삶이지만 내 미래엔 항상 고양이가 있다. 그냥 생각만 해도 행복하니까! 그 감촉과 눈빛은 사랑이 아닌가. 아무튼. 뭔가는 써야겠고, 확실치도 않는데 구체적으로 썼다간 민망하거나 수틀릴까봐 뭉뚱그려서 적어둔 게 지금의 나와 판박이다. 나는 내 미래와 얼마나 닮아가고 있을까.
3년 차 직장인에게 안정성과 전문성은 조금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건 '기자'로서는 아니다. 직접 법과 관행에 맞붙는 탐사보도지를 보고, 디지털 성범죄를 끝까지 주시하는 추적단 불꽃을 보고, 유퀴즈에 나온 진기주 배우가 기자 수습 시절 해왔다는 일들을 보며. 또 사회부 여러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역시 내가 생각하는 기자와는 아예 다른 종처럼 느껴진다. 많이 부족하다. 같은 배를 타고 있지만, 직접 발로 뛰지 않고, 몸은 무거워진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아직 무섭다. 아니, 사실 점점 무섭다. 물론 닥치면 한다. 떨림은 사람을 통해 극복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를 위해 다시 귀와 맘을 닫는다.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섭외 연락을 한다. 내일도 한 사람의 생애를 요약해 담는 인터뷰를 하게 된다. "그런 거 안해요", 하시는 분들의 거절에 내 맘은 늘상 무뎌지지 않고 물렁대기에, 섭외 전화만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매일이었다. 남형도 기자의 ['거절 당하기' 50번..두려움을 깼다] 기사 링크를 품고 눈 딱 감고 통화를 했다. "네, 할게요." 말씀해주시던 사장님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뭐든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일단 제대로 된 질문지를 생각해두고 자야지. 내일은 인터뷰와 당직이 모두 잡힌 날이다. 맘이 불쑥불쑥 떨리고..금요일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베개에 얼굴을 묻을 것이다.
그래도, 잘 마칠 거다.
주문이다. 3년 전 내게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심드렁하게 하기 힘들고 싫은 일을 해내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어떤 일들은, 특히 어떤 관계는 해도 해도 맘이 물러터져버리지만 결국 이 시간이 갈 거란 걸 잘 안다. 그조차 모르고 싶을 정도로 포기가 고플 땐 정말 용기 내서 포기하면 된다.
큰소리 한번씩 들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울음이 차올랐던 1년 차엔 맘 둘 곳 없이 갈곳도 없이 그 모든 조언과 감정을 받아들이기가 참 어려웠다. 그래서 매일 이 동아줄을 버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다녔다. 사실 내가 놓으면 다 놓일 인연이고, 일이니까. 정말 힘들면 당연히 그래도 된다. 그럴 만하고, 그럴 수 있다. 그렇게 내 맘을 다독이다 보면 저 속에 남아있던 오기가 무던함을 낳았다. 적어도 묵묵히, 기대하지 않고, 요령피우지 않고 제할일을 하는 사람이 됐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충분히 행복하지는 못하고, 더 열심히 살아갈 열정은 부족해서. 내가 힘내서 오래 할 수 있고, 진심을 다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오늘을 살아내보려고 한다. 담담하게 기초반인 지금을 되새겨보는 2030년의 (고양이와 함께하는) 내가 있었으면. 질문지 얼른 준비하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