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슬아슬하게 다시 유예된 불안함
시간은 흘러 다시 금요일 밤이다. 벌써 새벽이니 토요일이다. 주말이 가는 게 아쉬울 따름.
불안함이 엄습했던 한 주의 시작, 나의 감정은 '이대로는 안돼.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냐'는 자책과'그래서 뭐, 나는 잘하고 있다' 사이를 계속 오가고 있다. 저번 주말에는 이번주에 회사에서 할 일과 별개로 글, 운동, 일러스트 그리기 등 할 일이 참 많았는데, 지친 나를 돌본다는 명목 하에 저녁은 잘 쉬었다. 일기도 쓰지 않고.
감정을 정돈할 수 있는 틈이 난 이 시간이, 조금은 눈물겨울 정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최근 일을 시작했다. 바쁘게 열정적인 신입 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런 탓에 많이 이쁨을 받는지, 일도 몰아 받기도 하고 업무상 바쁜 시기라 폭풍같은 시기를 보내는 모양이다. 일을 하면서 먼저 사회생활을 겪은 내 생각이 많이 난다던데, 나도 내 신입 시절을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그래봤자 3년차이지만, 많이 발전했다.
그때의 나는 취재 일정이 생기면 한 주 전부터 떨리고, 작은 호통에 눈물짓고, 금세 맘 주고, 정 주고, 데이고, 정 떼고 그랬다. 그렇다면 지금은? 큰 호통에 정 떼고, 작은 호통에 정 떼고. 잔잔히 작은 위로와 힘을 주는 동료들에게 여유몫의 정을 준다. 의지하기 위한 정보단 내 몫의 일을 잘해내고, 여유치의 정을 나누는 것이 모두에게 더 좋은 일이다, 적어도 회사에서는. 나는 그렇게 정의 양을 나눠쓸 줄 아는 쓸쓸한 어른이 됐다.
우리 회사는 아침마다 구성원들이 모여 일정 보고를 한다. 업계에선 유일하다나.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관제탑 역할을 하는 대표자가 일정을 빠짐없이 체크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일테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일을 만들어 내야한다는 압박도 준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더 부담스럽고, 매일 아침 출근길엔 생각이 많아진다. 일정 보고에 빠진 내용이 있다거나, 아이디어 보고가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니다보니 자의적으로 만든 일정에 태클이 걸려들어올 위험부담이 있다. 결국 안정적인 아이템을 가져가게 되는 까닭이다.
가치지향적이며, 아름다운, 너무 새롭지 않은 그런 것으로. 정형적인 업무는 안정감과 매너리즘을 주고, 기획 업무는 약간의 무력감과 실패감, 간혹가다의 보람을 선사한다. 두 가지 일이 적당한 비율로 있으면 가장 좋지만 매일이 예상할 수 없게 흘러간다. 내일이 불안한 이유다.
수요일, 회사에 혼자남아 처음으로 당직을 섰다. 매주 영상을 만들고, 이미지를 제작하거나, 회사일과 관련해 디자인 업무를 주로 맡으며, 글도 쓰는 내 직함은 기자다. 출입처가 있고, 매일 새로운 기획과 이슈를 다루며 공격적으로 취재를 하는 선배 기자들과 다르게 뉴미디어 업무의 나는 항상 겉돌았기 때문에, 내가 '정통' 기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구성원 내 유일한 여성이라는 점이 사실 큰 무력감을 선사했다. 관계를 무르익게 하는 술자리에 어울리고 싶지도, 잘 그럴 수도 없었으니까. 당직제와 무관한 부서였으나 출입처 개편으로 인해 서게 된 첫 당직. 부디 홀로 급박하게 처리해야할 사건사고가 터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안위를 바라본 적이 없다.
사건은 없었지만, 일한 것을 티내야하는 당직 일지를 채워내는 데 시간을 거의 다 썼다. 간단한 말들도 왜 이렇게 몰릴 땐 정리가 안되는지, 어설프지만 잘 마쳤다. 내 불안감의 앞 머리 정도는 다듬은 셈이다. 매달 중 한번은 사건이 터지리라. 그때는 선배가 말한 대로 '식은땀 흘리며' 겨우 잘 처리해 낼 것이고, 그 뒤로는 정말 '당직? 하면 하는거지' 마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구건조증이 심해진 요즘, 렌즈를 벗고 안경을 끼고 다니곤 한다. 영상 편집이든 바쁘게 처리해야할 일이 생기면 죽치고 몇 시간은 앉아 모니터와만 대화한다. 그 시간이 편하지만 전보다 나이가 드니 정말 눈이 시려 눈물이 나는 지경에 도달했다. 눈 앞이 뿌연 게 정말 말 그대로 그랬구나 한다. 건조증과 더불어 피곤함에 눈을 반쯤 뜨고 다닌다. 가끔 화장실에 가도 얼굴을 그렇게 자세히 보려고 하질 않게 된다. 주말은 바로 거울을 볼 수 있는 시기다. 꾸며서가 아니라, 눈을 제대로 뜰 수 있는 불꽃같은 생기가 드는 시간. 간만에 내 얼굴을 마주보고 고생했다 말해줄 수 있는 이 시간이 아릿하게 반가운 이유다. 나라도 내 얼굴을 봐줘야 하는데, 내가 자꾸 그걸 잊고 살아간다. 다시 한 주를 시작할 마음을 먹어본다. 내일은 카페를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