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든 것이 불태워 지기 전에
미나리를 봤다. 같이 본 내 연인과 꽤 긴 토론을 나눴다. 서로 이해한 영역이, 공감의 영역이 참 달랐다.
그는 상황이 어떻든 가족이, 서로에게 서로가 구원이 되길 바라는 여주인공의 말에 더욱 공감했고, 나는 자신이 모든 것 쏟아부은 농사의 결실을 맺고자 고군분투하는 남주인공의 마음에 더 이입했다. 아들의 병이 절로 거의 완치가 됐고, 농사도 빚을 많이 냈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그 시기, 쌓였던 불안과 불만이 극에 달한다. 여주인공은 더는 못할 것 같다는 결단을 내리고, 남주인공도 결국 수긍한다.
'믿고 기다린 만큼 가족을 위해 한번쯤 놓고, 돌아봐주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밑거름은 가족이니까.'
'조금만 더 믿고 기다려 준다면 이제 정말 결실을 낼 수 있을 텐데. 그때면 가족들에게도 내가 떳떳할 수 있을 거야.'
서로의 마지막 기대가 저버려지던 순간인 것이다.
80년대 가장을 대표한 꽉 막힌 남주가 농사에 몰두하며 허덕일 때의 그 허망한 눈길과 초조한 심정이 왜 자꾸 내 맘을 동하게 하는지. 그렇다고 애정도, 감정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고 잘되면 잘된 거지, 하는 결과론적인 그 태도를 지향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내가 그 모습을 닮아가고 있나 보다, 나도 모르게. 남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보다 더 부담감을 짊어지고, 순간들을 버티며 살고 있는 내 표정이 저런 얼굴일까-싶었다.
'사람은 낙원이 될 수 없다'
내게 항상 되뇌이던 말이다. 회피형 인간의 자기방어 기제다.
나는 당연하게도 사람없이 못 살지만, 사람을 낙원으로 두어서는 쉽게 무너지는 나를 감당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너무나 쉽게 떠나거나, 사라졌다. 움직이지 않는, 배신하지 않는 것들에 몰두하게 된다. 그게 바로 나였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들이었고. 책이었고. 자산이었고. 내가 기른 능력들이었다. 자신에게 낙원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히 사람을 들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길 거라 생각했다. 아직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날 회피형 인간으로 만든 데 어느 정도 이바지했던 그를 다시 만나게 됐을 때. 그리고 드디어 헤어짐을 전제로 하지 않는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가게 된 지금, 나는 가끔 그와 내게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는 존재인가, 라는 유혹을 받는다. 지금처럼 변치않을 거란 생각, 서로의 애호로 가득 채운 예쁜 공간을 그리며...그런 행복함을 함께 꾸려갈 수 있을까. 이따금씩 솔깃해진다. 미래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 확신이 드는 한 가지는 내가 마지막 연애는 이 사람일 것이라는 점 정도. 지금도 새로운 연애를 생각하면 지리멸렬하고 고단하다. 헤어지면 나의 일상을 더욱 다지는 데 충실할 것만 같다. 사랑만큼이나 중요한 게 참 많아졌다.
그래도, 작게 바라본다면 서로의 구원이기 때문에 무언가 감수하고, 애써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지금처럼 선선한 바람이 드는, 서로에게 서로가 구원이라는 거창한 코멘트를 달지 않고 지금처럼 투닥대는 관계가 오래도록 지속됐으면 좋겠다. 사실 너는 벌써도 나를 구원했고, 구원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