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29
성당에서 축성된 성지를 들고 발걸음이 닿고 끌리는 대로 집시처럼 걸었다. 나의 서초동 순례길.
한예종 근처 흡연실 근처에서 쓰레기를 많이 주웠다.
그리고 기침이 나기 시작하니까 이제 나도 다시 금연을 해야겠다. 문제를 풀 때는 담배 도움이 필요한데, 지금은 거의 모든 퍼즐이 다 맞춰졌다. 이제는 그냥 쉬엄쉬엄 사탕이나 먹어가며 걸어야지.
찻집에서 자주 뵈었던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분을 괴롭히는 상사 꿀밤을 대신 때려 주러 가고 싶었다! 근데 어쩌면 그 사람은 예전의 나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김홍주 작가님께 인물사진 배울 때. 씨네 21에서 사람 좋기로 유명하고 우리나라 모든 배우들 사진은 다 찍으신. 내가 작가가 되면 프로필을 꼭 찍어주시겠다던 선생님이 작고하신 지 몇 년 지났다. 그분이 생전에 하신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회사 사람 하나가 유독 티를 내며 자신을 싫어했다. 그 미움에 미움으로 갚지 않고 선생님은 매일 가서 사랑합니다.라고 하거나 장미 한 송이를 두고 가셨다고. 그 사이 이 사람은 혼돈 속에 빠져 있었는데 한 달이 지난 후에는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서로 잘 지내게 되었다고. 선생님의 할머니는 항상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 ‘니 얼굴에서 빛이 난다 빛이 나’ 나는 이 두 말만 나오면 그냥 웃음이 났다.
그리고 또 하나 더. 회사 다닐 때. 내가 팀장일 때. 본부장님이 계속 바뀌거나 공석이거나 혼란이 많았는데. 어떤 본부장님이랑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그런데 같이 우동을 먹으러 다녀오면서 그분의 꿈이 뭔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작은 호텔을 경영하는 거라고 하셨다. 두 눈이 반짝거리면서 이미 호텔 카운터에서 키를 건네주는 미소를 짓고 계셨지. 그리고 세상을 떠난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니 대낮에 술도 없이 거리를 걷다가 50대 남성의 내적 고백과 눈물이라니. 매우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나는 괜찮았다. 아이구 그러셨구나. 마음이 안 됐다. 그다음 날 머랭쿠키를 주셨다. 편의점에서 파는 거였는데 내 입맛에는 별로였지만 좀 귀여우시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분은 그만두셨어.
내가 생존. 그럼 내가 이긴 건가? 그건 아니지.
어쨌든 상사는 상사 나름의 괴로움과 고충이 있기 때문에 그냥 불쌍하다 여기며 측은지심으로 보면 어떨지. 아니면 맞담배를 빡빡 피면서 여보쇼 나한테 진짜 왜 그러시는 거요.라고 하던지 배지기를 하거나 꿀밤을 딱 먹이며 냅다 들이박아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는데 생각만 해도 통쾌했다.
내가 때려 줄까?
그러면서 나의 지난날 부족함을 돌이켜 보게 되었네…
미안한 팀원들. 내가 그렇게 한 명 한 명 오직 일로써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사이 오해와 질투와 시기가 일어났던 일. 너무 당황스럽고 힘들었는데. 어쩌면 사랑일 지도 모르는 감정들.
무릎 꿇고 까진 뒤꿈치에 반창고를 발라주던 그 손길.
술자리에서 희롱하는 이사에게서
남자답게 지켜주고 먼저 택시를 태워 보내준 박력.
참 매력이 있었지.
그 외에도… 너무 착하고 깊고 섬세해서…
그리고 나를 배신해 버리고 여우에게 가버리고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었던 날들.
갑자기 떠나서 참 미안했는데. 나는 그냥 내 할 일을 다 끝내서. 더는 아파서 못할 상황이라 그만둔 건데. 다들 잘들 살겠지. 아무 미련은 없고. 그때 금일봉 백만 원을 받고 집에 가던 길에 내가 취한 줄 알고 팀원들이 하던 말들. 내가 다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하던 말들이 생각이 났다. 뭐 어려서 그런 거지. 여자가 자기 위에 있고 일을 시키니 자존심 때문에. 다 이해를 한다. 그리고 내가 잠시 사랑인가 착각했던 마음을 정리하게 해 줘서 다행이었고.
잠깐의 스침.
정혜경 작가님 전시회. 보고 영감 받음.
우나유에서 장어계란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