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천문. 간절한 소원.

by 곽소민

새벽에 덜 잔 잠을 털어내고 일어나

월요일에 했던 휄든크라이스 수업을 상기

선생님이 하셨던 말을 복기

눈을 감고 몸을 스캔했다.


놀랍게도 나는 꽈배기처럼 온몸을 잠그고

누워 있었다. 왜 그랬을까.

무엇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을까.

뭐가 아직 두려울까…

두려워할 건 이제 없는데.

의심금물.

불안과 의심은 불안과 의심의 상황을

현실로 강하게 끌어당길 뿐.

의식전환하기!


떠있는 내 몸은 모두 중력에 버티는 중이었다.

몸을 전부 풀고

인체해부도처럼 몸을 연다는 느낌으로 다시 누웠다.

몸이 바닥과 닿는 면들이 많을수록

그냥 중력에 내 몸을 내맡길수록 편안했다.


정좌하고 창문을 열고 명상을 했다.

새로 짓고 있는 아파트 공사장 소리가 들렸지만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아파트 짓느라 한 없이 베어진 오래된 나무들과

나무를 떠난 새소리를 더는 그리워하지 않았다.

새들은 다시 돌아온다.


거짓말처럼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기리야마 본진에서 우동을 먹을 계획.

만우절 4월 1일. 장국영이 떠난 날.

패왕별희 보러 가야되는 날.

류이치 사카모토의 다이어리도 예매했다.

모두 슬플 텐데. 내게 이로울까? 득이 될까?

요새 유튜브도 티브이도 넷플릭스도 보지 않으면서.

그렇게 어느 것도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작가님께 마지막으로 작업을 해서 드려야 해서

류이치 사카모토 다큐는 보지 못하고.


지유에 가서 선생님께 오늘 몸이 이래요 좀 도와주세요.

말을 하려는데 지유가 아직 문을 안 열어서

샘 좋아하시는 까눌레를 사러 메종조에 갔다.

누군가 나를 뒤에서 잦으며 등을 쳐서 너무 깜짝 놀랐다. 마젠타 색 옷을 입으신 간호사 선생님. 제 몸을 그렇게 갑자기 치거나… 손을 대거나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말은 또 직접 못 하고. 옷 색깔이 잘 받는다고 얼굴이 환하시다는 말만 했다. 그 말도 진실이기 때문.


놀라서 그런지 더 식은땀이 났고 이마를 타고 땀이 계속 흘렀다.

샘 일 하기 또 싫다 하실까 봐 이거 사 왔죠 했지.

근데 내가 살려고 간 거니까. 샘이 요새 나 때문에 피곤하신 걸 안다.

그래서 지유에 도착해서 태연한 듯 주시는 차를

잠자코 마셨다.

영화 보러 가려면 몇 시에 일어날까 시간도 봐가면서. 우동집도 갈거라고 정보도 드리면서. 날씨 이야기도 하면서… 평범한 대화를 그냥 나누고 싶었다 나도.


그런데 한 사십분쯤 차를 마시다가

갑자기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속이 지금 너무 좋지 않다고 집에 가야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왜 어제 맥주 마시고 치킨 먹었냐고 하셨다

빨리 화장실에서 토하고 오라고 하셔서… 죽염을 좀 먹었고

차를 꾸준히 마시다 보면 이런 시기가 온다고 말했다. 탁기를 내보내는 것이라고. 게워내고 내려 보내고.


나는 놀랄 만큼 많이 토했다.

눈이 충혈되어서 새빨개지고

눈물과 콧물도 나는데 그게 뭘까.

몇 번을 다 토하고 나왔는데 진정하기 위해 샘과 손님의 대화를 경청하며 글을 썼다.

그러다가 박현 선생님의 그림이 손상되었던 속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참 예뻐하던 그림인데.


그 그림을 따라 그려봤다. 글자도 따라 쓰고. 각 글자들이 뜻하는 바도. 반복되는 패턴에서 찾아보고.

간절히. 바라옵니다.라는 뜻의 문자를 따라 써봤다.


도록의 챕터 제목은 천문. 앞뒤로 넘기다 보니

요즘 내 머릿속에서 떠돌던 많은 단어들이 자리를 찾는 듯했다. 전부 박현 선생님이 그리신 그림인 줄은 몰랐다. 모두 다 차와 하늘 그리고 사람에 대한 깨달음이었어.


대지의 젖줄인 차.

대지와 우리의 연결.

하늘과의 연결.

마음이 벅찼다.


박현 선생님은 진짜 크신 존재구나.

혼잣말이 밖으로 나왔어.


도록을 구매하고,

예전에 읽었던 ‘나를 다시 하는 동양학’

옆에 꽂혀 있던 고대 지성사 관련

박현 선생님의 역사책 두권 빌려왔다.


동생은 오늘 밥은 먹었느냐 묻는데

좀 토했고 선생님은 이렇게 도와주셨다 하니

병원을 가라고 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전문의 제부의 말로 단기간에

살이 그렇게 많이 빠진 게 문제다.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고 말했어. 그래서

부산에 내려가서 종합 정밀검사를 받기로 확답했다.


입맛이 전혀 없는데?라고 하니 동생은

먹어라!

그래도 그걸 해라!

그걸 해야 살지!

그래도 먹어야 된다!

맛으로 먹나? 이건 탄수화물, 단백질 하면서 먹어라!

크크크…

완전 싸비 장군 재질 사자 갈기 교수님의 채찍질. 휘릭!

네가 대장 먹어.


정수샘은

내가 늘 하는 말. 오늘도 절 살리셨어요.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샘은 잘 살아서 오지 말라고.

나도 힘들다고.

조금 섭섭한 말이었다. 섭섭해요라고 말은 못 했지만.

언제는 자주 안 온다고 뭐라 하시더니. 칫 :)


정수 보이차 하려면 이제 가열하게 나도 달려야 하는데. 하지만 진짜 섭섭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는 길에 원당 사탕도 챙겨 주시고.

으휴 츤데레!

명희 언니는… 소민아 정수샘 니 엄마 닮으셨잖아.

했지만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냥 어떤 또 하나의 인연인 것.

처음 보고 바로 알 수 있는.

그냥 원래 나는 직관에 따르니까.


그런 면에서 나는 이런 말을 좀 들어줘야 한다.

정확한 말. 현실적인 말. 숫자들. 땅에 발을 붙인 말.

그리고 가끔 하늘과 차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


진기. 진짜 에너지를 채우려면 집에서 갓 지은 밥.

김치를 많이 익혀 먹거나, 좋은 된장으로 국을 끓이라고. 그냥 맨 밥에 김이라도 싸 먹으라고 하셨다. 고기도 먹어야 되고… 버섯 불고기 솥밥 할까…


이건 탄수화물. 단백질 하면서. 먹어야 살지.

그래. 정신 차리자.

엉덩이를 때려 가면서. 무브무브.

강수진 발레리나도 그랬다고 했어.

동생도. 다들 그렇게 살아. 별일 아니야.


나는 절대 안 죽어.

이제 거의 다 했으니까.

다시 걸을 일이 남았다.

걷다 보면 또 금방 뛰고 춤추고 날고.


나는 자유. 나비. 꽃. 별. 태양. 빛. 흙. 돌. 금이고

칼이고 보석이고 뭐든 다 꺼내.


나는 다 할 수 있고.

다 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존재만 할 거야

풀처럼 살아도 되고

아무런 기대 없이 살 수도 있어


하지만

모두 알아서 이뤄질 거야

자신의 쓰임에 따라

천분에 따라

난 그걸 믿는다.

그냥 하루만 하루씩만 산다


나는 비추는 달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

소원을 이뤄주는 달

나는 쓰고 만들고 먹이고

나는 먹이고 재우고 보듬고

품에 기대도록 하고

들어주고 끄덕이고

함께 울고 웃고 춤추고

모든 게 공명… 화합… 평화로

오로지 매일 세상의 모든 마음의 평화를 위해.

그걸 알아 이제


오늘도 많이 알았네

나를 또 새로 했네

어휴.

언제까지 해야 하나


아마 평생을… 와우.


시라트…

칼날 위를 걷는 사람처럼

깨어있는 의식으로

저항을 다 내려놓고 걷는다

가야 할 곳으로.


———


차를 우리는 이의 기도 3


문을 활짝 열어 언제나 닫히지 않기를 바라옵니다

자나 깨나 밝은 해를 우러러보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일러주신 것처럼 경계의 줄을 굳게 치고 믿으니

밝지 못한 그 무엇도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옵니다

아름답고 향기롭다 이르시고 약속하신 물을

믿고 마시리니 그리되기를 간절하고 간절하게 바라고 바라옵니다


-이족의 비마 문자로 올린 기도문 (직역)




차를 우리는 이의 기도 2


문을 활짝 열게 하소서

언제나 해를 쳐다보게 하소서

금줄을 굳게 치리니

어둠이 들지 않게 하소서

약속의 물을 마실테니

언제나 그리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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