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호 그리고 보람 Mar 17. 2024

[윤] 말레이시아의 색다른 직장 문화-ep2. 휴가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현재 내 커리어는 도합 7.5년 정도 되는데, 계산을 해보니 말레이시아에서 어느덧 4년 반을 일해서 말레이시아에서 일한 기간이 한국에서 일한 기간보다 길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고 자란 곳이 한국이고, 첫 커리어도 한국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외국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음에도 내 기준은 한국 문화에 훨씬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종종 '아니, 이렇게 다를 수가?', 또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종류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 직장생활을 하며 느꼈던, 한국인으로서 흥미로웠던 몇 가지 문화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다만 나는 이미 한국을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한국의 모든 회사와 말레이시아의 모든 회사를 경험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관적인 의견이 꽤나 많을 수 있음을 이해 부탁드린다.




Yoonho, I'll take MC today.

말레이시아에는 MC라는 휴가 제도가 있다. 다른 말로는 Sick leave, 한국어로는 병가이다. 생각해 보니 MC가 Medical certificate의 준말인 것 같은데 왜 take MC라고 표현(다른 뜻이 있나 급하게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다)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보통 MC라고 표현을 하니 이 글에서도 MC라고 쓰도록 하겠다.


말레이시아에서 MC는 법으로 보장된 근로자의 권리이다. 근속 연수에 따라 최소 연 14일에서 22일까지 받을 수 있는데, 유급 휴가이고 Annual leave(일반 휴가)와 별개의 휴가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아프다고 해서 개인 연차를 쓸 필요가 없다. 만약 길게 입원을 해야 해서 MC를 다 소진하면 어떡하지? 걱정하지 마시라. Hospitalization leave라고 병원에 입원 시 사용할 수 있는 휴가가 따로 있으며, 연 60일이 제공된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이 글을 쓰기 위해 간단히 한국의 병가 제도에 대해 찾아보았는데, 놀랍게도 업무상 재해로 인한 질병 외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얻은 부상이나 질병에 대한 병가는 근로기준법상 별도의 규정이 없다. 즉, 한국에서의 병가는 철저히 '사규'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시스템(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다면 꼭 지적 부탁드립니다!)이다. 그래서 그동안 한국에서는 내가 아파서 개인 연차를 쓰는데도 '팀장님, 제가 오늘 이만저만해서~'로 시작하는 절절한 메시지(또는 통화)를 했어야 했나 보다. 


이 지점에서 팀장이 된 이후 초반에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느꼈었다. 왜냐하면 간혹 MC를 쓰려고 하는 직원들이 MC 사용 여부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Yoonho, I will take MC today.'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식 사고방식에 절여진 나는 처음에는 '그래도 한국에서는 예의상 물어는 보는데... 이게 맞나...?' 싶다가(하지만 맹세코 내색하지 않았다) MC가 말레이시아에서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본인의 휴가를 사용하는 것이고, 진단서만 첨부하면 문제 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니까.

말레이시아 Clinic을 방문하면 요런 종이(Medical certificate)를 하나 준다. 이 것만 첨부하면 끝!


이쯤 되면 떠오르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좋긴 한데, 악용하는 사람은 없나요?


아휴 그럼요.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데요. (사실 저도 가아-끔...)


다행히 현재 회사에서는 표 나게 악용하는 직원들은 거의 보지 못했지만, 지난 5년간의 경험에 미루어보면 유난히 월요일과 징검다리 휴일에 MC 사용량이 급증(?)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건너 건너 들었던 최악의 케이스는 오전에 병원에 갔다가 오후에 외국으로 여행 간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여 해고된 사례였다. 


하지만 대체로 MC를 악용하는 사람은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고 느낀다. 아프다는 핑계도 한두 번이지, 자주 MC를 사용하면 일단 주변에서도 시선이 곱지 않다. 이런 부분들이 모여서 평판을 만들고, 고과에 영향을 끼치고, 심할 경우 업계에 소문이 퍼지는 사례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심심찮게 접하셨다고 믿으며 이는 말레이시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리하자면, 아프다고 끝끝내 참으며 일하는 빈도는 한국보다는 적지만 이런 제도를 이용해서 extra leave로 여기는 경향은 생각보다는 적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다행히 MC를 악용하는 팀원들은 아직까지 없어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뭐,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야... 우리 모두 하루 정도는 회사 안 가고 놀고 싶은 욕망이 거대해질 때가 있지 않은가?


공휴일, 짜릿해. 늘 새로워!

혹시 2024년 한국 공휴일 수가 몇 개인지 아시는 분? 보편적으로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면 15일이다. 그나마도 올해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고, 추석이 월~수로 이어지는 황금연휴로 예정되어 있어서 이 정도 수치가 나왔다. 반면 말레이시아의 공휴일은 며칠일까? 주(state)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경우 올해 17일이다. '뭐야, 한국보다 조금 낫긴 하지만 얼마 차이 안나잖아?'라고 하실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다.


1. 말레이시아의 모든 공휴일은 일요일일 경우 월요일이 대체공휴일로 지정된다. 

2. 만약 공휴일이 토요일인 경우, 회사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보상(!)을 해준다. 나의 경우 이전 회사는 자동으로 연차를 1개씩 적립해 주었고, 현 회사는 금요일이 휴일이 된다. 

 2번 항목의 경우 법제화된 부분인지까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현지 친구들에게 이를 물어보니 '아마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을 해줘야 할걸?'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자료에는 15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체감상 이보단 훨씬 많다. 왜 더 많게 느껴지는지는 아래에서...

말레이시아에서의 첫 회사는 한국 시장을 위해 일하는 고객센터였기 때문에 그 특성상 한국 휴일을 따라가서 말레이시아의 위대함(?)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회사에서 일할 때부터 말레이시아의 공휴일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윽고 알 수 있게 되었다.


야, 이거 개쩌는데?


일단 일개 근로자로서, 그리고 말레이시아에 세금도 내고 있는데, 나라에서 쉬게 해 주겠다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일단 산술적으로 한 달에 최소 한 두 번의 공휴일이 있기 때문에(실제로 11월 외에는 늘 매달 휴일이 있다) 항상 '쉬어갈 텀'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큰 위안이 된다. 이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모든 회사원 분들은 공감하시리라 믿는다.


게다가 외국인으로서의 사소한 이점 중 하나는 이 모든 휴일의 의미를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설날에 해당하는 CNY의 경우 중국계 사람들은 공휴일 외에 1주일 정도 본인 휴가를 써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관례라서 사무실이 텅텅 비기 때문에 밀린 업무를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소중한 기간이고, 보통 4월 중순에 있는 이슬람의 가장 큰 명절 '하리 라야'의 경우 이슬람교와 관련이 없는 나에겐 긴 휴일 중 하나일 뿐이다. 말레이시아 데이(말레이시아 연방 설립일)가 좋은 이유는 보람이 생일과 날짜가 같아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다. 외국인으로서 외국에 사는 것은 팍팍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편한 부분도 있긴 하다.


임시공휴일, 진행시켜!

최근에는 1~2년에 한 번 꼴로 한국에서도 임시공휴일이 지정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체로 합리적인 이유(ex. 징검다리 연휴)가 있어 지정되는 것으로 느낀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경험한 임시 공휴일은 굉장히 흥미로운(?) 이유로 지정되었는데, 그 사례들은 아래와 같다. 믿기 어려울까 봐 관련 링크도 첨부했다.


1. KL City FC의 32년 만의 Malaysia Cup 우승(2021년 12월 3일)

아... 정말 아쉽게도 이 때는 한국 공휴일을 따랐던 첫 번째 회사에 재직 중이어서 이 공휴일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동남아 여느 나라가 그렇듯이, 말레이시아도 축구에 대한 열기가 꽤 뜨겁다. 본인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수도 쿠알라룸푸르를 연고로 하는 KL City FC는 리그에서 중하위권에 주로 머무는 약팀이다. 하지만 2021년에 열린 Malaysia Cup에서는 조금 달랐는데,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대회 특성과 약간의 운이 더해져 결승까지 진출했고, 무려 리그 최강자 조호르 다룰 탁짐 FC(홍명보 감독의 '이게 팀이야!' 밈을 만들어낸 그 경기장의 팀이다)를 꺾고 32년 만에 우승을 하게 되었다. 이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우승 이틀 후, 쿠알라룸푸르만 하루 휴일이 지정되었다.


https://www.malaymail.com/news/malaysia/2021/12/01/ft-minister-declares-this-friday-a-public-holiday-after-kl-city-fcs-win-in/2025202


2. 어맛, 음력을 잘못 계산했네? (2023년 4월 24일)

하리 라야는 무슬림의 단식(라마단)이 끝나는 것을 기념하는 휴일로, 이슬람 문화권에서 가장 큰 휴일 중 하나이다. 라마단이 끝나는 시점은 초승달 관측 여부에 따라 정해지는데(권위 있는 이슬람교 지도자들과 관련 부처에서 계산한다고 한다), 2023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제 계산한 날보다 하루빨리 초승달이 관측될 예정이라고 밝혀졌다. 


애초 예정된 하리 라야 기간은 토~월이었는데(토요일에 초승달이 관측될 것으로 예정), 실제 초승달이 관측될 날은 금요일이어서 실제 하리 라야 기간은 금~일이었다. 순진한 한국인인 나는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 직장 동료에게 "그럼 우리 월요일 휴일 아니고 금요일만 휴일이야?"라고 물어보았는데 동료는


응, 지금 갑자기 바꾸는 건 너무 어렵다고 판단해서 금요일도, 월요일도 휴일이래.


라고 답했고, 실제로 이렇게 쉬고 대체휴가도 하루(토요일이 공휴일이니까!) 받아갔다.


https://www.ccs-co.com/post/_hari



3. 선거에서 이겼다고 공휴일(2023년 8월 14일)

말레이시아에서 오래 머물렀지만 정치에 대한 내용은 아는 바가 거의 없어 많은 내용을 적지는 못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 휴일은 선거를 위한 공휴일이 아니라 해당 정당이 선거를 이긴 것을 기념하는 임시 공휴일이었다. 다행히(?) 전국 공휴일은 아니고 Selangor(한국으로 치면 경기도) 한정 공휴일이었다.

https://www.malaymail.com/news/malaysia/2023/08/13/yes-its-official-monday-is-a-holiday-for-selangor-following-pakatan-bn-pacts-state-election-victory/84995



사실 지금 재직 중인 회사는 이전에 일했던 회사보다 바쁜 날이 많아서 갑자기 쉬게 되면 좋기도 하지만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매니저 A님께 물어본 적이 있다. A님, 맨날 바쁘신데 만약에 임시공휴일 지정되면 달갑지 않으세요?


뭔 소리고. 완전 땡큐지. 매출 오른다 아이가.


그럼 그냥 많이 쉬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윤] 말레이시아의 색다른 직장 문화-ep1. 언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