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해외 취업하려면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하나요?

아 그래서 TOEIC 몇 점이면 되냐고

by 윤호 그리고 보람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며칠 전 인터넷을 보다가, 한국인으로서 영어를 후천적으로 습득한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영상과 짧은 글을 하나 보게 되었다.


https://youtu.be/eP5y67nU7Uw?si=_oqW8jX42a5NnBbH



어느덧 외국에서 산지 10년 정도 되었고, 지금은 한국인이 1명도 없는 회사에서 근무한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나의 외국 생활에 대해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많다. 특히 내 이야기를 하게 되면 꼭 듣는 반응 중 하나가 '영어 되게 잘하겠네!'인데, 하하... 이에 대한 내 생각을 조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참고로, 나는 아직도 영어를 잘 못한다. 당장 오늘 미팅에서도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는 자괴감이 들어 이 글을 써 본다...




나는 영어(또는 어떤 외국어)는 어린 시절에 습득하지 못한 사람이 외국에 살게 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불편하게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 또는 직장생활이 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거리낌 없이 편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갑작스럽게 영어로 말하게 되면 긴장하게 되는 경험, 저만 하는 것은 아니죠?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일반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영어는 학교나 학원에서 받는 시험을 위한 영어수업 외에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외국 생활을 결심하고 처음 한국 밖을 나갔을 때 영어 때문에 너무 고생이 많았다. 호주 워홀을 갔을 때 처음 일했던 카페에서 일할 때 주문을 끊임없이 잘 못 알아들어서 해고를 당했다던가(One flat white with skim milk, 3/4, 2 raw sugar, extra shot and extra hot 이 뭐요...), 캐나다 워홀생활을 마칠 때 해지한 줄 알았던 핸드폰 요금제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나중에 발견(분명히 상담원이 "All clear"라고 말했는데...?)하고 멍청비용을 지불하는 등 말이다. 다행히 그 모든 역경을 헤치고(?) 지금은 영어만 쓰는 환경에서 어느 정도 밥 벌어먹고 살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뿌듯하긴 하지만, 갈 길 또한 여전히 멀다는 것을 하루하루 느낀다.


R u sure?


어쨌든 이런 나의 인생여정을 아는 주위 사람들, 또는 해외 취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종종 저에게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해외에 취업할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거나, '저도 해외에서 일하면서 살고 싶은데 영어를 못해서...'라고 말한다. 사실 취업에는 참으로 다채로운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취업 자체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답하기가 애매하지만, 영어에 대해서라면 내가 늘 안타까워하며 하는 말이 있다.


영어를 잘한다, 못한다를 왜 본인이 판단하세요? 그건 인터뷰어가 판단하는 거예요!


내가 처음 말레이시아에서 이직할 때 사례를 잠깐 말해볼까 한다. 나는 말레이시아 첫 이직 때 32년 인생 처음으로 영어 인터뷰를 경험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시에는 여전히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일정 수준의 락다운을 실행할 때여서 모든 면접은 화상으로 진행되었다. 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난 이를 이용해서 면접 때 필요한 자기소개와 키워드 및 문장들을 적어놓은 또 다른 창을 띄워놓고 면접 질문에 따라 그대로 읽을 때도 많았다(...) 당연히, 이런 식의 면접에서 내가 깔끔하게 영어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천신만고 끝에 이직을 한 후, 제 매니저에게 물어보았다. 내 면접 때 영어가 괜찮았어...?


솔직히 말해서, 몇몇 부분에서는 네 영어를 이해하기 어려웠어.


오 마이 갓.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 영어가 더 엉망이었나 보다. 하지만 이어진 매니저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하지만 너의 포트폴리오와 경험이 우리가 찾는 사람과 일치한 것이 더 중요했고, 무엇보다도 네가 우리 대화를 이해하고는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채용하자고 했어. 그리고 나는 회사에서 쓰는 언어는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된다고 믿어.


이 말을 듣고 조금 민망했지만, 동시에 안심이 되었다. 인터뷰는 나의 영어를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고, 영어는 대화의 수단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위의 이병헌 배우와 쓰레드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개인적으로 성인이 된 후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입장에서, 이병헌 씨의 말하는 방식과 자신감은 내가 현실적으로 닿을 수 있는 목표로 삼아도 될 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영어가 모국어인 진행자와 무리 없이 대화가 흘러가고, 관객들이 환호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니, 반응들이 기이하다. '아주 잘하는 영어는 아닌데?', '발음이 영 현지 영어랑 다른데?' 등 말이다.


그런데, 그의 영어가 그토록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토크쇼가 성사가 되었을까? 방송국에서는 그가 영어로 대화가 통하고 방송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했으니까 진행이 되었을 것이고, 부족했다면 통역을 동반했거나 토크쇼가 아닌 다른 형태의 홍보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아마도 이병헌 씨가 직접 판단하고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저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고 본인의 능력을 보여줬을 것이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그를 보고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영어 때문에 해외 취업을 주저하는 분들께 이렇게 말한다.


영어가 부족해서 취업을 못 하신다고요? 그건 본인이 판단할 일이 아니에요!


혹시 지금도 영어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면, 그 판단을 잠시 미뤄두고 일단 지원서를 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면접까지 가게 되었다면,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채용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을 만큼의 경력과 자격을 갖췄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니까 말이다.


물론 영어로 대화를 이어나갈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실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기준’을 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같이 일할 사람들이고, 경험상 대체로 그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유연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들은 당신의 발음을 신경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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