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다녀왔어? 빨리 병원에 가. 빨리."
점심때 먹으라고 식탁 위에 놓아둔 반찬과 밥을 쇼핑백에 넣는 소리가 들렸다. 버스럭버스럭. '보냉백에 가져가면 참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지만 그저 귀를 세워 남편의 손이 움직이는 소리만 듣고 있었다. 지금은 추운 겨울이니까 음식이 상하진 않을 거라 생각하며, 다음에는 보냉백에 담아주기로 나에게 약속했다. 그러고 보니 남편 점심 도시락을 직접 챙겨준 때가 언제인지 떠올려 보았다. 언제더라…. 확신할 수 없지만 2주 전인 것 같다. 그럼, 가게에는 반찬이 다 떨어졌을 텐데 밥을 어떻게 먹었을지 궁금해졌다. 아, 반찬이 없어서 점심을 대강 먹었나 보다. 퇴근 후에 그토록 군것질을 했던 걸 보면….
식탁을 지나 현관문 쪽으로 가는 남편의 발소리와 걸을 때마다 스치는 청바지 밑단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자동차로 20여 분. 리드미컬한 남편의 걸음걸이 소리로 그려보건대, 아마 10시 30분쯤인가 보다. 소리가 멈췄다. 방문이 열렸다. 남편은 문고리를 잡은 채 얼굴을 내밀며 얘기했다. 병원에 다녀오라고. 그때까지 나는 전기장판과 겨울이불 사이에 떠도는 이도저도 아닌 미지근한 온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천장을 향해 있던 고개를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렸다. 안경을 쓰지 않아 남편의 얼굴은 추상화처럼 뭉그러져 있었다. 검은 머리와 얼굴 형체만이 있었다. 눈 대신 귀가 남편의 기분을 짐작해 보았다. 내 귀는 평범한 문구에서 퉁퉁 튀는 소리를 잡아냈다. 글자 하나하나의 높낮이가 제각기 달랐다. 최근 들어 남편을 잘 챙겨주지 않은 탓일까, 평소보다 더 또렷하고 날카로웠다. 말투는 뻣뻣해도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인데,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거라면, 내가 말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모를 내 생각을 나는 또 한 번 크게 다그칠 것만 같았다. 귀가 모아 온 소리와 상관없이 글자들의 사전적 뜻을 떠올리며 그대로 답했다.
"응, 갈게. 잘 다녀와."
남편이 방문을 환기가 될 만큼만 살짝 열어놓은 채 닫았다. 신발장 문을 열고 신발을 꺼내 신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전에 산 신발이겠지. 곧이어 현관문이 조용히 닫혔다. 엘리베이터로 가며 신발 앞 굽을 툭, 툭, 차는 소리가 들렸다. 신발장에서 마저 신발 안으로 넣지 못한 뒤꿈치를 넣는 중일 것이다. 평소엔 구둣주걱을 쓰는 남편인데, 오늘은 평소보다 마음이 급한가 보다. 소리가 멎었다. 고개를 다시 고요한 천장을 향해 돌렸다. 이불 속에서 남편의 말을 되뇌었다.
남편은 보통의 회사원과는 다르다. 자영업자다. 출근 시간이 늦은 만큼 퇴근 시간도 늦다. 그렇기에 나는 홀로 저녁 육아를 도맡아 해야 한다. '도와줄 사람이 없을 때 아프면 나만 힘들지'라고 생각하며 핑 도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남편의 말대로 병원을 다녀왔다. 병원을 다녀온 사이, 이불 속 공기가 아까보다 더 뜨끈해졌다. 주사와 약으로 통증이 살짝 누그러진 탓일까.
어쩌면 남편 출근 전의 이불 속 온도는 지금과 같은 온도이지 않았을까. 남편의 말도 지금 들었더라면 조금은 더 따뜻하게 들리지 않았을까. '빨리' 다녀오라는 말이 나를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걱정해서 나온 말이 아니었을까. 그제야 내 몸은 따뜻함과 다정함을 느낄 준비가 된 듯했다.
내 남편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