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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혜 Nov 12. 2018

우리가 관계를 찾아 헤매는 이유

넷플릭스 오리지널 <매니악>


가설을 세워보자
모든 영혼은 관계를 찾아 헤맨다. 
당연하게도
우리의 마음은 그걸 자각하지 못한다.

연애에 대한 질문은 항상 답하기 어렵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게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고 느끼던 요즘 보게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결국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타인이 필요하다는 건데, 그렇다면 타인의 의미가 무엇이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오언 역의 조나 힐과 애니 역의 엠마 스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는 과거가 되어 영원히 기억된다. 보통 이 상처로부터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 속에서는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방어기제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정신분석 용어


방어기제는 무너졌던 자신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부정, 억압, 합리화, 투사 ,승화 등의 방법으로 나타나는 이 방어기제를 통해 우리는 과거로부터 도망친다. 


하지만 방어기제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주지 못한다. 함께 갔던 곳, 좋아했던 음식, 웃고 떠들었던 이야기들 속 단어 몇 개에 쉽게 무너지고 만다. 일상에 존재하는 이 평범한 것들에 부여했던 특별한 의미들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 과거를 불러오는 역할을 한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처럼 과거와 그 과거에 해당되는 물건들 모두 지울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우리는 언제든지 잊고 싶은 그 과거로 끌려가는 순간이 생긴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과거를 만나면, 여전히 나는 슬프고 회복되지 못 했음을 깨닫는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무너지고, 결국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나에게 새로운 타인은 사치이며 그렇게 스스로 혼자가 되는 길을 자처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매니악>은 이러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신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는 임상실험에서 만난 애니와 오언. 이들이 차례로 신약 A, B, C를 먹으며 겪게 되는 꿈 속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주를 이룬다. 


신약A (Affirmation)

A를 먹고 잠이 들면, 트라우마를 갖게 된 순간으로 돌아간다. 제약회사에서 개발한 슈퍼컴퓨터 거티가 이를 모두 기록하여 치료를 위한 데이터로 이용된다. 


신약B (Behavior)

새로운 환경, 새로운 인물이 되어 꿈을 꾼다. 이 과정 속에서 이들의 방어기제가 드러난다. 이를 바탕으로 인물들의 정신상태에 대한 진단이 내려진다. 


신약C (Confrontation)

방어기제를 깨고 자신의 트라우마와 대면한다. 여기서 몇몇 환자들은 맥머피를 경험하고 꿈 속에 갖히게 된다. (일종의 뇌사상태)


약의 이름이 보여주듯이, 우리가 가진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은 먼저 자신의 상처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행동을 바탕으로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과거와 그 때 느꼈던 감정이 사라질 수 있느냐. 그건 아니라고 드라마의 마지막에서 애니가 말한다. 늘 아플 것이며 그걸 그저 버텨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약B단계 꿈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만난 오언과 애니


그저 버텨내는 것이 정답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잘 버텨낼 수 있을까. 결국  <매니악>이 상처 치유 임상실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과거를 온전히 버텨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애니와 오언이 신약B를 먹고 같은 꿈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방어기제를 이해하게 되고, 신약C단계의 꿈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가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순간을 함께 할 누군가를 만나는 것. 그런다고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누군가와 앞을 보며 달린다면 뒤를 돌아볼 생각은 덜 하게 되니까. 


연애 혹은 결혼이 나를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가 된 것 같은 요즘, 관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나를 포장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말로 나의 상처를 보여줄 수 있고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부터 나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겠다. 누구보다 그 상처를 잘 알고 이를 타인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용기를 낼 때 진정한 의미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임상실험이라는 소재 자체도 흥미로웠고,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가 가진 강점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콘텐츠였다. 두 시간의 영화로 이야기하기엔 너무 짧고, 그렇다고 드라마화 하기에는 대중적이지 못한 콘텐츠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하지만 그 대중이 글로벌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서는 국가, 언어, 문화 등이 아니라 취향으로 묶인 집단이 존재하기에 이러한 소재의 이야기를 조금 더 오랜 시간동안 인물에 깊게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파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매니악>은 <이터널선샤인>,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그녀>, <더폴> 이 중에 두 개 이상 재밌게 봤다면 진짜 진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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