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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의 연결고리-쿠스코 혼자만의 시간

by 윤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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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 3종 경기를 마치고 해변으로 올라오는 장면이 첫 장면이다.
내가 1등으로 도착했고, 그 뒤 갓난아기 2명이 나란히 2, 3등을 했다.
해변에는 조개와 소라껍데기들이 널려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분홍색 문어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옆에는 바다에서 떠밀려 온 박스가 있었는데, 안에는 카메라와 기타가 들어있었다.
모래사장에는 가수 GD가 올라가서 유명한 언덕이 있었다.
어떤 가게 위에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언덕이고 크기는 딱 가게만 했다.
언덕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출입구인 가게 문은 문 앞까지 바짝 쫓아온 파도 때문에 닫혀 있었다.
언덕 위에는 GD가 직접 쓴 "이건 연출이 아니다" 라는 팻말이 꽂혀 있었다.
이 언덕은 GD가 개인적으로 즐겨 찾는 곳인데
사람들이 가게를 홍보하기 위해 매일 이 언덕에 오르는 것 아니냐는 말들을 했나 보다.
GD는 아마 '내가 이 언덕을 찾는 이유는 가게 홍보 때문이 아니라 그냥 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언덕 가까이 가니, 그 앞에 어떤 여자아이와 가시가 엄청난 고슴도치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여자아이와 고슴도치 주변으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그 바리케이드는 갑자기 커다란 문으로 변했다.
탁 트인 모래사장이었던 공간은 순식간에 실내로 바뀌었고,
그 큰 문은 밖으로 통하는 커다란 미닫이문이 되었다.
그곳은 여러 여자아이들과 내가 지내는 숙소였고, 나는 개중에 좀 멋진 애였다.
내 별명이 왜 한때 '윤해적' 이었는지 설명해주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양치를 하고 있었는데,
양치 거품을 뱉는 순간 현실에서도 침을 뱉으며 꿈에서 깼다.


나는 여행할 때 꿈을 많이 꾼다.
인도를 여행할 때는 매일 너무 재미있는 꿈을 꿔서
그 꿈을 놓치지 않으려고 잘 때 항상 침대 머리맡에 일기장과 펜을 두고 잤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머릿속의 판타지가 증발해 버리기 전 꿈 일기를 적었다.

꿈속에서 '이것은 꿈이다'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느 누구의 꿈속은 흑백이라던데 나의 꿈속은 모든 것이 칼라이거니와 나는 꿈속에서 후각, 청각, 미각, 촉각을 모두 느낀다.
현실과 너무 똑같아서 꿈이라고 의심을 못하는 것인가.

어렸을 땐 몰랐지만 다른 사람들을 겪다 보니, 내가 오감이 참 발달했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남들보다 받아들이는 정보가 많고 남들이 느끼기에 대수롭지 않은 것을 크게 느낀다.
그러다 보니 내가 너무 예민하고 유별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고,
나도 머릿속에 꽉 들어찬 정보들을 거르고 정리하느라 적지 않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래서 나는 주위의 자극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은 자고 있는 '그녀석'을 깨우지 않고 혼자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둘이 있어도 원하는 게 분명한 내 의견대로 돌아다닐 텐데
같이 있는 것과 혼자 있는 것이 뭐가 그리 다르겠나 싶지만.

아무 말없이 같이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것처럼
아무 말없이 같이만 있어도 신경 쓰이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미묘한 상대방의 기분 변화가 느껴져 종일 눈치 보는 나 같은 성격은.

그래서 나는 유난히 여행할 때 자유로움을 느낀다.
주변을 신경 쓰느라 나 자신을 많이 절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100% 낯선 환경에 떨어지면 주변을 신경 쓸 일이 적어진다.
지금까지의 나를 아는 사람은 없고, 그래서 그 사람의 기대치에 어느 정도 나를 맞출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나도 없다. 외부 자극에 대한 나의 반응은 관료적인 틀을 벗어나 본능적이 된다.

'여행' 하면 곧 '나를 찾는 여행'이 떠오를 정도로
내가 여행 간다 하면 '너를 찾고 와~' 라는 인사가 당연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인사를 들으면 '나를 찾고 올 수 있을까? 난 그냥 놀러 가는 거야~' 라고 말했지만
'나를 찾는 여행'이란 표현처럼 나는 여행 중에 나도 모르게 나를 찾아가고 있었던 듯하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환경과는 전혀 다른 낯선 문화에 적응하며
본능적으로 판단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마음껏 표현해보기.

여전히 생각이 많다.
꿈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찾는 여행까지 와 버렸다.
이 머릿속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는지.
오늘도 이렇게 에너지를 소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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