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하게 친절한 '예수탁시오피'

by 윤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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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친절한 사람, 예수탁시오피.

그의 이름은 '예수탁시오피'
터키 사람이며, 마치 예수님처럼 하얀 수염이 덥수룩하며,
가끔씩 밤에 나와 이스탄불 구시가지 세계문화유산인 소피아 대성당 앞 분수대에서
그 세계문화유산인 소피아 대성당의 야경을 연필소묘로 그린다.

사실 나도 그날 밤 세계문화유산인 소피아 대성당 앞 분수대에서
그 세계문화유산인 소피아 대성당의 야경을 소묘가 아닌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고 있었다.

아크릴로 소피아 대성당을 그리고 있던 그날 밤 나는 졸지에 엄마 아빠 없는 먼 타국땅에서
초딩 6학년 남동생의 보호자가 되어 40여일간의 여행 계획 중 첫날밤을 보내고 있는 22살의 무지하게 외로운 소녀였다.

다른 관광객들이 내 그림을 열심히 구경하는 동안
옆 벤치에는 또 다른 관광객들의 무리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예수탁시오피'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서 말을 걸었는데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나온 이야기의 마무리는
'나 담배 좀 펴야하니 얘기 그만하자' 였다.

흠... 어쨋든 그 할아버지는 구시가 근처의 학교 안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고 하여
다음날 저녁 우리는 그 전시회에 놀러가기로 했다.

옛날 일이라 기억을 더듬자면... 갤러리 가는 길에 너무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어느 주유소 지하 화장실에 갔는데 '그녀석'과 나 두 사람 합해서 1리라 였다.
그런데 한 사람당 1리라 인 줄 알고 2리라를 내고 나왔던 기억이다.
마지막 화장실을 나오며 돈을 건낼 때 약간 놀란 듯 하며 웃음짓는 두 아저씨의 표정을 그 때 알아차렸어야 하는건데...
사기 당해봤자 팔백원인데, 여행 첫 날과 두째날은 이렇게 항상 '사기 당하는 것'에 예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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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때문에 너무 피곤해서 사실 전시만 잠깐 보고 숙소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할아버지는 노래도 들려주시고 과자도 주시고...
마지막엔, 탁심이 할아버지 집이라서 그 곳에 가야하는데
같이 걸어가자고 말씀 하셨다.
내가 다음 날 사프란볼루로 이동해야 해서 일찍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여행 와서 숙소에만 있냐며 그건 여행도 아니라며 같이 탁심에 가자고 그랬다.

'그녀석'이 눈치줬지만 나는 'no'라는 소리를 못했다.
내키진 않았지만 '네,,네... 그러죠...'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탁심 가는 길에 할아버지의 친절강요에 레스토랑에 들어가 밥도 사먹고.
(이 아저씨 혹시 레스토랑 주인이랑 짜고 나한테 사기치는 것 아닌가. 한번 생각.)
할아버지의 친절강요에 탁심 근처 교회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혹시 입장료 있는데 데려가는거 아닌가 한번 생각.)
할아버지의 단골 카페가 있다며 탁심 근처의 카페에 들어가 친구들 소개시켜 줌.
(뭐 먹기 싫은데 혹시 뭐 시키라고 강요하는거 아닌가 한번 생각.)

할아버지의 친절강요로 이러저러해서 어디서 쉴 여유도 없이 밤 10시까지 3시간 끌려다닌 후 집으로 돌아와 그날 밤 '그녀석'은 밤에 자는데 다리 근육이 올라 와 다음날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녀야 했다.
이스탄불에 또 오게 되면 연락하라며 번호를 줬지만 3주 후 이스탄불에 도착한 나는
그 다음 2주 후 또 이스탄불에 도착했지만 예수탁시오피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왜냐. 무서워서.

'no'라고 말하면 될 것을 바보 아냐.
뭐... 사람은 때론 바보일 수 있는거다.
너무 친절한 예수탁시오피가 나는 불편했다.
우리에게 이스탄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그 친절이 강요는 아니었지만 나는 강요로 느껴졌다.

결론적으로 그 때를 생각하면 좋은 경험을 하게 해 준 예수탁시오피 덕분에 좋았지만
그 때는 너무 피곤하다는 생각 뿐이었지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뭐, 서로 스타일이 달랐던 거다.

예수탁시오피 사건 이후로
너무나도 친절한,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수탁시오피와 함께 있을 때에는 '무지하게 피곤하게 만드는 예수탁시오피' 였지만,
여행 후에는 '다음번에 이런 상황이 생기면 no라고 말해야지! 라고 생각하게 해준
'무지하게 친절한 나와는 스타일이 다른 예수탁시오피'가 되었다.

뭐 결론은.
여행은 알게모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는 거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 친절한 스타일은 피곤하다)

사실 '예수탁시오피'는 그의 본명이 아니다.
나중에 여행 막판, 나와 '그녀석'이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추억하며 지은 그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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