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마을 파묵칼레

by 윤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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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의 일기
2005년 12월 11일

1. 그와의 첫 만남
밤에 도착한 파묵칼레.
고속버스를 타고 내린 곳에서 돌무쉬(마을버스)를 타고는 더 들어가야 했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아스파와 펜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내려야 하나.
이 한밤중에 한 번에 못 찾으면 사람도 없는 마을 골목길 돌아다녀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조심스레 버스기사 아저씨께 아스파와 펜션에 간다고 말했다.
고개 한번 끄덕이시더니 한참을 가다 여기서 내리라 신다.
그런데, 우리 배낭을 받아드는 이가 있었으니.
“후,,, 후아유”라고 말하기도 전에 어느 집엘 들어가시는데, 문패엔 ‘아스파와 펜션’이라고 적혀져있다.

의자에 배 내밀고 앉아 무섭게 웃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이, 가이드북과 오버랩 되어 안심이 된다.
그 무서운 미소를 보고도 안심이 되는 이상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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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의 방명록
가이드북에는 아스파와 펜션의 저녁을 꼭 먹어보라고 했다.
백숙이 죽음이란다.
아저씨는 말씀하신다.
“내가 특별히 당신들한테는 한 사람에 10리라씩 해줄게!!"
저녁을 기다릴 동안 아저씨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왔었다면서 방명록을 한번 보라고 하신다.
“네~땡큐~” 하고 받아드는 순간.
“아저씨가 무서워요”
“아저씨가 엄청 장사꾼이라서 밤에 난로 잠가놔요. 추워요”
“아저씨가 겉으로는 막 웃는데, 우리를 너무 돈으로만 보는 것 같아요”
“여기 가격들이 다 딴 데보다 좀 비싼 것 같아요”
“아저씨가 좀 장삿속이 훤하긴 한데, 그래도 웃는 사람들을 좋아하니까 되도록 많이 웃어주세요”

마지막 평가에 마음이 조금은 안심이 된다.
이런 방명록을 보고도 안심이 되는 이상한 상황;;;

3. 검증된 방명록
생각했던 것보다 방값이 너무 비싸다.
“그럼, 라디에이터 안 틀고 이 가격에 해줄게”
아스파와 펜션 아저씨가 말했다.
'그녀석'과 나는 말한다.
“그럼, 그냥 이 가격에 할까?”
“흠,,, 그래 그럼 그러지 뭐”

체크인을 하는데, '그녀석'은 잠시 화장실엘 간 사이였다.
아저씨가 묻는다.
“웨어 이즈 유어 보이프렌드?”
“하하하. 노! 가르데쉬” (‘도끼눈 아디다스 모기 오렌지 kbs 티브이 가르데쉬 낮잠‘ 편 참고)
“16살?” “하하하. 노! 12살” “ 아기잖아!! KID!!!"
”하하하하“

오늘은 왠지 웃고 싶더라.
웃으니까 안 돌아가던 라디에이터가 돌아갔다.
공짜로!!!
나는 웃고 있는데, 내 눈은 웃고 있는 게 아니다.
아저씨가 웃고는 있는데, 갑자기 얼굴색이 확 변하는 것이 무섭다.
아까 저녁 먹을 때에도 온 집안 식구들이 티브이를 보면서 웃고 있는데,
눈동자는 우리한테 집중하고 있었다.
으으으- 귀신의 집에 와 있는 것 같다.

4. 사람의 마음이란-#1
지금 샤워를 하고 나왔다.
이만한 숙소에 하룻밤 20리라라니.
따뜻한 물로 콸콸 샤워를 하고 나니,
아저씨를 보고 장사꾼이라느니 상술이라느니 그러면서 한준이와 장난친 게 마음에 걸린다.
이런 시골에서 검소하게 (조금은 많이 검소해서 짠돌이스럽지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그게 무슨 말이람.
그냥 환하게 웃는 모습에 (그것도 진심이 아닌 겉치레에)
마음이 단번에 바뀌어 라디에이터를 떡하니 틀어주고 가는 아저씨.
화장실 딸린 트리플룸에 온수에 라디에이터에.
가장 싸고 호화롭게 지내다 가는구나.

2005년 12월 11일
5. 파묵칼레
아.. 난방 되는데도 춥다..--;
어제 아저씨한테 안 웃어 줬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른 아침이 한참 지났는데도, 안개가 뿌옇다.
한치 앞도 안 보일 지경.... 은 아니지만 뿌옇다.
동네엔 사람 한 명 보이질 않고, 조금 더 걸어가니 뿌연 공기 속에 더 뿌연 게 보인다.
아! 파묵칼레!!
공기도 '그녀석'도 나도 축 처져서는 터벅터벅.. 기운이 하나도 없다.
좀 더 걸어가니, 뿌연 파묵칼레 속에 의자 하나와 그 위에 앉은 사람이 하나 보인다.
“표 파는 아저씬가?” 하고 그냥 지나쳐보니, 안 잡길래, “아닌가?”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위에서 우리 보고 손을 마구 흔들면서 소리를 지르는 여자가 하나 보인다.
“표 파는 아줌만가?” 하고 그냥 올라가는데, 더 소리를 지른다;;;
자세히 보니, 신발을 하늘로 높이 쳐들고 있다.
“아~신발 벗으란 소리구나”
우리가 밟으면서(?) 올라가고 있던 그곳이 바로 수영하는 사람들이 나와있는 사진으로만 보던 그곳! 이었던 거다.

고여있는 물은 없고 가장자리 물 내려가는 수로(?) 같은 곳에
신발을 벗고 발을 담가보아도 발목도 안 차는 게 이게 과연 사진에서 보던 그 파묵칼렌가 의심이 간다.
근데 한번 잘못 미끌~하면 옆에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딱 좋게 생겼다.
무섭다;;
원형극장이 있길래 올라가 봤다.
안에 사람은 있는데, 도저히 어디 가 입구인지 몰라서 찢어진 철조망 사이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녀석'은 옷이 찢겼다 --+

터벅터벅 북문 쪽으로 물도 없이 40분은 걸은 것 같다.
(결국 파묵칼레는 입장료 내지 않고 들어간 꼴이 되었다. 근데 표는 도대체 어디서 파는 거야??)
북문을 나오니, 앞은 허허벌판.
도로만 끝없이 꼬부라져 있고 하늘에선 사람들이 날다가 땅으로 내려오고 있다.
아! 행글라이더!
허허벌판 고속도로.
택시도 없고 어떻게 거기까지 2시간 이상을 걸어서 갈까;;;
안탈야 아스펜도스 고속도로에서 히치 하이킹한 실력으로 (‘고생 네 개‘편 참고) 히치하이킹을 하고는 겨우 숙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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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람의 마음이란-#2
아스파와 펜션 아저씨가 오늘 밤은 라디에이터가 11시 이후에나 나온다고 한다.
“that's ok" *^^* 하고 웃어주었다.
조건반사.............. 이런,, XX..
여기 정말 안 좋구나. 아저씨가 제 맘대로야. 아저씨가 대신 벽에 걸려있는 히터 리모컨을 주고 가셨다.
여기 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오. 라디에이터보다 히터가 더 따뜻한 것 같기도 한데.
아저씨가 우리는 잘 웃는 좋은 사람이라서 선물로 주는 거란다.
안 웃어 줬으면 큰일 날뻔했다.
히터 리모컨을 잘못 눌러서 꺼졌다.
5분 만에 다시 틀어달라고 갔더니, 아저씨가 막 화를 낸다.
젠장 --+
좋게 생각할래도 생각할 수가 없어.

아. '그녀석'이랑 어제부터 너무 웃기다.
어제 버스에서부터 대박 웃어버렸다.
어젯밤에는 화장실에 똥이 막혀서 오늘은 계산기 가지고 사기꾼 놀이하느라 숙소에서 죽는 줄 알았다.
아스파와 펜션 아저씨도 등장했다.
‘사기꾼 놀이’ 재미있다. --;;;

7. 유령마을 파묵칼레
파묵칼레 들어오는 버스 안에서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내 앞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서있었던 것이다.
앗. 정면을 보니 디카프리오가 아니다..
그 파란 눈하고 내 껌은 눈이 마주쳤는데 마네킹을 버스 안에다 갖다 놓은 줄 알았다.
그 마네킹에서부터 수상했다.
오후가 되어도 걷히지 않는 구름.
2시가 되어야 나오는 햇빛.
온통 하얀 석회가루.
눈이 아닌 눈들.
저녁을 먹는 내내 우리를 보는 아스파와 펜션의 이상한 눈빛들.
웃고 있으면서 집중하고 있는 눈동자.
5리라의 입장료도 받지 않고 그냥 들여보내는 그 상황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하늘에서 하나둘씩 내려오는 사람들.
사막에서 물이 모자라 거의 탈진해서 걷다가 까마득함의 끝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차를 업어 타고.

아- 내일은 드디어 이 무서운 마을을 탈출해서 셀축으로 가는 거야!!




* '그녀석'의 일기
2005년 12월 11일
아~시차 적응이 너무 잘 됐나? 오늘은 10시까지 자버렸다.
0. 히에라폴리스에 올라갔다.
1. 어느 아줌마가 신발 벗으라고 했다.
2. 원형극장 들어갈 때 무식하게 옷 찢기고 들어감
3. 차잡아서 숙소 도착
4. 신라면 먹음 (완전 감동)

* '그녀석'이 일기 쓰기 귀찮은지 이제는 일기에 번호를 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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