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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느 Mar 25. 2021

꿈 이야기

꿈에도 유통기한이 있나요?


인형놀이를 하며 옷에 대한 관심을 키우다

생각해 보니 나의 옷에 대한 관심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자 아이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선물이라면 인형과 소꿉놀이 세트가 최고 아이템이었던 시절이다. 아기자기한 소꿉놀이 세트에 흙으로 요리 하는 흉내를 내고 인형 옷을 분리해서 다시 입혀보는 엄마놀이 같은 것이다. 그러다가 눕히면 눈을 감는 인형이 나왔고 그 인형에게 말을 걸고 대답해 주면서 스토리 텔링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때론 엄마와 같이 가끔은 동네 친구와 같이 인형놀이를 자주 했었다. 친구보다 예쁜 인형을 가지고 싶었고 그 예쁘다는 것에는 헤어스타일과 더불어 입고 있는 옷도 한몫했다. 너무 어린 나이여서 그 인형 옷을 바꾸어 주고 싶은 충동이 없지 않았으나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만화책을 손에 넣은 순간부터 나의 세계관이 달라졌다.


옷을 그려볼까?

그 만화책 속에 나오는 별이 반짝이는 눈을 한 여자들의 긴 곱슬머리와 화려하고 다양한 드레스 구경은 줄거리만큼 흥미로왔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만화책을 펴 놓고 똑같이 그려보기 시작했다. 이미 종이인형은 학교 앞 문구점에서 인기 있는 아이템으로 팔리기 시작했는데 두 어 개 사 보면 파악이 끝날 정도로 옷이 그다지 다양하지는 않았다. 만화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보니 만화가의 패션 센스에 따라 새로운 옷 구경을 실컷 할 수 있었다. 줄 없는 갱지가 묶인 스프링 노트를 종합장이라고도 부르는데 특히 산수나 과학 문제를 풀 때 많이 사용했다. 나는 그 종합장에 예쁜 여자 그림 그리기를 더 좋아했다.



사실 얼굴이 그리기 쉬운 부분은 아니나 정형화된 나만의 얼굴 라인을 쓱 그리고 별 눈과 웃는 입만 그려 주면 그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옷을 마음대로 그려 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현실성 없는 레이스 달린 드레스를 참 많이도 그렸다. 한 때 즐겨 보았던 캔디 만화도 나의 모방 욕구에 불을 붙여 주었음은 물론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조금씩 공부에 대한 부담이 생기고 학력경쟁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열을 올리면서 종이만 보면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자발적 욕구를 꾹 꾹 눌렀다. 무엇보다 그런 예쁜 여자 그림을 그리면 어른들이 보기에 아직 만화책을 못 뗀 철없는 아이들 짓으로 보이다 보니 그 취미는 더 발전되지 못했다. 종합장이 수학 문제 풀이장으로 바뀌면서 하얀 여백의 종이를 보는 창작의 설렘도 눈 녹듯 사라졌다.


옷 만들기를 배운 가정시간

중학생이 되니 학교에서 뜨개질, 수예, 블라우스, 한복 만들기를 공식적으로 배울 기회가 생겼다. 당연히 누구보다 열심히 그 시간을 기다리고 즐겼을 수밖에 없었는데 문종이로 만드는 블라우스에 만족하지 못하여 혼자 천으로 블라우스를 만들어 가서 가정선생님의 칭찬을 받은 기억이 난다. 내신성적에 도움(?)이 되는 줄 알고 엄마가 한복점에 가서 천을 얻어다 주셨다. 겨울에 여학생들이 많이 목에 두르고 다니던 목도리를 뜰 때는 손뜨개에 일가견이 있던 엄마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꽈배기 무늬를 여러 개 집어넣고 남다른 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 홀릭했다. 그때쯤은 이제 자투리 천으로 인형 옷을 직접 만들어 보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의상 디자이너의 꿈

고등학생이 되니 진로에 고민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고 3 때 담임선생님이 나의 진로희망을 물으시고 난감해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툭 뱉은 '의상 디자이너'는 주로 이과에 있었던 터여서 교차지원을 하면 20~30점을 손해 보아야 한다고 했다. 한 마디로 나는 이과를 진학했어야 했다. 수학이나 과학보다는 국어와 사회교과가 높은 성적을 유지하는 데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계열을 선택한 실수였다. 지금은 진로교과가 생기면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자신의 진로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나의 꿈 찾기가 전공을 정하는 것보다 당연 먼저 오랫동안 시작되어야 하는데도 그저 성적에 따라서 대학 전공을 대충 결정하던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어렸을 때는 다들 큰 꿈을 가졌을지 몰라도 고등학생이 되면 그 꿈은 매우 현실적으로 좁아지고 고 3이 되면 그저 번듯한 대학 배지를 다는 게 소원이  된다.


그렇게 대학 입학원서를 쓰는 날이 다가올수록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가 그 계열 이동을 감당하고서 갈만한 마음에 드는 대학이 많지 않았고 거의 서울에 있는 이 전공의 대학에 나를 보낼 만큼 우리 집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집안의 자랑이던 서울의 립대에 다니는 오빠를 지원하는 것도 부모님은 무척 힘들어하셨다. 지방에 있는 관련 대학은 교차지원을 하고도 성적이 넘쳤으나 이렇게 지원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담임선생님은 궁금해하셨다. 다들 성적보다 높은 데 가려고 난리인데 이렇게 낮출 것이 무엇이냐는 말씀이었다. 딱히 졸업 후의 진로까지 분명한 소신이 없었기에 나의 꿈은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꿈의 실체가 분명하지 않으면 이렇게 쉽게 흔들리고 내려 놓는다.


옷 입는 즐거움으로 만족하다!

친구 따라 취업이 용이하고 남들이 가고 싶어 하고 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가서 그럭저럭 적응을 했다. 아주 즐겁지 않았지만 여학생들의 취업이 쉽지 않았던 시절 정확한 출퇴근과 긴 휴가는 버리기 어려운 강점이었고 내가 벌어서 내 필요를 충족한다는 것은 꽤 만족스러웠다. 다소 궁핍했던 어린 시절의 옷에 대한 욕구를 어느 정도는 원하는 만큼 실현하면서 살 수 있었다. 옷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옷을 입는 사람으로 즐거움을 누리고 사는 것으로 타협했다. 지금은 안 먹어도 살이 찌는 우울한 나이를 살고 있지만 한 때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가냘픈 체격 (44kg 내외) 이어서 160 정도의 키에도 마음에 드는 66 사이즈의 숙녀복이 작아서 못 입는 일은 많지 않았었다.


새내기 주부의 홈패션으로 시작한 꿈실현

정작 나의 어린 시절 꿈은 엉뚱하게 실현이 되었다. 임산부가 되어서 마음대로 외출하기도 어렵고 새댁들의 로망인 예쁜 실내 인테리어에 관심이 생길 무렵 홈패션 재봉틀 배우기가 주부들의 취미생활로 인기가 있었다. 의자를 바싹 당겨 안기도 어려운 상황에 앞치마, 티슈케이스, 쿠션 등을 만들면서 매일 늦게까지 가게에서 작품을 완성하다가 결국 재봉틀을 구입하기에 이른다. 홈패션에서 시작하여 신생아 이불에서 커튼까지 정신없이 달렸다. 배가 나오면 귀찮고 몸이 무거워서 만사가 귀찮아지는 법이다. 힘든 줄도 모르고 무에서 유를 찾는 즐거움에 빠졌었다.


출산 후에는 몇 가지 패턴의 스커트까지 만들어 직장에 입고 다녔다. 패턴만 있으면 소재와 약간의 디테일이 다른 법이어서 지퍼를 달고 허리심을 처리하는 스킬을 배우면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할 것 같았다. 추석을 앞두고 마땅한 외출복을 사지 못했을 때, 한나절 뚝딱 만든 체크무늬 스커트를 한참동안 잘 입고 다니기도 했다. 임산부 시절 허리 사이즈로 만든 모직스커트는 한동안 장농 안에 보관되어 있다가 중년에 이르러 겨울마다 정장 스커트로 애용했다.


 문화센터를 그만두고 패턴 북을 사고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찾아 딸아이의 원피스며 오빠의 신혼집 커튼을 만들고 분양받은 우리 집 아이들 방 커튼을 만들면서 고가로 산 재봉틀이 빛을 발하는가 했다. 매일 뭔가 뚝딱 만들어지는 생산의 기쁨은 해 본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를 것이다. 가능한 일로 돈을 벌고 좋아하는 일은 취미생활로 살아도 괜찮을 듯싶었다. 그 후 갑자기 고등학교 담임교사가 되어 출퇴근만으로도 벅찬 직장생활이 이어졌고, 그 뒤에는 직장에서 못 처리한 일을 집으로 싸 가지고 오는 날이 훨씬 많은 고단한 업무가 반복되면서 나의 취미생활도 저 멀리로 던져졌다.


옷 코디하는 재미로 살던 시절

나의 로망은 다시 옷을 잘 입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남고에서 담임을 할 무렵 나의 의상 콘셉트를 나름 분석해 본 제자들이 나름 쓸만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내일 미팅이 있는 우리 반 S에게 의상 코디를 제안해 주라고 다. "내가 왜~ " 하면서 깔깔 웃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옷을 입는 것도 안목이다. 많이 사 봐야 하고 많이 입어봐야 한다. 마네킹에 있는 옷 전체를 사 가야 할 만큼 보는 눈이 그저 그랬던 나도 매일 옷을 바꾸어 입는다는 나름의 무대 매너(?)로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조금씩 옷 입는 감각도 늘었다. 자기 몸에 맞게 좋은 옷을 잘 못 입는 사람을 보면 같이 가서 옷을 골라주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가 있다. 고가의 명품백도 잘 들어야 빛나는 법! 심플한 옷도 색상만 고려하면 엣지있게 입을 수 있다.


몇 년 전에 지방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서 거추장스러운 짐을 다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 집에 재봉틀이 있는 걸 보신 시어머님이  가져가서 쓰겠다고 달라고 하신 적이 있다. 재봉틀을 쓸 줄 아시니 나보다 요긴하게 쓰실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이 재봉틀을 다시 쓸 수 있을지 모를 만큼 기력이 빠져가는 중년 워킹맘이었기에 재봉틀만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그런데 재봉틀이 내 오랜 꿈의 한 조각이 실현된 것이었기에 쉽게 내놓을 수가 없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제 나 역시 일을 그만 두면 고가의 물건을 덥석 살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그 걸 내놓다는 건 영원히 내 어린 시절의 꿈을 버리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옷그리기를 시작하다!

나이가 들면 취미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도 사람의 성향은 무시할 수 없는 법인지 항상 어렸을 때 좋아했던 것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시간이 생기면 배우고 싶었던 것이 옷만들기였건만 코로나로 불가항력이 되니 핑계 겸 아직도 내 재봉틀은 빛을 보지 못했다. 한 번 시작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할 듯하여 내심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신 나는 손그림을 배웠다. 무엇을 그리고 싶었는지 모르고 아이패드 드로잉을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게 매력적인 얼굴 그리기에 빠져서 어제부턴 내가 그토록 그리고 싶었던 패션 일러스트를 시작했다. 아직 그런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민망하지만! 신체의 비율과 인체의 골격까지 고려해야 하는 정교한 그림이어서 언제 거기에 도달해 보려나 하다가 또 그냥 툭 나를 던져 보기로 했다. 내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이 그렇게까지 정교하지 않아도 될 듯했기에!


꿈에도 유통기한이 있나요?

취미생활이 직업이 될지 직업이 취미생활이 될지 앞을 짐작할 수 없는 세상이다. 영어교사로 살았던 나는 요즘 내 업을 취미생활로 한다. 원서를 보고 미드를 보면서 다른 세상으로 언제든 날아가서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동안 일에서 얻은 노하우를 발휘하여 재능 나눔 원서해설필요한 사람들에게 정보를 나누어주기도 한다.


 옷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내 꿈은 잠시 내려놓았지만 옷 그리는 취미생활로 부활해서 이제 또 다른 점과 합치고 있는 중이다. 내 취미와 경력과 새로운 호기심이 만나 어떤 세상으로 갈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아무리 가둬 두려고 해도 사람의 타고 난 성향을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지금 나의 관심을 끄는 모든 것들이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간다. 그곳이 어딘지 나조차 궁금해서 하루하루가 지루하지가 않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은퇴는 이런 모든 것을 실현해 줄 수도 있는 꿈같은 현실이다. 문예반에서의 빛나던 나, 미술시간과 가정시간에 행복했던 나를 찾아서 다시 한 조각 한 조각 연결해 본다. 언젠가 내가 그림으로 그렸던 이 옷들을 만들어 볼 수 있겠지. 꿈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살아 있는 한 꿈꿀 수 있다.

 

흔한 봄 의상 코디

<손그림 107호>

*입과 눈매를 다르게 그려 주기만 해도 사람의 인상이 바뀐다. 왼쪽은 발랄한 여대생, 오른쪽은 20대 후반~ 30대 이상의 직장여성 분위기. 밝은 7부 면셔츠는 팔뚝을 살짝 걷어 입으면 초여름까지 입을 수 있다. 셔츠 자락을 벨트를 맨 바지 안에 넣어 입은 후, 포인트가 있는 숄더백을 들어주면 편한해 보이면서도 깔끔한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활동성을 강조한 외출복이 된다. 바지는 배기팬츠처럼 활동하기에 여유 있으면서 밑으로 갈수록 좁아져서 발목에서 떨어지는 스타일. 가장 좋아하는 봄옷스타일. 유행은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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