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스케이트부터
스케이트 못 타도 하키 할 수 있나요?
하키 이야기는 언제나 쓰기 전에 심호흡을 한 번 하게 된다. 너무 가슴속에 담아둔 이야기가 많아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생각하고 숨을 고르기 위함이다. 그만큼 내 삶에 아주 많은 부분을 잠식하고 있기도 하다. 거의 생활의 3분의 1 정도는 하키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키맘의 삶은 정말 그러하다. 아니 이보다 더한 하키맘들도 정말 많다.
어쨌든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우선 처음 시작부터 차례대로 해나가 보자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스케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캐나다에 와서 커뮤니티 센터에 등록할 때, 단연 서두른 것이 스케이트 등록이었다. 막연히 '캐나다'하면 '스케이트'는 다 잘 타야 한다는 일종의 편견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 학교에서 아이스 링크를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가는 학교 밖 활동이 있었는데, 스케이트를 뒤로 타는 부모도 있었고 언뜻 보기에 스케이트는 기본 능력이 아닐까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 것이지만, 또 스케이트를 잘 타지 못하는 사람도 정말 많다. 한국의 모든 사람이 태권도를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캐나다도 모두가 스케이트를 잘 타는 것은 아니다.
커뮤니티 센터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하자면, 이곳 시(市)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공공 문화센터 같은 곳인데, 대부분의 활동은 이곳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물론 사(私) 기관도 많다. 한국의 학원처럼 따로 운영하는 수영도 있고, 태권도, 미술, 테니스, 골프 등등 이용 가능한 기관은 많다. 다만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런 곳의 레슨 가격은 착하지 않다. 특히 한국처럼 학원 버스 같은 운송 서비스를 해주지 않기 때문에-버스를 운영하는 곳도 물론 있다- 비용과 부모가 아이를 데려다주는 수고까지 고려하면 절대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말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시에서 운영하는 서비스는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많이 이용한다. 물론 수업의 질이 사 기관과 비교하면 아주 좋다고 말하기 어렵긴 하다.
하지만 스케이트는 시에서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편이고, 레벨을 정해 공식적으로 스케이트 수준을 구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른 사 기관에서 스케이트 수업을 하는 곳을 찾기 어렵기도 하고, 수영과 더불어 굳이 다른 기관을 이용할 필요성이 없는 분야기도 하다. 그래서 스케이트 수업에 열을 올렸던 것 같다. 다만, 수업 시간이 30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지기도 했고, 개인 레슨-이것도 30분이다-을 신청하지 않는 한, 개별 지도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스케이트 실력이 향상되리란 기대를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은 완벽한 초보였다.
아이 둘 다 한국에서 스케이트를 배운 적이 없어서 제일 기초레벨부터 시작했다. 혼자 스케이트를 탈 수 없었기 때문에 보조해주는 장치들을 붙들고 타기 시작했고, 앞으로 한발 한발 나가는 것을 보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당시의 영상을 보곤 하는데, 어설픈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한 때는 이랬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지금은 웃으면서 보지만 당시는 언제 아이들이 멋지게 스케이트를 탈까 조바심도 느꼈던 것 같다.
스케이트 수업을 들은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둘째 아들의 친구 엄마가 하키에 입문하기를 권했던 것이었다. 뭣도 모르고 아이들은 하키에 등록하기를 바랐지만, 엄마로서 이게 과연 가능할까? 위험하지는 않을까? 여러 고민이 있었다. 하키를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스케이트를 엄청나게 잘 타야만 한다는 것은 상식과도 같았기 때문에 아들 친구 엄마 말대로 도전하는 것이 맞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그 엄마의 한 마디에 마음이 움직였다.
"어차피 가서 스케이트도 배울 건데, 스케이트 레슨 비용도 아끼고 좋잖아. 동시에 다 할 수 있고 효율적이지."
스케이트를 잘 못 타는데 하키를 시작한다고? 과연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으니 대답하더라. 생각보다 아이들이 다 스케이트를 잘 타는 상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냥 가서 하다 보면 스케이트 실력은 늘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은 실제로 반은 맞고 반은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로 처음 가서 보니, 말 그대로 스케이트를 잘 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스케이트 실력은 따로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니 스케이트를 잘 못해도 하키를 시작할 수는 있지만, 또 하키를 잘하기 위해선 당연히 스케이트는 배워야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그 엄마의 말에 용기를 내어 하키에 등록했고, 다행히도 하키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있던 시간이 아까워 한국 엄마 특유의 준비 정신으로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더 빨리 배울 수 있도록 했다. 하키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다른 활동들을 잠시 접고, 스케이트와 가벼운 하키 기초 수업을 근처 올림픽 센터에 등록해 기본기를 쌓도록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이는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스케이트를 잘 타지 못하면 아이스 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배움의 속도도 늦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 이미 스케이트를 잘 타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는 어릴수록 눈에 띄게 늘어갔다. 우리 아이들은 단시간이라도 스케이트를 집중해 배워갔기 때문에 아이스에 올라서자마자 하키를 배우는 것이 좀 더 여유롭기도 했다. 반면 스케이트가 부족한 아이들은 서 있는 것, 앞으로 가는 것에 안간힘을 쏟느라 같은 하키 스킬 세션을 들어도 확실히 발전이 더뎠다.
덕분에 하키의 처음이자 기본은 무조건 '스케이트'라는 생각은 나에게 진리처럼 머릿속에 콕 와서 박혀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하키를 시키고 싶다는 부모가 조언을 구하면 반드시 이야기한다. '닥치고 스케이트'부터 해야 한다고. 스케이트 실력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결국 하키에 재미를 붙이느냐, 하키를 끝까지 하게 되느냐, 잘하는 선수가 되느냐. 이 모든 결과는 스케이트에서부터 시작된다. 스케이트 능력 없이는 하키를 말할 수조차 없다. 따라서 하키를 시킬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선 스케이트부터 어떻게든 배우라 하고 싶다.
물론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스케이트는 두고두고 이미 하키를 잘하는 상태에서도 계속 배워야 한다. 하키를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면 말이다. 스케이트? 이게 끝이 아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또 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