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젓가락(가제)

라면을 먹다

by 융융이


그것은 나의 앞에 있다. 그것과 나는 서로를 본다. 꼿꼿이 서서 틈 없이, 그것은 공기구멍 하나 허하지 않는 단단함으로 미동이 없다.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가만히 서있다. 그것이 곧 나에게 다가온다. 나도 다가간다. 그것과 나는 같은 곳을 향해 간다. 속이 보이지 않는 혼탁한 붉은 물, 그 안에 있는 알 수 없는 같은 점으로 길고 곧게 뻗어간다. 그리고 같은 것들에 한데 뒤엉킨다. 가늘지만 매끄러운 실타래가 그것과 나를 감아 빙빙 두른다. 질서 없이 엉클어진 뭉치 속에서 그것과 나의 얽힌 다리 사이로 화한 빛이 스며들어 온다. 그것이 젖는다. 그 사이 나도 젖는다. 메마른 나의 허연 표피가 금세 선홍색 물기를 빨아들이며 탄력을 갖춘다. 내 속살에 타액으로 더럽혀진 것들이 서서히 번져가며 수혈하듯 내 몸의 부피를 키운다. 뻣뻣하기만 했던 줄기 하나하나가 풀어지듯 녹아간다.


나는 다시 앞의 그것을 보았다. 퉁퉁 불어난 부피 끝의 엷은 결로 나를 슬며시 친다. 나도 받아 그대로 친다. 눅눅해져 말랑해진 그것과 나의 몸은 부딪혀도 소리 내지 않는다. 진동하는 것을 몸 안으로 밀어내어 감각을 지우기 때문이다. 습윤한 표피는 눌리는 힘을 조용히 삼키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제 자리를 지킨다. 이내 나는 그것에게서 멀어진다. 그것도 나에게서 멀어진다. 그리고 공기 속에서 서로를 다시 본다. 이물감과 함께 엉켰던 두 개의 다리 사이에 뚝뚝 물기가 떨어진다. 그것과 나는 같은 것을 흘린다. 미처 마셔 삼키지 못해 넘쳐나는 핏빛 방울이 같은 속도로 아래를 찾는다. 위로는 여전히 그것과 내가 점한다. 그것이 나의 바깥으로 비스듬히 내가 그것의 바깥으로 어슷하게. 결코 같은 곳을 보지 않은 채 누운 것도 서있는 것도 아닌 채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나는 나대로 어긋난 채 부유하고 있다. 그것과 내가 똑바로 서는 순간은 같은 것을 찾으러 향할 때뿐이다.


그것과 나는 서로를 밀어낸다. 그러나 움직임이 없다. 같은 것을 같은 힘으로 밀어내어 균등한 정지 상태다. 엉켜있는 것들에 닿은 점에 온 몸의 힘이 쏠린다. 단 하나의 닿은 점에 모든 걸 집중한다. 하지만 여전히 점은 원래의 그 자리 그대로다. 그것 쪽으로 가지도 내 쪽으로 오지도 않는다. 그저 평행이 당기며 밀어 제치는 움직임은 이리저리 따라다니는 내내 같은 방향이다. 아니, 그러고 보니 같은 방향이 아니다. 거울처럼 다른 방향이지만 또 같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궤적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나이고 나는 그것이다. 그것과 나는 하나지만 또 따로다. 두 개의 다리를 하나로 공유한 몸뚱이를 이름 모를 힘이 부드럽고 날카롭게, 이쪽으로 그리고 저쪽으로 휘감아 잡아채 당겨왔다. 천천히 그렇지만 빠르게 당기는 힘은 그것과 나를 두 개로 갈랐다. 가랑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길고 날카롭게 찌익 찢어 나누며 쪽. 얇은 하이얀 먼지를 날리며 하나로 쪼개졌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었던 것을 하나의 두 개로 가른 자리는 매끄럽지 않다. 까슬한 단면에 삐죽이 잔가시들이 머리를 낸다. 힘이 없는 가시들은 축 늘어져 제멋대로 몸 밖을 여기저기 찌른다. 날카로운 가시들은 그것과 나의 비벼 오른 체온으로 죽어 버린다. 숨진 가시들은 매끄럽게 떨어져 나간다. 마치 그것과 나에게 있던 자리는 저들을 위한 게 아니었던 듯 소리를 내지 않고 사라진다. 가릴 것이 없는 매끄럽고 하얀 몸뚱이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온 몸을 더럽힌다. 둥둥 너절한 혼잡함 속으로 몸을 굴린다.


그것과 나는 누워있다. 바닥에 드러누워 나란히 하늘을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곧이어 보드랍지만 단단한 것이 나를 붙든다. 미세한 힘이 몸의 양 끝에서 서서히 이동한다. 중심으로 점차 움직이던 그 두 개의 맥은 중간이 아닌 어디선가 하나가 된다. 그 하나는 다시 나의 왼쪽 허리를 뜯어내 오른쪽으로 접는다. 날카로운 결들이 살아나 튄다. 나의 안에서 바깥으로 배출하는 살결들은 나를 다르게 한다. 그것과 나는 더 이상 같지 않다. 두 개의 나는 다시 그것과 나로 분열한다. 그래서 원래의 그것과 또 다른 그것,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는 하나도 둘도 셋도 아니게 된다.




아직 평을 받지 못한 글.
감정을 빼려 했는데, 아직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하신다.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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