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컵
월요일 아침 8시 18분. 그의 목소리가 커피 향만이 가득한 시공을 가른다. 따뜻한 오늘의 커피 한잔 주세요. 드시고 가시나요. 아니오. 짜인 대사인 듯 기대 없이 묻고 답하는 대화 끝에 덜렁 들린 내 안으로 뜨겁고 검은 것이 나린다. 몸 가장 안쪽에서부터 차올라 구석구석 퍼져가는 정열에 나의 온도도 덩달아 크게 오른다. 따뜻하다던 그것은 결코 따뜻하지 않다. 케냐를 머금은 그것은 좀 더 깊고 좀 더 농염한 빛이다. 땅을 녹이는 장렬한 태양의 열기 같기도 혹은 버썩 메마른 대지의 기운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견딜 수 없는 강렬함. 내 안의 검은 유혹의 물결은 오히려 그것이 더 적합하리라.
참기 힘들 만큼 뜨겁게 달아오른 나의 몸을 주름진 두터운 가면으로 한 겹 감추어 버린다. 이는 손끝 하나 댈 수 없던 나의 몸을 안아오는 그를 위한 배려다. 그의 손이 다가와 나를 조심스레 감싸 안는다. 그의 손에서 나의 몸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의 감각이 나의 표피를 예민하게 자극한다. 그의 혈관 구석구석 갈망으로 가득 찬 격렬한 맥박이 쉼 없이 고동한다. 그가 시선을 내려 다가온다. 가까이 가까이 그의 숨결이, 그의 체취가 느껴지는 거리에 와 멈추었다. 얼굴의 바로 앞, 그의 도톰한 입술이 조용히 열린다. 후후 부는 더운 입김에 가느다란 아지랑이가 사납게 흔들리며 갈 곳을 잃는다.
말이 없는 주저함이 감도는 팽팽한 공간, 그와 나 사이의 공간이 긴장으로 얽혀 끊어질 듯 당겨온다. 꼼꼼하게 정적으로 채워진 좁은 간격을 뚫고 먼저 다가온 것은 그. 조심스레 다가오는 붉은 입술. 아주 천천히 다가와 나에게 살포시 아랫입술을 놓는다. 지긋이 닿은 입술, 그 위로 뜨끈한 감각이 스며든다. 그러자 다급히 윗입술을 덮어 나의 기운 하나 놓치지 않게 입 안에 나를 단단히 가둔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 다시 멀어지는 그의 입술. 그 사이로 나지막한 한숨이 공기 속에 섞인다. 위안을 얻은 듯 데워진 날숨에 만족이 어린다.
나의 몸에 익숙함을 새기듯 서서히 잠식해오는 그의 욕망 어린 입술. 한번, 두 번 점점 더 갈급해지는 그는 속도를 더한다. 조금씩 조금씩 잦은 입맞춤으로 나를 진하게 탐해간다. 나로 인해 젖어든 번들거리는 입술로 내 안의 물기를 남김없이 앗아간다. 나의 향기를 입 안 가득 머금은 그는 감겼던 눈을 서서히 뜬다. 다시 한 모금 가벼워진 나. 나를 채우던 것을 빼앗길수록 나는 더 비워져만 간다. 그리고 그만큼 내 안의 더럽혀진 속살이 천연히 드러난다. 메말라가는 나와는 달리 그는 활력으로 단단히 차오른다. 생기를 뿜는 미소를 슬며시 짓는다. 차게 식어가는 나의 온도만큼이나 우리 사이의 뜨거움은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나는 그의 손 안에서 무게를 잃어간다.
텅 비어버린 나와 그의 관계는 공기만큼 가볍다. 지금 우리는 함께 있지만 그는 더 이상 나에게 시선 한 조각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다시금 고개를 접어 다가오는 그. 나로 향한 그의 눈은 생각을 띠지 않다. 무심히 입가로 건조한 나를 이끈다. 조그만 입술을 열어 하얗고 예리한 이를 내어 놓는다. 그러다 문득 날카롭게 버러진 것으로 나를 짓씹는다. 나의 몸을 잘 근 잘 근 물어뜯어 자잘한 생채기를 남긴다. 여기저기 상처와 검은 욕망의 흔적들을 아로새긴 나는 이제 그의 손아귀에서 열없이 벗어난다.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어둡고 컴컴한 곳으로 미련 없이 던져진다. 이제는 나를 찾는 이도 함께 뜨거움을 나눌 대상도 없다. 그를 만나기 위해 긴 기다림을 이어온 날의 끝에 찬란했던 건 잠시 잠깐의 순간, 단 한 번의 불꽃에 나의 온몸과 마음을 사르고 다시 길고 긴 안식에 빠져든다. 그렇게 나는 오롯이 혼자가 된다.
<이런저런 생각들>
실은 좀 감정이 많이 들어갔다고 안 좋은 리뷰를 들었던 글이다. 다시 수정해보려고 했는데, 최초의 습작이라 버리거나 바꾸기 싫어졌다. 처음은 처음이라는 이유로 의미가 있는 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딱 하나밖에 있을 수 없는 시점이니까. 어쨌든 수강하면서 배우다 보면 점점 나아지든지 하지 않을까?
게다가 제목을 마지막까지 제대로 짓지 못했다. 그냥 늘 마시던 오늘의 커피 그란데 한잔 테이크아웃으로 마시면서 편하게 쓴 글이라, 제목을 바꾸지 못했다. 원래 처음은 그러지 않을까? 거칠고 이상하고 미완의 그런 느낌. 그래서 그냥 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