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려지는 날

일회용을 쓰다

by 융융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다


다년간 칼럼만 쓰다 보니, 어느새 나는 글 쓰는 기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도 없고, 감상도 없는 지식과 정보만을 다루는 글 안에 머물러 있었다. 글쓰기가 삶 속에서 그저 그런 일들이 되어가면서 스스로의 매너리즘에 조금씩 질려갔다. 그래서 어는 날 문득 글쓰기를 다시 배워보고자 했다. 감각적 글쓰기라는 장르를 선택해서 강의를 신청해 듣게 되었다.


빠른 글쓰기가 익숙했던 내게 이렇게 장시간 생각을 하게 하고 여러 차례 퇴고하게 하는 글쓰기란 여간 어색하고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묘하게 고통스러움 속에 작은 희열을 찾게 되었다. 그동안 쓰지 않은 근육을 쓰면서 느끼는 아린 통증이 주는 기분 좋은 감각이라고 하면 좀 비슷할 것 같다. 그래서 내친김에 열심히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논문도 쓰고, 칼럼도 쓰고 머리 속이 조금 바쁜 상태긴 하지만 틈틈이 영감들을 정리해서 글로 남기게 되었다.


첫 수업 이후, 첫 과제를 받아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복제하듯 써서 냈는데, 리뷰가 무척 좋지 않았다. 내가 너무 상업적 감상에 익숙해진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적 터치라는 것은 아직 내게 낯설고 익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내가 대중적인 감성에 더 가깝다는 걸 이번 기회에 더욱 깨닫게 되었다. 역시 난 문학이라는 장르와 친해지긴 어려운가 보다. 포기할까 살짝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자괴감도 함께.


하루쯤 고민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 스스로의 한계를 너무 빨리 규정해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많은 반성들을 하며 발버둥 치던 것이 반은 점하고 있었는데, 이런 까다로운 글쓰기가 또 하나의 반성의 시간을 준다. 자꾸 나의 아픈 곳을 콕콕 찌르기 때문에. 그래서 습작을 Alt+Del 키를 눌러 싹 지울까 생각하다가 그냥 기록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두고두고 보면서 자꾸 고쳐보리라. 완성은 못하더라도 여기서 또 배우는 능력들이 언젠가 나의 것이 되어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버려지는 날>의 기획안


기획안은 그럭저럭 완성하긴 했다. 기획안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제목: 내가 버려지는 날 (부제: 일회용을 쓰다)

-부제는 일회용품을 ' 사용한다'와 '글로 쓰다'를 중의적으로 표현했다.


소개: 내가 버려지는 날의 소재는 모두 일회용품이다. 일회용품은 단 한 번 쓰임을 당한다. 일회용의 존재는 그 쓰임을 위한 것이고, 그 쓰임으로써 이들의 존재는 의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그 순간이 바로 그 존재의 마지막인 게 된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빛남을 위해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고, 결국에는 다시 버려지게 되는 일회용의 모습을 보며 비극적인 삶의 한 형태를 투영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일회용을 의인화해 삶을 형상화해보려 했다.


내용: 제목처럼 글은 일회용이 쓰여져 버려지는 날의 이야기를 다룬다. 순간의 정황과 감각을 담기 위해 대부분 현재형으로 구성된다. 일회용이 쓰이는 상황의 전개를 그려내며 사람의 삶의 단편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사랑을 하다 버림받는 여인, 분열된 자아로 인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 타인을 위해 대신 목숨을 바치는 이름 없는 의인 등으로 이야기를 만들 것이다. 즉 하나의 일회용품마다 설정된 사람들의 상황을 담아 다층의 의미를 지닌 해석이 가능하도록 할 것이다.


문체: 짧은 산문시이자 감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자 한다. 따라서 시점은 모두 소재 자체의 입장으로 들어가 1인칭 주인공의 측면에서 다루어진다. 다만 감정적인 언어보다는 상황을 설명하는 관조적인 문체로 담을 것이다.


붙임: 일회용 사용을 줄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