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라이트의 <베이비 드라이버> 비평
이 영화의 주제와 매력은 오프닝 씬부터 확연하다. 오프닝 씬은 Mint Royale의 'Blue Song' MV 오프닝을 더 스타일리쉬하게 재구현했다. 카메라는 범행 장소인 은행을 비춘다. 그리고 곧 커다란 바퀴가 앵글에 꽉 차게 들어온다. 마치, 닥터가 말한 ‘바닥 세계’가 끝없는 원형으로 반복되려는 듯 말이다. 이것은 베이비가 아니 어쩌면, 이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이 살아가는 ‘원형 세계’다.
이 영화는 ‘원형’으로 반복되는 것에 대해 계속 강조한다. 자동차의 바퀴, 세탁소 씬의 세탁기, 베이비가 듣는 테이프와 LP판 그리고 iPod의 패드까지 다 원형으로 끝없이 돌아가는 것들이다. 이는 카메라 사용에서도 보인다. 초반 베이비가 커피 배달하는 씬, 세탁소에서 데보라랑 대화하는 씬 등. 베이비가 음악을 들으며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듯한 씬은 마치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카메라도 그의 주변을 원형으로 맴돈다.
이토록 이 영화에서 원형 반복을 계속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베이비 드라이버>는 결국, ‘원형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자(이는 관객이 될 수도 있겠다) 그 안에 속한 베이비가 ‘원형 세계’를 벗어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 논리는 2가지 이유로 뒷받침될 수 있다.
첫째는 버디의 존재다. 버디란 캐릭터를 보면 마치 ‘원형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베이비의 미래 모습으로 보인다. 그도 운전과 음악을 사랑했고 ‘달링’이란 이름의 애인도 있다. 버디와 베이비가 Queen의 ‘Brighton Rock’을 같이 듣는 투샷이 친근하게 느껴졌다면 이는 착각이 아니다. 버디가 아무리 도망가 봐야 탈출구는 없다고 베이비에게 소리치는 대사는 ‘원형 세계’에 벗어나지 못한 성인 베이비의 절규로도 보인다. 때문에, 베이비가 버디와 죽도록 싸우는 씬은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고 넘어서려는 베이비의 자의식이며, 끝에 이르러 버디를 살해한 모습은 ‘원형 세계’에서 살아가는 자의식을 죽이고 그 세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베이비의 탄생이다.
둘째는 베이비가 감옥을 갔다 온 시점 전과 후의 변화다. 감옥을 가기 전 베이비는 행복해 보이는 씬조차 거시적으로 보면, 채무 관계에 얽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애인과 가족이 위협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에 살아가는 인물이다. 꿈에서 웃으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데보라의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흑백 화면이다.(흑백 화면은 과거의 논리로 작동하므로) 반면, 감옥을 갔다 온 뒤의 베이비는 ‘마일스’라는 본명도 되찾고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던 흑백 꿈도 컬러로 바뀐다. 이는 ‘원형 세계’에서 벗어난 자의 성취다.
베이비를 제외한 ‘범죄의 세계’ 속 인물들은 본명을 되찾지 못 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1992) 모티브가 돋보이는 이 설정은 ‘원형 세계’에 갇혀 ‘낭만’을 잃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무거운 경고처럼 들린다. ‘진실된 자가 진실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에드가 라이트의 전작 <뜨거운 녀석들>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때문에, 스크린 앞에 놓인 관객은 닥터(혹은 타인)의 삶을 대신 살며 ‘원형 세계’에 갇힌 베이비로 살아가고 있진 않은지 스스로 마주하게 된다.
이 영화는 플롯도 원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야기 → 트라우마(이명 현상) → 이야기 → 트라우마(이명 현상) → 이야기 → 트라우마(이명 현상)’식으로 영원히 반복되는 구조다. 그러다 이 원형 플롯이 깨지는 시점이 있다.
베이비가 마지막 털이에서 부모 죽음의 트라우마 기억과 비슷한 방식으로 배츠를 살해하는 장면과 감옥을 가기 전 시점으로 되돌아가 버디를 죽이고 나서 애인 데보라와 도망가는 씬이 그 원형 플롯이 깨지는 순간인데, 그 중에서 전자는 베이비가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파괴하려는 장면이기도 하다. 후자 씬에서는 베이비가 아끼는 ‘MOM’ 테이프 노래가 자동차에서 흘러나온다. 자동차와 테이프는 원형으로 계속 반복되는 것이므로 ‘원형 세계’의 부속품이다. 아직 베이비가 ‘원형 세계’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알려주는 장치다. 전진을 하든, 후진을 하든, 도망간다는 점에서 똑같은 방향을 달리던 베이비는 결국 ‘멈춤’을 택하고 시동을 끄고 차키를 강가에 던진다. 작동이 멈춘 자동차와 테이프, 이것이야 말로 ‘원형 세계’에서의 완벽한 탈출이다.
하지만 <베이비 드라이버>의 ‘원형 세계의 파괴’라는 서사 자체는 데이빗 핀처의 <파이트 클럽>(1999) 등 특정 세계에 갇힌 인물이 또 다른 자아와 충돌해 새로운 자아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비슷한 모습을 지녔다. 때문에, ‘원형 세계’란 세계관은 이미 여러 영화에서 다룬 서사 과정이라 새롭지 못하고 평이하게 느껴진다. 다만, ‘원형 세계’를 여러 장치들과 함께 영화 속에 단조롭게 녹여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에드가 라이트의 장점은 효율적인 코미디를 연출한다는 점이다. 점프컷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루함을 없애고 속도감은 높였다. 이번 작 <베이비 드라이버>는 기존 에드가 라이트 스타일과는 차이가 있다. B급 코미디는 덜어내고 좀더 ‘할리우드’스럽다. 본인의 장점인 점프컷을 여전히 활용하긴 하지만 코미디와 적극적으로 결합된 점프컷은 보기 힘들다. 대신, 에드가 라이트는 이번 작품에 리듬감을 내세운다. 사실 사운드 트랙을 상황극 안으로 들어오는 연출 자체는 에드가 라이트 전작을 보면 낯설지 않은 연출이다. <지구가 끝장 나는 날>(2013)의 맥주씬이라던가, <황당한 새벽의 저주>(2004) 속 Queen의 ‘Don't Stop Me Now’가 흘러나오는 좀비격투씬에서도 대표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보여준다. 사운드 트랙을 먼저 정해놓고 그에 맞는 시나리오를 썼다는 감독의 인터뷰를 봐도 확연히 드러나는 점이다. 이렇게 사운드트랙으로 꽉 채워 연출하려다 보니 ‘그 액션에 그 음악’이라 할 만한 장면을 생각해보면 마지막 털이의 ‘리드미컬’한 총격전을 제외하고는 딱히 기억나는 장면이 없다.
최근의 엔터테이닝 영화들을 보면 음악과의 조합을 내세운 액션 영화가 특히 많아졌다. 제임스 건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 매튜 본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 그리고 저스틴 린의 <스타트렉 비욘드>(2016) 등. 그 활용의 범위가 여러 장르 속에서 넓어지고 있다. 때문에, 2017년도에 개봉한 <베이비 드라이버>가 이러한 최근 작품들과 차별을 둔 독보적 성취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망설여진다.
이러한 점이 이번 작 <베이비 드라이버>가 에드가 라이트의 안정적 실험작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이번 작품은 상업적 요소를 충분히 만족하면서도 에드가 라이트의 새로운 도전을 보여줬다. 하지만 관객에게는 이미 익숙한 장르다. 에드가 라이트의 최고작이라고 뽑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영화 장르의 성공으로 봤을 때도 아쉽다. 때문에, 이번 <베이비 드라이버>의 더 정확한 평가는 다음 작품의 성과와 중요하게 연결되어 어떤 영향을 얼마나 끼쳤는지에 따라 재평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