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내집마련기14
돈을 관리한다는 것은 늘 조심스러운 과제였다. 가계부를 쓰고 정해진 예산 안에서 살아가는 일은 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작은 위안을 주었다.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원칙은 빚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빚 없이 사는 것이야말로 책임감 있는 어른의 모습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근무하며 매달 받게 된 첫 월급은 실수령액으로 180만 원에서 190만 원 정도였다.(시설 수급자로 4대보험을 떼지 않은 덕이다.) 누군가에게는 대단치 않은 액수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삶을 꾸려가는 데 집중했다. 분기별로 새로운 적금 통장을 개설해 만기를 나누는 ‘풍차돌리기’를 하며, 차곡차곡 쌓이는 숫자를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소비 생활은 늘 단속과 검열의 연속이었다.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사지 않았고, 대체할 수 있는 낡은 물건이 있다면 기어코 다시 썼다. 가족 여행을 가도 숙소는 늘 저렴한 국립공원 휴양림을 택했다. 화려한 호텔은 아니었지만, 숲의 공기를 마시며 주어진 형편 안에서 기쁨을 찾는 법을 익혔다. 사실 작은 것에도 충분히 행복을 느끼는 편이라, 소박한 숙소에서 나누는 대화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히 따뜻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막막함이 어렴풋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리 아끼고 절약해도 통장의 숫자가 불어나는 속도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했다. 정직하게 땀 흘려 모으는 것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직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접한 EBS 다큐프라임 <돈의 얼굴> 시리즈는 그동안 지켜온 경제적 가치관에 물음표를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금리가 개인의 삶과 세상의 흐름을 어떻게 결정짓는지 보여주는 대목은 낯설면서도 무거웠다.
다큐멘터리 속 세상은 금리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인플레이션으로 금리가 45%까지 치솟아 생존을 위협받는 튀르키예의 일상, 마이너스 금리 속에서 활력을 잃은 일본, 그리고 급격한 금리 인상을 겪는 미국의 사례는 경제적 흐름이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을 뒤흔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금리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현금만 꽉 쥐고 있는 행위가, 어쩌면 변화하는 세상으로부터 눈을 감고 도망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돈의 실체에 관한 설명이었다. 지폐 한 장이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종이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은행은 고객이 맡긴 돈을 금고에 보관하는 대신 대출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다시 흘려보내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구조였다. 그동안 풍차돌리기를 하며 정직하게 돈을 모으는 것만이 최선이라 믿었지만, 사실은 금융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밖에서 조용히 겉돌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빚에 대해 이토록 방어적인 태도를 지니게 된 배경에는 가족의 아픈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과거 어머니의 사업 실패로 생긴 부채와 학자금 대출은 오랜 시간 가족의 삶을 짓눌렀다. 어머니의 회생절차를 통해 신용을 회복하는 데에만 15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내 나이 30대까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시절 돈 이야기는 늘 조심스럽고 무거운 주제였다. 빚은 갚아도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조금만 방심해도 삶 전체를 끌어당기는 힘을 지닌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며 ‘빚은 절대 지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본능처럼 새겨졌다. 빚은 늘 실패와 불안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넘어서는 안 될 위험한 문턱처럼 보였다. 그 문턱을 넘는 순간 다시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마음 깊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통해 빚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빚은 무조건 피해야 할 위험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을 보조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겠구나. 물론 오랜 세월 굳어진 두려움이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고 애썼다.
변화는 집을 구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크게 다가왔다.
모아둔 돈만으로 선택할 수 있는 주거 환경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전세가는 이미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고, 월세는 매달의 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선택지였다. 아이와 함께 안정적으로 정착할 공간이 절실했다. 2년마다 이삿짐을 싸며 불안해하기보다, 한곳에 머물며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안정이 필요했다.
‘디딤돌 대출’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이면서 소득 기준을 충족할 경우 연 1.7%라는 초저금리로 대출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있었다. 이성적으로는 합리적인 기회라는 것을 알았지만, ‘대출’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은 여전히 컸다.
과거의 기억들이 자꾸만 발목을 잡았다. 평생 2억이 넘는 돈을 갚아내며 살 수 있을까?
두려움에 망설이고 있었다.
당시 살고 있던 공공임대주택이 분양전환에 들어간 상태. 분양을 받지 않고서는 가진 돈으로 이사할 수 있는 전셋집이 없었다. 등떠밀려 결국 대출을 실행했고 덕분에 내집 마련을 할 수 있었다.
도망치기보다는 책임을 지는 쪽을 택한 셈이다. 대출을 실행하고 정확히 사일 뒤 금리가 올랐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정말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출 서류에 서명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마음은 무거웠지만, 아이에게 줄 안정감을 생각하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막상 대출을 통해 집을 마련하고 나니 걱정했던 만큼 삶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은 정해진 예산 안에 있었고, 그 이자는 예전에 알아보았던 주변 지역의 월세보다도 적었다. 무엇보다 이 집이 ‘조만간 비워줘야 할 곳’이 아니라 ‘오래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이 삶의 태도를 바꿔놓았다.
문제는 빚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빚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에 있었다. 단순히 소비를 위해 미래의 수입을 미리 쓰는 빚과, 주거 안정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빚은 질적으로 달랐다. 대출을 통해 얻은 것은 단순히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었다. 이사를 고민하며 낭비했을 수많은 시간과 정서적 소모, 그리고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미리 산 것이었다. 다큐에서 말하던 ‘금융지능’도 결국 이런 판단력이 아닐까 싶었다. 이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조용히 따져보는 힘 말이다.
빚을 잘 활용해 주거의 안정을 얻고 나면, 그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 시작될 수 있음을 느낀다. 이사 걱정 없이 한 곳에 정착하며 아낀 에너지는 자기계발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사용된다. 잘 쓰인 빚은 단순히 갚아야 할 부채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시간’을 벌어주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유함에 가까워지는 길 중 하나는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일이다. 빚을 통해 확보한 시간 동안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자산은 시간의 흐름을 타고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얻는다. 1.7%라는 낮은 금리로 마련한 이 공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삶의 안정을 더해줄 것이고, 그 안에서 더 단단한 일상을 일궈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출 잔액을 볼 때마다 여전히 마음 한편이 가볍지만은 않다. 가족이 지나온 아픈 시간이 남긴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한다. 이 빚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옮겨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빚을 두려워하며 현금만 꽉 쥐고 있던 시절보다, 적절한 도구를 활용해 시간을 확보한 지금이 더 멀리 내다볼 수 있게 해준다. 결국 시간이 자산이 되고, 그 시간이 쌓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지금의 안정된 일상이 그 조용한 시작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 이 이야기는 미혼모의 집 마련과 생존을 기록한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