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쓸수록 줄지만, 삶의 근력은 쓸수록 늘어난다

미혼모 내집마련기 15

by 누드빼빼로

어김없이 해가 뜨고 하루가 시작된다.

내 집 마련이라는 멀고도 험한 여정 속에서 나의 하루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된다. 정시 출근 시간보다 40~50분 정도 일찍 일터에 도착해 텅 빈 사무실에 앉는 것, 그것이 내가 내일의 집을 꿈꾸며 실천하는 첫 번째 루틴이다. 고요한 그 시간에 나는 두 권의 장부를 펼친다. 하나는 어제의 마음을 복기하는 일기장이고, 다른 하나는 내 집의 기초공사 현황을 점검하는 가계부다.

일기를 쓰는 일은 이제 나에게 숨을 쉬는 것과 같은 습관이 되었다. 어제 있었던 일들, 아이들과 나누었던 대화, 문득 스치고 지나간 감정의 파편들을 하얀 종이 위에 정돈한다. 하루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일기를 쓰며 어제의 나를 떠나보내고 오늘의 나를 맞이하는 이 과정은 나만의 경건한 의식이다. 일기가 내 정신의 질서를 잡는 일이라면, 가계부는 내 삶의 테두리를 확인하고 집으로 가는 지도를 그리는 일이다.

가계부를 쓰는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절박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홀로 키우며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지금, 살림은 늘 빡빡하다. 계산에 단 1원의 오차라도 생기면 도미노처럼 일상이 흔들린다. 카드값이 밀리거나 예상치 못한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대책이 없어지는 공포를 이미 겪어보았기에, 나는 숫자를 마주하는 일을 결코 게을리할 수 없다.


나는 선천적으로 숫자에 약하다.

복잡한 수식을 보면 머리가 아프고, 방금 본 금액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다. 누군가는 스마트폰 앱이 알아서 정리해 주는데 왜 사서 고생이냐고 묻겠지만, 매달 초가 되면 예상 수입과 고정 지출을 일일이 종이에 적어본다. 바보 같아 보일지 몰라도 손으로 직접 적어 내려가야만 비로소 그달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의 범위가 내 머릿속에 입체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일일이 적다 보면 여유 자금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혹은 어느 부분에서 구멍이 날 가능성이 있는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예전에는 매일 지출을 기록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했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럴 시간조차 사치가 되었다. 이제는 매일 쓰기보다 큰 항목 위주로 흐름을 파악하는 데 집중한다. 출근해서야 겨우 일기를 쓸 수 있게 된 처지지만, 이 기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내 삶을 내가 직접 통제하고 있다는 최소한의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최근 나의 가장 큰 지출 항목은 아픈 막내의 병원비다. 아이가 아프다 보니 병원비는 줄일 수 없는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 예민하게 가계부를 들여다본다. 빚은 제때 갚아야 한다. 신용도는 마련한 집을 은행에 뺏기지 않으려면 잘 유지해야하는 부분이다. 정말 큰 일이 생겼을 때, 혹은 결정적인 순간에 대출 자격을 갖춰놓기 위해 나는 신용점수 1,000점 만점을 유지하려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은 단순히 숫자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불행으로부터 내 아이들을 지킬 최소한의 방어막을 치는 일이다.


나의 일상은 극도의 절약으로 채워져 있다.

친구들을 만나 차 한 잔 마시거나 밥 한 끼 먹는 소소한 일 외에는 돈을 쓸 일이 거의 없다. 옷은 주로 얻어 입는다. 친구들이 옷장을 정리하다가 건네주는 옷들도 있고, 러브 더 월드와 같은 미혼모 지원단체에서 정성스레 보내주는 옷들도 있다. 누군가는 남이 입던 옷을 입는 것이 자존심 상하지 않느냐고 묻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깔끔하게 자신을 가꾸느냐에 있다. 얻어온 옷들을 내 체형에 맞게 잘 코디해 입으면 충분히 단정해 보인다. 화려함보다 정갈함을 추구하는 것이 내 삶의 방식이다. 생필품을 최대한 아껴 쓰고 불필요한 욕망을 덜어내면, 아이의 병원비와 식비, 공과금과 보험료를 내고도 아주 조금 남는다.


예전의 나는 쇼핑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예쁜 물건을 보면 소유하고 싶었고, 그것이 행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물건을 사는 대신 적금 통장을 만든다. 매달 조금씩 숫자가 불어나는 잔고를 확인할 때의 만족감은 쇼핑이 주는 찰나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 숫자는 단순히 돈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이 와도 나는 우리 아이들과 살 집을 지켜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증명서이기 때문이다.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피를 팔아 가족을 부양하던 허삼관은 보고 돈과 힘의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 돈은 쓸수록 줄어들지만 힘은 쓸수록 늘어난다. 집에서 누워 있거나 앉아서만 시간을 보내면 힘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하지만 매일 일하고, 땀을 흘리면 힘은 다시 돌아온다. -

매일 땀을 흘리면 더 단단해 진다. 매일 새벽 일기를 쓰고 가계부를 정리하는 일, 그리고 아끼고 아껴서 통장을 채우는 일은 단순히 돈을 모으는 행한 행동은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의 근력, 즉 '힘'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힘이 있어야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고, 내가 단단해야 아이들이 비바람을 피할 내 집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아끼느라 포기한 것들도 많다.

남들 다 가는 여행이나 유행하는 가전제품, 근사한 외식 같은 것들. 하지만 포기한 것들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안다. 기록을 통해 나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배웠고, 절약을 통해 진정한 풍요가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오늘도 수입을 늘리기 위해 또 다른 힘을 쓰고 있다. 이 힘은 내가 멈추지 않는 한 계속해서 자라날 것이다. 가계부의 숫자는 여전히 나를 긴장하게 만들지만, 매일 아침 일기장에 적어 내려가는 나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하다. 돈은 쓸수록 줄어들지 몰라도, 나의 힘은 쓸수록 늘어나 결국 우리 가족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 그리고 우리가 뿌리 내릴 진짜 '집'이 될 것이라 믿는다.


* 이 이야기는 미혼모의 집 마련과 생존을 기록한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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