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 1: 내 생애 가장 잔인했던 생일 선물

미혼모 내집마련기16

by 누드빼빼로

2018년 12월 30일.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이유 없는 눈물이 먼저 고인다. 이미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어느 정도 살만해졌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달력의 숫자만 봐도 마음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날이 나의 생일이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원래 생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기쁨과 축복을 기대하게 만드는 날인데, 그날의 나는 기쁨 대신 깊은 절망을 마주했다.


'10년 뒤 분양전환이 가능한 공공임대 주택'

두 번의 청약 시도 끝에 예비순위에 당첨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던 날, 나는 그 짧은 메시지를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는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마냥 기뻤다.

'더 이상 이삿짐을 싸지 않아도 되겠구나!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헤어져 전학을 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서류 제출 기간인 12월이 될 때까지 매일 그 문자를 확인하며 행복을 만끽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거실에 가구를 배치하고 아이 방을 꾸미며 설레어 했다. 그것은 나에게 선물이었다. 그동안 홀로 아이를 키우며 고생한 나에게, 잘 버텨왔다고 세상이 건네는 위로 같았다. 그 집으로 이사만 가면 모든 엉킨 실타래가 술술 풀릴 것만 같았다.


당시 우리는 국민임대 주택에 살고 있었다. 2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했고, 소득 기준이나 여러 요건에 따라 언제든 주거가 불투명해질 수 있는 불안한 자리였다. 무엇보다 마음이 쓰인 건 아이였다. 어린 시절 전학을 많이 다녔던 터라, 내 아이만큼은 절대 전학시키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었다. 아이의 생활 반경, 익숙한 학교, 정든 친구들. 그 모든 소중한 것들을 돈 때문에 흔들고 싶지 않았다. 공공임대는 그런 나에게 거의 유일한 구원이자 선택지였다. 비록 예비순위지만 기다렸다가 입주만 하면 더이상 이사할 필요도 없고 우리 아이가 전학갈 필요가 없다.


그 기쁨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사라졌다.

청약 관련 서류를 최종 제출하러 LH 사무실을 찾은 날은 바로 12월 30일, 나의 33번째 생일이었다. 내가 그 날짜를 일부러 고른 것은 아니었다. 정해진 기간 내에 가야 했고, 마침 생일에 서류를 제출하면 완벽한 생일 선물을 받는 기분이 들 것 같아 서둘러 길을 나섰다. 혹여 서류 하나라도 빠졌을까 몇 번이고 가방 속을 확인하며 LH 광교 사무실로 향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침내 내 차례를 알리는 '딩동' 소리가 들렸고, 설레는 마음으로 창구 앞에 앉았다.

그날이 내 인생의 방향을 비틀어버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내 서류를 훑어보던 직원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는 모니터를 한 번 더 확인하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차갑게 말을 꺼냈다. “금회 예비입주자 모집은 아래의 순위 내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분만 신청 가능하며, 해당하지 않는 분이 신청할 경우 부적격 처리됩니다.”

그가 가리킨 공고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순위 제한 조건: 입주자저축(청약저축,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하여 2년이 경과된 분으로서 매월 약정납입일에 월납입금을 24회 이상 납입하고, <무주택세대구성원 기간이 3년 이상인 분>


이미 여러 번 읽었던 문장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그가 아주 정중하게 돌려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약간의 정적이 필요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은 더 길었고, 법의 테두리만큼이나 단단했다.


금회 공급되는 주택의 신청자격인 '무주택' 여부는 아래기준으로 판단하며, 주택소유여부 전산검색 및 주민등록표등본 확인 결과 부적격자로 판명된 분이 판명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이의가 있을 경우에는 소명기간(우리 공사가 소명요청을 안내한 날부터 7일) 내에 아래 기준에 근거하여 소명자료를 제출하여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동 기한 내에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아니하거나 소명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 예비입주자 지위 상실 및 계약체결이 불가합니다.


모든 서류를 제출한 뒤 돌아온 안내는 절망적이었다. "무주택세대구성원 기간이 3년 이상인 분"이라는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고일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니, 나는 약 6개월 하고도 단 하루가 부족했다.

단 6개월 1일.

그 숫자가 머릿속이 먹먹했졌다. 무슨 기분인지 느낄 틈도 없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렇다면 나는 탈락인가? 그러면 아이와 나는 또다시 집을 잃고 떠돌아야 하는가? 그동안 쥐어짜듯 모은 돈으로는 아이 학교 근처의 전세는커녕 월세 보증금조차 빠듯했다. 공공임대가 아니면 대안이 없었다. 이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아이의 전학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는 뜻이었다.


왜 떨어져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 분노보다 눈물이 먼저 터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공공기관 창구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아 꾹 참으며 고개를 숙였지만, 눈물은 주책없이 무릎 위로 떨어졌고 바닥에 주저앉아 다급한 목소리로 LH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이건 국토부 소관이라 저희 권한이 아닙니다." 다시 국토부에 전화를 걸었다. "저희는 지침만 내릴 뿐, LH에서 진행하는 개별 사안은 알 수 없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이것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구나.

12월 30일 그날, 나는 LH사무실 한쪽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사람들이 무심하게 오가고 업무 종료 시간이 다가와도 나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겨우 예비입주였을 뿐인데, 그 작은 희망의 자리조차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다.

오후 6시, 직원들이 하나둘 퇴근 준비를 하며 마지막으로 나에게 말했다. "저희도 더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직접 방법을 알아보셔야 해요." 그 말은 사실상 이제 그만 나가달라는 뜻이었다.

그날, 내 인생에서 가장 잔인한 생일 선물을 받고 사무실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이 단 하나라도 있는지 찾아야 했다. 내가 분노했던 지점은 명확했다. 하나는 책임 회피에 급급한 행정 시스템이었고, 다른 하나는 ‘무주택 기간 산정 기준’ 그 자체의 모순이었다.


무주택기간은 신청자 및 세대구성원 전원이 입주자모집공고일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 계속해서 주택을 소유하지 아니한 기간을 기준으로 산정하나, 신청자의 무주택기간은 만30세가 되는 날(만30세 이전에 혼인한 경우에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혼인관계증명서에 혼인신고일로 등재된 날)부터 계속하여 무주택인 기간으로 산정한다.


현행법은 혼인을 하면 그날부터 무주택 기간이 산정된다고 말한다. 새로운 가정을 꾸린 사람에게 주거 지원이 시급하다는 논리다. 나는 나의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결혼식을 올렸고 혼인신고도 하려 했다. 하지만 결혼식을 올린 지 불과 사흘 만에 남편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미 국가로부터 유족으로 인정받아 유족연금을 받고 있다. 법적인 서류 한 장이 부족했을 뿐, 삶의 현장에서 나의 지위는 분명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던 여자'였다.

그렇다면 묻고 싶었다. 결혼이라는 형식적 절차만 남고 가정의 실체는 비극적으로 해체된 경우에도, 기계적인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더 나아가 자녀가 태어나는 순간,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새로운 가정은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닌가. 부모로부터 독립해 아이와 함께 하나의 세대를 이루어 생계를 꾸려왔다면, 나는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이미 새로운 가정의 세대주였다. 그렇다면 무주택 기간 역시 그 시점부터 산정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혼인신고를 미룰 의도가 전혀 없었다. 결혼식을 올린 날이 토요일이었고 주말이 지나면 추석 명절로 이어지난 연휴였다. 결혼식을 올리고 약 5일간 행정기관이 문을 열지 않았다. 그 며칠의 공백 사이 남편은 떠났고, 죽은 사람과는 혼인신고를 할 수 없다는 벽에 부딪혔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서류 한 장이 없다는 이유로 나는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고, 아이와 함께 꿋꿋이 살아온 세월은 무주택 기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가족은 분명 존재하는데, 제도 안에서는 그 가족이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취급받는 모순. 혼인신고서에 도장이 찍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시작된 가정의 삶은 가짜가 되는 걸까? 아이와 함께 치열하게 꾸려온 생활은 왜 주거 정책의 출발선에서 제외되어야만 하는가.

억울함은 가라앉지 않았지만, 그날 밤 나는 결심했다. 이 부당한 상황을 혼자 삼키며 체념하지 않겠다고.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이 차가운 벽에 금이라도 내보겠노라고.

그날 밤, 나는 케이크에 촛불을 켜지 않았다. 소원도 빌지 않았다. 대신 오래도록 잠들지 못한 채 하얀 종이 위에 나의 목소리를 적어 내려갔다.

이 이야기를 절망으로 끝낼 수 없었다. 그것은 새로운 싸움의 시작이었고 나의 독기는 하늘만큼 치솟았다.


* 이 이야기는 미혼모의 집 마련과 생존을 기록한 연재입니다. 더불어 다음 회차에 신문고 시리즈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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