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미생물과 순환계가 만들어내는 몸속의 생명도시
이전 글에서 우리는 면역계의 ‘대화’와 내분비계의 ‘춤’을 통해
몸의 균형이 얼마나 정교하게 조율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작은 ‘토닥임’을 따라 보이지 않는 세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려 합니다.
밤하늘에서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면, 수많은 불빛과 그 사이를 잇는 도로망이 보입니다.
그 불빛을 보며 생각합니다.
우리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빛을 내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요.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내는 시민들과, 도시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거대한 네트워크.
우리 몸도 이와 꼭 닮았습니다.
오늘은 이 경이로운 도시의 두 핵심 요소,
100조의 시민(장내 미생물)과 생명의 강(순환계)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우리 장 속에는 인구 100조에 달하는 거대한 미생물 도시가 존재합니다. 이 보이지 않는 시민들은 단순히 음식을 소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 전체의 건강과 안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숨은 일꾼들입니다.
이 시민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뉩니다:
유익균: 비타민을 만들고, 우리가 소화하지 못하는 영양소를 분해하며, 해로운 세균의 침입을 막는 ‘경찰’이나 ‘소방관’ 같은 존재입니다. 이들은 도시의 질서를 지키고 건강한 환경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유해균: 과도하게 늘어나면 독소를 만들고 염증을 유발하며,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는 문제 유발자입니다. 유해균이 과도하게 증식하면 몸에 여러 가지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중간균(기회감염균): 평소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환경이 악화되면 유해하게 돌변하는 ‘분위기 파악형 시민’입니다. 유익균이 우세할 때는 도시 발전에 기여하지만, 유해균이 득세하면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들의 균형은 우리의 면역계, 소화기능, 심지어 기분과 정신건강까지 좌우합니다. 뇌와 장 사이의 긴밀한 통신망인 장-뇌 축을 통해 이들은 우리 몸 전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국 장내 미생물이 건강하고 다양할수록, 우리 몸이라는 도시는 더욱 활기차고 조화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시민들이 건강해도, 그들에게 자원을 공급하고 쓰레기를 치워줄 시스템이 없다면 도시는 마비됩니다.
순환계는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도시의 ‘생명의 강’입니다.
이 생명 네트워크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됩니다:
혈관계 (주요 도로망): 심장에서 출발한 신선한 자원(산소, 영양분)은 동맥을 따라 각 조직에 전달되고, 노폐물은 정맥을 통해 되돌아옵니다. 마치 물류 트럭처럼 도시를 돌며 생명을 유지합니다.
림프계 (하수도 및 방어 시스템): 림프관은 혈관 사이를 흐르며 조직 사이에 남은 찌꺼기와 독소를 수거합니다. 림프절은 외부 침입자를 감시하고 처리하는 ‘검문소’ 역할을 합니다. 즉, 하수도와 방어 시스템이 결합된 매우 중요한 도시 기능입니다.
이 순환이 원활해야만, 100조의 시민들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도시도 막힘 없이 기능할 수 있습니다. 교통체증이 생기면 피로, 부종, 질병이라는 경고등이 켜지게 됩니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때때로 위기에 직면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전자약입니다.
전자약은 미주신경과 같은 핵심 통신망을 통해 시민과 도로망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시민(미생물) 환경 개선: 미주신경을 안정시켜 장과 뇌의 연결을 조율하고, 유익균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며 염증을 억제하고 장벽을 강화합니다.
도로망(순환계) 최적화: 심장의 리듬을 안정시키고, 혈관의 긴장을 완화하여 고혈압이라는 교통체증을 해소하고 생명 흐름을 원활하게 유지시킵니다.
전자약은 100조의 시민과 도로망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
보이지 않는 도시 설계자인 셈입니다.
물론, 전자약이 모든 질병의 해결책은 아닙니다.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며,
과도한 기대는 금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시민, 막힘없는 도로망, 그리고 세심한 설계자가 함께할 때,
우리 몸이라는 도시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도시의 ‘건축 구조’를 이루는 뼈와 근육,
그리고 모든 생명 활동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발전소, 미토콘드리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들은 도시의 형태를 지탱하고 움직임을 가능하게 만드는 골격 시스템이자,
불을 밝히는 에너지 센터입니다.
이제 우리는 생명의 구조적 기반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