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하는 젊음. 늙지 않는 나라

생각날다

by 종호날다

"남자는 쉰에 재혼해야 해. 스무 살의 젊은 여자와. 그리고 그 남자가 여든에 세상을 뜨면, 쉰이 된 그 여자는 다시 스무 살의 젊은 남자와 재혼을 하는 거야. 그러면 말이지, 우리나라는 정말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어!" 1989년 중학교 음악 시간, 낡은 오르간 앞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던진 말이었다.

앳된 얼굴의 우리는 영문을 몰라 서로를 마주 볼뿐이었다. 그저 피아노 건반 위를 오가던 선생님의 손가락만큼이나 엉뚱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쉰을 바라보는 지금, 불현듯 그 말이 떠올랐다.

단순히 그 문장만 떼어 놓고 보면, 어딘가 모르게 일리 있는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 아닌가. 인구 감소 시대에, 끊임없이 젊음을 유지하고 번식력을 최대화하는 시스템. 늙은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고, 젊은 세대는 또 다른 젊음과 결합하여 생명을 이어가는 순환. 언뜻 들으면 효율적이고, 역동적인 국가를 만들 것 같은 환상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마치 늙은 나무를 베어내고 새로운 씨앗을 심어 끊임없이 푸른 숲을 유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그리 단순한 공식으로만 이루어져 있을까?

사랑, 그리움, 책임감,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 쌓아온 추억이라는 무형의 가치들은 이 방정식 속에서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한 인간의 생애가 마치 부품처럼 교체되고 순환되는 기계적인 과정으로 치부된다면, 그 속에서 피어나는 진짜 '삶'은 무엇일까.

상상해 본다. 쉰 살의 남자가 스무 살의 신부를 맞이하는 풍경. 사회는 환호하고, 나라는 젊음의 활기로 넘쳐날 것이다. 노년의 남편은 젊은 아내에게 자신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쏟아붓고, 젊은 아내는 그 지혜를 흡수하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그리고 여든, 남자가 세상을 떠나면 쉰이 된 여인은 다시 스무 살의 새로운 배우자를 맞는다. 그녀는 또다시 과거의 경험과 지혜를 새로운 배우자에게 전수하며, 젊음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사회에 공급한다. 나라의 생산성은 치솟고, 인구 그래프는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릴 것이다. 젊은이들은 끊임없이 유입되고, 노년층의 경제적 부담은 줄어든다. 마치 거대한 생태계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순환되는 듯 보인다. 겉으로는 번영하고 강해지는 국가.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50년간 함께 해온 배우자와의 추억은 한낱 과거의 잔재가 되는가?

반세기 넘게 이어온 인연이 단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단절되어야 하는가?

사랑은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국가 발전을 위한 효율적인 도구가 되는가?

음악 선생님의 그 '일리 있는' 말속에서 나는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수학 공식처럼 정답이 정해진 사회는 어쩌면 가장 인간적이지 못한 사회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계산되지 않고, 삶은 통계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효율성과 번영만을 좇는 동안,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껏 우리는 사랑과 이별,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것이 때론 고통스럽고 비효율적일지라도, 그 안에서 우리는 인간다움을 배우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왔다.

어쩌면 음악 선생님이 던진 그 말은,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숫자와 효율성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사랑이라는 가치가 중심이 되는 나라. 그런 나라야말로 진정으로 '잘 사는 나라'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