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에 온 프랜시스 베이컨

미술시장 돌아보기 ⑦ 2022 번외편 #분더샵

by 원윤지

※ 2022년 9월, 누적 회원 13만 명 '아트테크 플랫폼' T사 앱 매거진과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게재본과 다릅니다. 지금 시점에서도 읽기 쉽도록 재가공했습니다.



크리스티에서 개최한 베이컨과 게니 2인전 'FLESH AND SOUL: BACON/GHENIE'. 총 16점을 2022년 9월 서울에서 공개했다. ⓒChristie

프리즈는 '프리즈 위크'라는 이름 하에 페어장 넘어 도시 전체를 축제의 장으로 뒤바꾼다. 2022년 프리즈 서울 역시 삼청동, 한남동 등 갤러리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시와 관련 행사를 이끌어냈다. 그 중 청담동 편집샵에 추정가만 5,800억 원에 해당하는 개인 컬렉션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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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분더샵 전시 전경

글로벌 2대 경매사로 불리는 '크리스티'가 분더샵과 손을 잡았던 것. 크리스티는 이번이 한국 미술시장에는 처음 진출하는 격이라 선보이는 작가의 라인업도 화려했다. 인간의 괴기함을 고깃덩어리처럼 묘사하는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과 강렬한 붓터치로 눈, 코, 입을 뒤섞는 아드리안 게니(Adrian Ghenie, 1977-)가 그 주인공이었다. 수영장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초기작까지(이 작품은 전시 이후 10월 경매에서 약 338억 원에 거래되었다). 그 현장을 전한다.


어둠을 매혹적으로 표현하는 두 아티스트

왼쪽부터 ① 아드리안 게니 '눈꺼풀 없는 눈(Lidless Eye)'(2016)

② 프랜시스 베이컨 '교황을 위한 습작Ⅰ(Study for a PopeⅠ)'(1961).

① 아드리안 게니 '원숭이로서의 자화상(Self Portrait as a Monkey)'(2011)

② 프랜시스 베이컨 '존 에드워즈 초상화를 위한 세 개의 습작(Three Studies for a Portrait of John Edwards)'(1984).

좋은 작품은 시간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 것 같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지금까지도 강렬한 이미지로 남은 것을 보면. 아드리안 게니와 함께 걸린 작품들은 서로 대화하는 것 같았다. 각기 다른 색을 뿜는 작품을 비교할 기회이기도 했다.

두 아티스트는 괴로움, 불안정함, 음울함 등 감정의 어두운 단면을 역동적으로 표현한다. 작품에서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반 고흐 등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한데요. 차이점도 분명하다. 베이컨은 독특한 구도로 감상자의 심리를 자극하고, 게니는 거칠거칠한 질감으로 보는 재미를 준다. (당시 게니 작품을 봤을 때는 화려함이 섬세하게 다를 느낌을 삼킨 것 같았다.)


20세기 유럽 회화에서 가장 격렬한 이미지

프랜시스 베이컨

프랜시스 베이컨은 20세기 유럽 회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데미안 허스트, 채프먼 형제 등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술시장에서도 2013년에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1969)이 1500억 원 이상에 거래된 바 있다. 뭉크의 '절규'보다도 높은 거래가인데,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술품 10위 안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왼쪽부터 ① 프랜시스 베이컨, '교황을 위한 습작Ⅰ(Study for a PopeⅠ)'(1961)

② 프랜시스 베이컨, '초상화를 위한 습작 Ⅱ(Study for PortraitⅡ)'(1953)

③ 프랜시스 베이컨, '앉아있는 인물(Seated Figure)'(1960).


내 작품은 폭력적이지 않다. 폭력적인 것은 삶이다.

베이컨의 말에서 그 작품 세계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 "그림이 왜 이렇게 기괴해?" 하는 평가를 반박하는 말이다. 작품 자체가 폭력이 아니라 이미 폭력에 물든 인간 삶을 단지 작품에 담아낸다는 것이다.


베이컨은 왜곡하고 파괴하는 방식을 사용해 신체를 다진 고깃 덩어리처럼 표현한다. 여기에 분열, 불안 등 인간의 극단적인 면을 담아낸다. 자극적이고 불편한데도 자꾸 눈길이 가는 공포 영화처럼 베이컨의 어둠은 이상한 카타르시스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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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은 바로크 시대 화가 벨라스케스의 교황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아 강박적으로 집착했다. 교황에 덧입힌 근엄함과 위엄을 지우고, 공포와 고통 속에서 그저 연약하기만 한 인간으로 바꾸어 풍자했다.

①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1650). ⓒArthive

② 프랜시스 베이컨의 '교황을 위한 습작Ⅰ'(1961).

베이컨이 표현하는 교황은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의자에 묶인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왜소하다. / 프랜시스 베이컨, '초상화를 위한 습작 Ⅱ'(1953).
형태를 무너뜨리고 얼굴을 짓눌러 긴장과 불안을 조성한다. / 프랜시스 베이컨, '앉아있는 인물(Seated Figure)'(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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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베이컨, '존 에드워즈 초상화를 위한 세 개의 습작(Three Studies for a Portrait of John Edwards'(1984).

생의 마지막 20년을 함께했던 동반자 '존 에드워즈'를 삼면화로 표현한 작품. 에드워즈는 베이컨 작품 중 30점 이상에 등장한 모델이자, 베이컨의 삶을 사진으로 남긴 기록자였다. 해당 작품에서는 인물을 토대로 다양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악몽 같은 다른 작품과는 달리 안정과 편안함도 공존한다는 평이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 '헨리에타 모라에스의 초상(Portrait of Henrietta Moraes)'(1963).

베이컨은 남성 초상화에만 전념하다 1960년대에 들어서 여성 초상화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헨리에타 모라에스는 예술 모델이자 베이컨의 친구였다. 해당 작품은 베이컨이 평상시 실물보다 사진을 보고 그리는 작업 방식 그대로 모라에스 사진을 기반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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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35.5cm인 베이컨 자화상은 단 세 점만 존재한다. 그중 두 점이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었다. 고개를 세차게 돌리던 도중 포착된 사진처럼 얼굴을 그렸다. 소용돌이치는 듯 격렬한 자아를 거친 붓질로 표현했다.


① 프랜시스 베이컨, '자화상을 위한 두 개의 습작(Two Studies for a Self-Portrait)'(1970) / 프랜시스 베이컨, '존 에드워즈 초상화의 습작(Study for Portrait of John Edwards)'(1989)

② 프랜시스 베이컨, '자화상을 위한 두 개의 습작(Two Studies for a Self-Portrait)'(1970) 일부



이목구비를 해체하는 편집의 제왕

아드리안 게니

아드리안 게니(Adrian Ghenie, 1977~)는 이목구비를 해체하는 구상화를 그리며 1974년생 이후 출생한 작가 중 가장 비싼 가격을 자랑한다. '초현대미술의 제왕'이라 불리며 2016년에 벌써 100억 원 이상의 작품가를 기록한 바 있다. 화폭의 출발점은 독재 체제였던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격변하는 환경이었는데, 집단 트라우마와 개인적인 경험을 뒤섞어 거친 붓질로 그 혼란스러과 고통스러움을 반영한다.

관객에게 이미 친숙한 반 고흐의 자화상을 재해석했다. 물감을 덧바르고 이목구비를 해체하는 방식이다. 아드리안 게니, '눈꺼풀이 없는 눈(Lidless Eye)'(2015).

게니는 베이컨, 반 고흐, 피카소 등 서양 미술사를 뒤흔든 이들을 재해석한다. 물감을 붓거나 뿌리고, 나이프로 긁는 등 캔버스 위 색다른 질감을 구현하면서 말이다. 전통과 트렌드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고리가 되려는 게니의 작품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과거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식을 제시한다.

게니는 베이컨, 반 고흐, 피카소 등 미술사를 뒤흔든 거장들을 재해석합니다. 그러나 기법만큼은 기존 회화의 방식을 거부합니다. 물감을 붓거나 뿌리고, 나이프로 긁어내는 방식으로 캔버스 위에 색다른 질감을 구현합니다. 그의 작품은 전통과 트렌드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고리가 될 수 있는 건데요. 지금을 사는 우리가 과거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식을 예술로 제시하는 겁니다.


나는 초상화의 해체를 추구한다.


아드리안 게니, '원숭이로서의 자화상(Self Portrait as a Monkey)'(2011)

선, 구도 등의 균형보다 직접적인 감정 표현을 더 중시하는 '표현주의'를 기반에 둔 게니. 여기에서 알프레드 히치콕, 데이비드 린치 등에서 영향을 받은 영화적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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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형태를 그리는 것이자 회화의 전통을 상징하는 '구상화'에 나이키처럼 현대적인 브랜드를 등장시켜 낯선 느낌을 준다. 휘몰아치는 듯한 붓 터치는 연극이 생각나는 서사를 나타낸다.

① 아드리안 게니, '담배 피우는 자화상(Self-Portrait Smoking)'(2015) 일부

② 아드리안 게니, '컬렉터 3(The Collector 3)'(2008)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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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 게니, '요제프 박사Ⅰ(Doctor JosefⅠ)'(2011) 일부

게니는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부스 전체를 찰스 다윈을 주제로 꾸리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작품으로 역사 속 인물을 마주한다. 해당 작품은 각종 인체 실험으로 악명 높았던 나치 내과의사인 '요제프 멩겔레'를 주제로 한 것. 물감을 올리고 긁어내는 방식으로 얼굴을 지워낸다.



번외. 평화로운 해안가, 데이비드 호크니

해당 작품은 서울을 시작으로 홍콩, 뉴욕 등을 순회 후 2022년 10월에 열린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 출품되었다. 데이비드 호크니, '이른 아침, 생트 막심'(1969).

이어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의 추정가만 약 150억 원 이상인 작품이 공개되기도 했다(이 작품은 추후 두 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이러한 대작은 바로 경매에 출품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컬렉터에게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해외 순회 전시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후 홍콩, 뉴욕 등을 거쳐 2022년 10월 런던 경매에 출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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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이른 아침, 생트 막심(Early Morning, Sainte-Maxime)'(1969) 일부.

1968년, 연인 피터 슐레진저와 함께했던 프랑스 여행에서 찍은 사진으로 그린 네 점 중 한 점. 캘리포니아 수영장 시리즈를 그렸던 시기에 걸쳐져 있다. 슐레진저와의 관계가 무르익었을 시점이라 그 편안함이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평. 호크니가 깊게 탐구했던 빛의 특성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일렁이는 물은 멈춰있지 않고, 여기에 빛을 더하면 물과 빛은 뒤섞이며 생생하게 움직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잘게 반짝거리는 표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과 전시 전경

그로테스크함으로 만난 20세기 거장 '프랜시스 베이컨'과 21세기 떠오르는 현대미술가 '아드리안 게니'. 그리고 빛과 물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한 데 모으기 쉽지 않은 작가들을 서울에서 볼 수 있어 의미가 남달랐다. 아트페어 프리즈부터, 도심을 예술로 물들였던 프리즈 위크까지. 글로벌 미술시장이 어떤 작가와 어떤 도시를 주목하는지 피부로 느낄 수 시간이었다.


*'미술시장 돌아보기' 시리즈 마침.



글·사진 원윤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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