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Orfeo ed Euridice

Christoph von Gluck(1714-1787)

by 세실리아
“Sai pur che talora confusi, tremanti,
con chi gl’innamora son ciechi gli amanti”

Amore, Orfeo ed Euridice(Gluck)

"사랑하는 이 앞에 서면 연인들은 흔들리고 눈이 멀고 말을 잃지요"


가장 풋풋했던 시절의 나 역시 그랬다.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과 몇 번의 데이트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반하는 순간들이 쌓이더니 눈에 콩깍지가 씌인 듯 마음을 온통 빼앗기고 말았다. 이런저런 오해와 다툼으로 헤어졌을 당시엔 거리를 지나는 비슷한 옷차림의 남자들은 모두 다 그 사람으로 보였다. 사랑은 그렇게 시야를 좁히고 세상을 한 사람을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글룩의 Christoph Willibald Gluck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그 눈먼 사랑의 열병이 얼마나 지독한 고통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르페오에게 내려진 금기는 어쩌면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사랑은 원래 불완전한 것이기에 언제나 인내가 필요하다. 의심이 사랑을 잠식할 때 불안은 상대를 옥죄고 결국엔 오르페오의 눈앞에서 사라진 에우리디체처럼 또다시 사랑을 잃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말한다. 사랑만이 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고.. 멀어진 거리를 좁히고, 잃어버린 얼굴을 다시 마주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사랑 그 자체라고.

Gustave_Moreau_-_Orpheus_at_the_Tomb_of_Eurydice,_1891.jpg Gustave Moreau - Orpheus at the Tomb of Eurydice(1891),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Orfeo ed Euridice

구성 3막

대본 라니에리 데 칼차비지 Ranieri de’ Calzabigi

초연 빈 호프부르크 극장 Hofburgtheater, Vienna(1762)

등장인물

오르페오 Orfeo(콘트랄토 또는 테너)

에우리디체 Euridice(소프라노)

아모레 Amore, 사랑의 신(소프라노)

배경 그리스의 전설적 시기


1막 1장

무대는 월계수와 사이프러스가 드문드문 서 있는 고요한 숲 속으로, 중앙에는 에우리디체의 무덤이 자리한다. 장막이 오르면 목동들과 님프들이 등장하여 향을 피우고 꽃을 뿌리며 장송의식을 거행한다. 그들은 에우리디체의 영혼이 이 무덤 근처를 떠돌고 있다면 그들의 눈물과 한숨을 들어 달라고 노래한다. 합창의 중간중간에는 오르페오가 무대 전면의 바위 위에서 "에우리디체”라 부르며 애절한 통곡을 반복한다. 합창이 끝나자 오르페오는 동료들에게 장례의식이 오히려 자신의 고통을 더 깊게 만든다고 말하며, 무덤에 마지막 헌화를 한 후 떠나 달라고 요청한다. 사람들은 물러나고, 오르페오 홀로 남는다.

첫 번째 아리아 Chiamo il mio ben cosi에서 그는 밤낮으로 아내의 이름을 부르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음을 탄식한다. 그의 슬픔은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가 낳는 절대적 침묵의 체험으로 형상화된다. 이어지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Cerco il mio ben cosi에서는 무덤 주변을 헤매며 아내의 이름을 외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오직 메아리뿐이다. 메아리는 현실에서 단절된 소통의 상징으로 제시된다. 오르페오는 에우리디체의 이름을 숲과 계곡, 나무마다 새겨 넣었다고 말하며 그녀가 죽었는데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다고 절규한다. 그는 신들에게 아내를 돌려달라고 호소하며 그렇지 않다면 자신도 생을 마감하겠다고 선언한다. 세 번째 아리아 Piango il mio ben cosi에서 그는 하루의 모든 순간마다 눈물을 흘리며 자연조차 자신의 비탄에 공명한다고 노래한다. 그의 슬픔은 점차 절망을 넘어 결단으로 변화한다. 장면의 마지막에서 오르페오는 신들에게 직접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비탄이, 지하세계로 내려가 그녀를 되찾겠다는 초월적 결심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1막 1장은 오르페오의 감정이 애도의 정지 상태에서 행위로의 의지로 전이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전환은 이후 전개될 '지하세계로의 하강'이라는 서사의 필연적 동기를 제공한다.


1막 2장

장면은 여전히 숲 속, 에우리디체의 무덤 근처에서 진행된다. 절망에 잠긴 오르페오 앞에 사랑의 신 아모레가 나타난다. 아모레는 오르페오의 깊은 사랑과 진정성을 느끼고 지하세계로 내려가 에우리디체를 되살릴 수 있도록 허락한다. 그러나 그 허락에는 조건이 따른다. 오르페오는 지하세계에서 에우리디체를 바라보아서는 안 되며 지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이는 사랑과 신뢰, 인내를 시험하는 규범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동시에 인간적 욕망과 신적 질서가 교차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아모레는 오르페오에게 리라의 달콤한 선율이 하늘에 닿는다면 신들의 분노가 누그러지고, 에우리디체의 그림자가 그의 첫 숨결과 함께 돌아올 것이라고 덧붙인다. 오르페오는 처음에는 놀라움과 혼란을 느끼지만 곧 결심한다. 그는 에우리디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속에서 모든 고난과 시험을 감내할 의지를 다진다. 남은 순간의 고통을 의식하며 지하세계로 내려가 에우리디체를 찾아 모든 위험과 시련을 극복하겠다고 결심한다. 장면의 마지막에서 오르페오는 신들의 도움을 구하며 법과 규율을 받아들인다. 그의 감정은 절망에서 결단으로 수동적 고통에서 능동적 행위로 전환된다. 번개와 천둥이 울리는 가운데 오르페오는 지하세계로 떠난다.


2막 1장

무대는 코키토스 강 건너편, 불길과 어둠으로 뒤덮인 저승의 동굴이다. 짙은 연기와 불빛이 얽혀 공기를 짓누르고, 끔찍한 교향이 울리자 분노한 퓨리들과 망령들이 광란의 춤을 춘다. 그러나 오르페오의 리라가 울려 퍼지는 순간, 그 소리는 천천히 가라앉고 괴물 같은 존재들이 동작을 멈춘다. 그들은 경계하며 웅성거린다. 이 어둠 속을 감히 누가 지나가는가. 헤라클레스나 피리투오스 같은 영웅 외에 이곳을 밟을 자가 어디 있는가. 혹은 신이라면 모를까, 인간이라면 케르베로스의 울부짖음과 에우메니데의 분노가 그를 삼켜버릴 것이다. 오르페오는 불길한 무리들 앞에 서서 간절히 호소한다. “분노를 거두어다오, 퓨리들이여! 원한으로 가득한 그림자들이여” 하지만 그들은 냉혹하게 거부한다. 오르페오는 절망 속에서 다시 말을 잇는다. “내 잔혹한 고통이 너희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그의 목소리에 깃든 절절한 애틋함이 공기를 흔든다. 망령들은 잠시 숨을 고르며 그를 바라본다. 이 불쌍한 젊은이는 무엇을 원하는가. 이 끔찍한 문턱에는 오직 슬픔과 신음만이 깃들어 있을 뿐이다. 오르페오는 리라를 높이 들고 노래한다. “천 가지 고통이여, 분노한 그림자들이여, 나 또한 너희처럼 괴로움을 견딘다. 지옥은 내 안에 있으며 그 불길은 내 가슴 깊은 곳에서 타오른다.” 그의 선율이 퍼지자 저승의 공기가 서서히 달라진다. 처음에는 차갑던 퓨리들의 표정이 점차 흔들리고 그들 사이에 알 수 없는 연민이 번진다. “이 알 수 없는 슬픔이 우리의 끝없는 분노를 멈추게 하는구나”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속삭인다. 오르페오는 다시 리라를 울리며 노래한다. “너희가 사랑의 고통을 단 한순간이라도 느껴본다면 내 눈물과 탄식 앞에서 이토록 잔혹하지는 않으리라” 그의 노래가 절정에 이르자 음울한 공간을 메우던 어둠이 서서히 물러난다. 퓨리들과 망령들은 마침내 마음을 열고 길을 터준다. “문을 열어라. 검은 경첩이 삐걱이며 움직이고, 승리한 자의 발걸음이 이제 자유로이 지나가리라” 불길이 잦아들고 퓨리들과 망령들은 서서히 물러나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저승의 문이 열리고 오르페오는 사랑을 되찾기 위한 길 위로 조용히 발을 내딛는다.


2막 2장

장면은 평화로운 숲 속으로 옮겨진다. 무성한 나무와 향기로운 꽃들이 초원을 덮고,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 하늘은 고요하고 공기는 온화하다. 이곳은 선택받은 영혼들이 머무는 엘리시온, 천상적 안식의 공간이다. 에우리디체가 맑은 혼령들에 둘러싸여 등장한다. 그녀는 부드럽고 평화로운 노래로 이 세계의 고요함을 찬미한다. 이곳은 하늘이 선택받은 영혼들에게 허락한 성소이며 세속의 근심이나 고통은 닿지 못한다. 영혼은 달콤한 평온 속에 잠기고 슬픔과 어둠은 이 땅에서 사라진다. 노래가 끝나자 에우리디체는 숲 사이로 천천히 사라진다.


2막 3장

오르페오가 무대로 들어선다. 그는 찬란히 빛나는 엘리시온의 풍경을 바라보며 놀라움과 경탄을 내뱉는다. “이토록 순수한 하늘, 이토록 맑은 태양! 새들의 노래와 시냇물의 흐름, 바람의 속삭임이 어우러져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구나. 복된 영웅들의 거처가 바로 이곳이리라”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떨군다. “하지만 나에게 평온은 없다. 사랑하는 에우리디체가 없이는 어떤 천국도 엘리시온이 될 수 없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영혼들에게 묻는다. “그녀는 어디에 있는가? 내 에우리디체를 보았는가?” 그러자 복된 영혼들의 합창이 울린다. “그녀가 온다. 위대한 영웅이자 다정한 남편이여, 사랑이 그녀를 네게 돌려보내리라. 그녀는 다시 살아나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것이다.” 행복한 영혼들의 춤이 이어지고, 에우리디체가 합창에 이끌려 오르페오 앞에 나타난다. 오르페오는 깊은 감정에 휩싸여 간절히 기도한다. “행복한 영혼들이여, 내가 이토록 애타게 우는 여인을 내게 돌려다오. 너희가 내 마음의 불길을 알았다면 그녀는 이미 내 품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자 하늘이 응답하듯 합창이 화답한다. “그녀는 다시 너의 것이 되리라. 하늘은 자비롭도다. 아름다운 여인이여, 그대의 남편에게 돌아가라. 충실한 사랑이 너희를 다시 잇게 하리라” 영혼들의 무리가 에우리디체를 오르페오에게 인도한다. 그는 규정된 금기를 의식한 듯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손을 잡아 서둘러 떠난다. 그들의 뒤로 엘리시온의 영혼들이 춤을 추며 노래를 이어가고, 합창은 두 연인이 점점 멀어질 때까지 잔잔히 울려 퍼진다.


3막 1장

바위와 덤불로 가득한 음침한 동굴. 오르페오는 손을 잡은 채 에우리디체를 이끌며 걷고 있다. 그는 결코 그녀를 바라보지 않는다. 에우리디체는 믿기 힘든 듯 물으며 “정말 당신이에요? 꿈인가요?”라고 한다. 오르페오는 숨 가쁘게 대답한다. “그래, 나야. 아직 살아 있어. 당신에게 닿기 위해 엘리시온의 깊은 곳까지 왔어. 이제 곧 햇살이 다시 너를 비출 거야” 그녀는 놀란다. “살아서 나를 찾아왔다고요? 어떤 힘으로?” 그는 단호히 말한다. “이제는 묻지 마. 신들이 허락한 순간이 짧아. 떠나야 해” 그러나 에우리디체는 점점 불안해진다. 그의 손이 차갑고, 시선은 끝내 자신을 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나를 보지 않아요?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된 건가요?” 오르페오는 마음이 무너진다. “신들이 금하셨어” 하지만 그 말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에우리디체는 울분 섞인 목소리로 외친다. “그럼 왜 나를 되살렸나요? 나를 다시 죽게 하려는 건가요?” 그의 침묵은 그녀의 절망을 키운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등을 돌리고 돌 위에 기대어 울부짖는다. 에우리디체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떨며 노래한다. “죽음보다 잔혹한 건 이 사랑의 침묵이야” 오르페오는 고통 속에서 호흡이 끊기듯 속삭인다. “하늘이여, 나를 억제할 힘을 주소서” 에우리디체가 마지막으로 애원한다. “당신의 눈으로 나를 불러주세요. 그 한 번이면 돼요” 그 순간, 오르페오의 이성이 무너지고 그는 고개를 돌린다. 에우리디체는 숨을 삼키며 “오르페오...” 하고 부르고 힘없이 무너진다. 그녀의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간다. 오르페오는 절규한다. “에우리디체! 내가 널 죽였구나, 신들의 법이 이토록 잔인하다니” 그는 칼을 들어 자신을 찌르려 한다.


3막 2장

그때, 찬란한 빛 속에 아모르(사랑의 신)가 나타나 오르페오의 손을 붙잡는다. “그만해라, 오르페오. 네 충성은 이미 증명되었다. 신들도 네 사랑 앞에 머리를 숙인다.” 아모르의 손짓 하나에 에우리디체가 다시 눈을 뜬다. 마치 긴 꿈에서 깨어난 듯 숨을 들이쉰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껴안는다. 아모르가 미소 짓는다. “이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라. 진정한 사랑은 시험을 넘어선 뒤에야 완전해진다.”


3막 3장

무대는 찬란하게 빛나는 신전으로 바뀐다. 아모르, 오르페오, 에우리디체 그리고 수많은 영웅과 여인들이 환희의 춤으로 그들을 맞는다. 오르페오는 노래한다. “사랑이여, 너의 제국이 온 세상을 다스리도다. 그 달콤한 사슬 안에서만 인간은 자유롭다.” 합창이 응답한다. “사랑이여, 승리하라” 에우리디체는 덧붙인다. “의심은 우리를 태웠지만 신뢰는 우리를 살렸다.” 아모르는 노래하며 미소 짓는다. “눈물조차 사랑의 불빛 속에선 기쁨이 된다.” 춤이 다시 시작되고 세 사람을 중심으로 원무가 펼쳐진다. 막이 천천히 내려오며 사랑과 용서, 그리고 인간의 믿음이 무대 위에 마지막 빛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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