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

G. Verdi(1813-1901, 이탈리아)

by 세실리아

찬란했던 스물다섯, 고양이와의 결투 이탈리아어는 자음보다 모음이 중심인 데다 강세가 비교적 규칙적이라 언어가 이미 노래처럼 들리는 매력이 있다. 문법적으로 재미있는 규칙도 있는데, 명사의 끝에 -etto, -ino 같은 접미사가 붙으면 '작은'의 의미를 지닌 축소형이 된다. 음악의 빠르기말 중에서 Andante 느리게 - Andantino 조금 느리게, Allegro 빠르게 - Allegretto 조금 빠르게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밤비노 Bambino(여성일 경우 Bambina)는 남자아이를 의미하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카지노 Casino 또한 집이라는 뜻의 이태리어 Casa와 -ino가 결합된 '작은 집'을 뜻한다. 언뜻 화려한 카지노와 '작은 집'이 잘 매칭이 안 된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작은 별채나 사교 공간에서 술과 음악이 어우러진 카드놀이나 파티가 열리곤 했기 때문에 점점 그 의미가 굳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학부를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던 시절, 밀라노에서 두 번째로 안착한 집은 시내 중심가 리마 Lima 역 근처에 있는 5층짜리 빌라였다. 선배 언니의 소개로 운 좋게 현지인 할머니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됐다. 병으로 남편을 여의고, 몇 년 전 친정어머니마저 떠나보낸 집주인 라우라는 후덕한 인상만큼이나 늘 내게 친절했다. 그 집엔 '뿌삐 Puppi'라는 이름의 새까만 고양이가 살고 있었는데, 영어식으로는 '퍼피 Puppy'가 맞겠지만 이탈리아식으로는 '뿌삐'라고 발음한다. 라우라는 종종 뿌삐를 '뿌뻬따 Puppetta' 혹은 '뿌삐나 Puppina'라고 불렀다. 작고 애교스럽게 부르는 애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고양이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순하기만 하진 않았다. 처음 집을 보러 갔던 날, 웬 시꺼먼 녀석이 집주인 무릎 위에 요염하게 앉아서 나를 도도한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넌 또 어디서 굴러들어온 노랭이냐'라고 묻는 듯한 표정이랄까. 나 이전에 살았던 유학생이 한양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현재 오페라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최윤정이다. 위치도 좋은 집에서 왜 이사를 가는지 물었을 때 그녀는 순전히 고양이 때문이라고 했었다. 단지 고양이가 싫어서라고.


사랑받지 못한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낯선 동양인을 향한 경계심이었을까. 이사 후 몇 주 동안 뿌삐는 내게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나 또한 갓 세 달을 넘긴 타지 생활에 정신이 없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학원에서 돌아와 막 현관문을 열었을 때, 그 시꺼먼 고양이가 약 1미터쯤 떨어진 곳에 조신하게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몇 주간 숨죽여 나에 대한 관찰과 검증을 마친 뒤 '이 정도면 마음을 열어도 되겠군'이라고 작정이라도 한 듯 말이다. 그날 이후 뿌삐는 내가 현관문을 열고 돌아올 때면 매일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다. 일정한 거리, 일정한 자세, 일정한 시선. 고양이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와 신뢰를 자신만의 소통과 방식으로 보여준 것인데, 안타깝게도 그 신뢰를 깨뜨린 건 아주 사소한 사건이었다. 동서양의 문화 차이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벽이었다. 집안에선 맨발로 지내는 게 당연한 나와, 신발을 신고 집 안을 오가는 것이 당연한 라우라와의 간극은 그렇게 간단히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내 방엔 커다란 붙박이장이 있었고, 그 안엔 라우라의 물건들이 있어 그녀가 종종 내 방에 드나들었는데, 내색하지 않으려고는 했지만 솔직히 불편했다. 이사 후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쌓여있는 흙먼지와 고양이 털을 쓸고 닦고 털고, 또 쓸고 닦고 털고. 청소와 정리정돈은 습관으로 오래 몸에 배어 있는 데다, 객지에서 건강 및 목 관리를 위해서라도 청결에 더 예민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방에서 끼니 준비를 해가지고 방으로 들어오는데 문틈이 조금 열려 있었는지 방구석에 엉거주춤 앉아 있던 뿌삐하고 눈이 마주쳤다. 그 시껌둥이 하나 때문에 또다시 방청소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러버렸다. 2옥타브를 족히 넘길 법한 날카로운 고음으로 말이다. 뿌삐는 외계어 같은 내 고성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놀라서 침대 밑으로 허겁지겁 숨어버렸다. 나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아니면 그냥 같이 죽자'라는 심정으로 한참을 옥신각신 뿌삐랑 결투(?)를 벌였고, 고양이가 벽을 타고 천장 가까이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놀란 뿌삐가 한 번씩 벽을 탈 때마다 흩날린 건 눈부신 벚꽃이 아니라, 내가 그토록 싫어해 마지않는 고양이 털과 흙먼지였다. 때마침 라우라가 집에 도착했다. 그녀는 놀란 뿌삐를 품에 안으며 조용히 말했다.


Povera Puppi... 불쌍한 뿌우우우삐...


정확히 그날 이후였다. 뿌삐는 내가 그 집에서 지내던 1년 동안 단 한 번도 다시는 현관문 앞에서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 고양이는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매몰차게 나를 손절했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줏대있게 밀고 나갔다. 똑똑하고 아주 영리한 고양이였다. 그리고 어쩌면 나보다 훨씬 품위 있는 존재였다. 시간이 흐른 뒤,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오페라와 뮤지컬을 주제로 수업을 하면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자주 들려주게 되었다. 작품 초반 비올레타가 부르는 아리아를 감상하다가 Cavatina와 Cavaletta를 슬쩍 언급하면서 뿌삐와의 일화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다들 뿌삐가 불쌍하다면서 순식간에 교실이 뿌삐 동정론으로 일렁인다. '참 나, 내가 더 불쌍했거든.. 밖에서 신는 신발을 더럽게 왜 실내에서까지 신어야 되냐고? 허구한 날 바닥에서 뒹구는 고양이 털이랑 흙먼지 치우느라 얼마나 고달팠는지 아냐고'


자그마치 20년의 세월이 흐른 3년 전 유럽여행을 계획하며 밀라노를 경유지에 넣었고, 리마 LIMA 근처에 있는 그 집을 찾아가 보았다. 밀라노 중앙역을 비롯해 도시의 분위기나 모습이 너무 많이 변해서 낯설었지만, 'ㅁ'자 형태의 오래된 빌라는 놀랄 만큼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9,000킬로나 먼 곳으로 공부를 하러 온 건지 아니면 청소를 하러 온 건지 방구석에서 맨날 뭔가를 쓸고, 닦고, 털고.. 마음을 꽁 동여매고 소심하게 굴던 내게 늘 다정했던 라우라 그리고 뿌삐가 곧바로 눈앞에 소환되었다. 쉽게 그곳을 뜨지 못하고 계단참에 서서 한참을 서성이는데 때마침 외출하는 노부부와 마주쳤다. 내가 라우라를 아냐고 물으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성과 이름을 되묻는다. 그들은 "지금은 여기에 안 산다고, 못 본 지 3년 정도 되었다"라고 말했다. 몇 년만 빨리 왔더라면 어쩌면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안타까웠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과거에 내가 좀 더 품지 못한 것, 더 내어주지 못한 마음, 조금 더 유연하게 흘려보내지 못한 일들은 세월이 갈수록 늘 마음 한켠에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중한 추억에 감사하며 남아있는 삶 동안이라도 좀 더 넉넉한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비올레타가 1막 초반에 부르는 아리아 'Ah, fors’è lui'는 〈라 트라비아타〉전체의 흐름을 압축한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려한 살롱 파티의 열기가 가라앉고, 군중이 퇴장한 뒤 무대 위에 홀로 남은 비올레타는 비로소 '사교계의 여왕'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본다. 베르디는 전통적인 아리아 형식인 카바티나 Cavatina와 카발레따 Cavaletta 형식을 통해 그녀의 심리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G. Verdi 〈La traviata〉 _G. Verdi 'E strano... Sempre libera' / Diana Damrau

먼저 등장하는 Cavatina는 비교적 단순한 형식과 서정적인 선율을 특징으로 하는 독창곡으로 대규모 아리아에 비해 간결한 구조를 가진다. 비올레타의 'Ah, fors’è lui'는 이 구조를 충실히 따르며, 알프레도의 고백이 비올레따에게 남긴 여운을 조심스럽게 되짚는다. 음악 또한 화려한 기교보다는 서정적 호흡을 강조하며 관객에게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연약하게 열리고 있는지를 전달한다. 작곡가는 이 여운을 오래 놔두지 않고 곧이어 이어지는 Cavaletta, 즉 'Sempre libera'에서 급격히 빨라지는 템포와 명확한 리듬 속에서 화려한 콜로라투라의 아리아를 선보이며 전혀 다른 성격의 감정을 펼쳐 보인다. 전통적으로 Cavaletta는 인물이 결단을 내리거나 감정적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구간인데, 비올레타는 여기서 사랑의 가능성을 스스로 밀어내며 '자유'를 선언한다. "나는 언제나 자유로워야 한다"는 그녀의 외침은 겉으로는 순간적인 쾌락과 사랑을 쫒는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사랑을 받아들일 경우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자기방어적 선언에 가깝다. 이 장면이 더욱 결정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비올레타가 Cavaletta의 절정에서 'Sempre libera'를 반복하는 순간, 무대 밖에서 알프레도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기 때문이다. 사랑을 부정하고자 하는 비올레타의 결심은 완전하게 마무리되지 못한다. 이는 그녀가 아무리 자유를 외쳐도 이미 사랑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하며, 이후에 전개될 비극의 가능성을 관객에게 조용히 시사한다.

이것만 알고 감상해요 ☞

① Cavatina 카바티나: 대개 반복이 없이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진행하는 서정적인 성격의 아리아
② Cavaletta 카발레따: 주로 아리아의 후반부에 등장하며 빠른 템포와 기교가 강조된 리듬이 뚜렷한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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