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투란도트 Turandot」

G. Puccini(1858-1924, 이탈리아)

by 세실리아

십 대의 사랑은 종종 어른들을 당황하게 한다. 속도는 지나치게 빠르고 표현은 거칠며, 언어는 과장되기 일쑤다. 그러나 그 소란스러운 겉모습 안에는 날것의 진심이 담겨 있을 때가 많다. 꾸며낸 마음이 아니라 감추기 어려운 감정이 이성보다 먼저 달려 나가는 순간들이다. 사랑은 때로 유려한 고백보다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로 먼저 드러난다는 사실을, 나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종종 목격한다.


초년교사 시절, 윈드오케스트라를 맡아 학생들을 지도했다. 악기를 다루는 일도, 아이들을 다루는 법도 서툴렀던 터라 방과 후 연습은 늘 고단했다. 책임감으로 버텼을 뿐 마음은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어느 금요일이었다. 한 주를 무사히 마쳤다는 홀가분함으로 퇴근길에 접어들 무렵, 교무부장 선생님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연습이 끝난 뒤 교제 중인 두 아이가 다투었는데, 남학생이 이별을 고하자 여학생이 학교 담을 넘어 차도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진정되지 않은 채 상담실로 옮겨졌고 교사들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담임과 동아리 담당 교사가 급히 호출되었다. 차를 돌려 학교로 향하는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 막 숨을 돌리려던 참에 다시 학교로 향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상황이 정리되고 며칠 뒤에야 나는 그날의 일을 자세히 듣게 되었다. "헤어질 거면 죽어버리겠다"라고 소리치던 아이의 목소리는 별관을 넘어 운동장을 가로질러 본관까지 닿았다고 했다. 야근을 하던 한 선생님은 그 외침이 마치 교정에 터진 폭발음 같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선생님이 아이를 평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절제하다거나 극단적이라는 훈계 섞인 비평은 전혀 없었다. 그저 운동장을 쩌렁쩌렁 울린 목소리의 크기와 그 울림이 남긴 파동만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마치 거대한 감정이 인간을 압도하는 순간을 목격한 사람처럼..


십 대의 사랑은 위험할 만큼 투명하다. 불안정하고 서툴며 때로는 위태롭다. 반면 어른이 된 우리는 그 감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사랑을 조건과 계산으로 환산하곤 한다. 상처받지 않으려 여지를 남기고, 관계의 우위를 점하려 밀당을 필수처럼 여긴다. 감정을 능숙하게 조절하는 것만이 어른의 연애라고 믿는다.




오페라〈투란도트〉가 그리는 사랑은 현대의 사랑처럼 영악하지 않다. 조건을 따지거나 모호함을 남기며, 감정을 조절하는 방식도 아니다. 칼라프 왕자의 사랑은 직선적이고 망설임이 없다. 그는 공주에게 다음날 아침까지 자신의 이름을 맞혀보라 외치며 자기 목숨까지 걸어버린다. 또한 이 작품에서 가장 애잔한 사랑은 어쩌면 티무르의 노예 류가 아닐까. 과거 자신에게 건넨 단 한 번의 미소를 기억하는 그녀는, 칼라프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투란도트의 위협과 고문 앞에서도 끝까지 침묵한다. 사랑을 증명하듯 스스로 생을 놓아버리는 류의 죽음. 그렇게 무모하리만큼 투박한 진심들이 겹겹이 쌓이며, 비로소 얼음 같던 투란도트의 견고한 성벽도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사랑조차 불안과 의심, 비루한 계산으로 변질되어 가는 각박한 시대에 이 작품의 선율은 유독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오는 7월 서울예술의전당 무대에서 테너 백석종의 목소리로 울려 퍼질 칼라프를 기다려 본다. 고요한 밤을 가르는 '네순 도르마 Nessun Dorma'의 장엄한 외침을 들으며, 한 학기 동안 켜켜이 쌓인 피로를 씻어내고 다시 뜨거운 삶의 감각을 깨울 수 있기를 바란다.

puccini01.jpg 피아노 앞 푸치니 - 인상만 보면, 호탕하면서도 좋고 싫은 게 뚜렷한 사람이었을 것 같은.. 담배 좀 적당히 피우시지


작품배경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는 그가 평생 구축해 온 서정성과 극적 감각이 가장 웅장한 규모로 응집된 작품이다. 이전 작품들이 인간의 감정과 현실적 비극을 중심으로 펼쳐졌다면, 〈투란도트〉는 동화적 상상력과 잔혹한 전설을 품은 한층 더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세계를 무대로 삼는다. 특히 3막에 이르러 오페라는 사랑과 공포가 공존하는 거대한 동양의 신화를 완성해 나간다.

푸치니는 1858년 이탈리아 루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120년이 넘도록 지역 성당의 악장 자리를 지켜온 교회음악가 가문이었으며, 아버지는 지역 음악원의 원장이자 교회 오르간 연주자였다. 어린 푸치니 역시 산 마르티노 대성당의 소년 합창단에서 음악적 토대를 다졌고, 오르간 연주를 비롯한 교회음악의 질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음악가로 성장했다. 어머니 알비나 역시 음악적 소양이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푸치니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희곡 문학을 접하며 극적 감수성을 키웠다.

그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막 오페라 〈레 빌리 Le villi〉였다. 이 작품은 손조뇨 콩쿠르를 위해 작곡되었으나 심사에서는 탈락했지만, 1884년 초연에서 성공을 거두며 오히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때 출판사 리코르디의 대표였던 줄리오 리코르디가 푸치니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를 발탁하면서, 작곡가 푸치니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이후 그는 대본 작가 주세페 자코사와 루이지 일리카와의 협업을 통해 〈라 보엠〉, 〈토스카〉, 〈나비 부인〉 같은 걸작들을 연이어 탄생시키며, 이탈리아 오페라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러나 〈나비 부인〉 이후 푸치니의 창작은 개인사와 현실적인 사건들이 겹치며 점차 둔화된다. 1903년에는 자동차가 전복되는 큰 교통사고를 겪으며 육체적으로 깊은 후유증을 안게 된다. 기혼 여성이었던 엘비라 제미냐니와의 관계는 1904년 결혼으로 이어졌지만, 이후 하녀 도리아 사건과 불륜 의혹을 둘러싼 스캔들은 그의 삶에 큰 상처를 남겼다. 여기에 그를 오랫동안 지지했던 리코르디의 사망까지 겹치며, 푸치니의 내면은 한층 고독한 방향으로 기울었다. 그럼에도 그는 새로운 영감의 원천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였다. 〈투란도트〉의 소재는 베네치아 출신 극작가 카를로 고치의 희곡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뿌리는 더 멀리 프랑스의 동양학자 프랑수아 페티 드 라 크루아가 정리한 페르시아 문학과 '천일일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 속 파루크나즈 공주 이야기처럼 잔혹함과 신비가 결합된 동양적 서사는 푸치니에게 완전히 새로운 오페라적 가능성을 제공했다. 그는 실제로 중국을 방문한 적은 없었지만, 그 거리감이 오히려 상상과 환상을 증폭시키는 힘이 되었다. 현실의 중국이 아니라 서구 예술가가 꿈꾸어낸 '무대 위의 중국'이 그의 음악 속에서 거대한 극장 공간으로 펼쳐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환상성이 단지 공허한 장식으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푸치니는 작품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음악을 광범위하게 연구했으며, 이를 위해 영국 박물관을 방문해 중국 유물과 필사본, 판화, 악기 등을 직접 살펴보았다. 또한 중국 주재 이탈리아 영사가 들려준 오르골 선율에서 영감을 얻어 몇몇 선율을 작품 속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투란도트〉에는 '모리화 茉莉花'로 대표되는 정통 중국 선율이 인용되며, 징과 실로폰 등 이국적인 악기 편성이 더해져 색채감 넘치는 음향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요소들은 단순히 이국적 취향을 넘어 작품이 지닌 의례적 분위기와 궁정의 차가운 공기를 더욱 실감 나게 만든다.

오케스트라는 이전 작품들을 뛰어넘을 만큼 웅장하며 합창과 앙상블의 규모 또한 압도적이다. 푸치니가 이 마지막 작품에서 선택한 표현 방식은 한 인물의 내면적 독백을 섬세하게 묘사하던 그의 기존 어법을 넘어 거대한 무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음향 장치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 있다. 이 장대한 스케일 속에서 테너 아리아 'Nessun dorma'는 단숨에 작품의 상징이 되었고, 리리코 스핀토적 성격을 지닌 칼라프의 강렬한 성악적 에너지는 푸치니 오페라가 도달한 정점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위대한 작품은 완성되지 못한 채 남겨졌다. 푸치니는 평생 담배를 피웠고, 1923년부터 목의 통증을 자주 호소하기 시작했다. 결국 후두암 진단을 받고 수술까지 진행했지만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는 1924년 세상을 떠나며 〈투란도트〉를 미완성 상태로 남겨두었다. 그의 죽음 이후 제자 프랑코 알파노가 푸치니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마지막 두 장면을 완성하여 작품을 마무리했다.

이 오페라는 1926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날 지휘봉을 잡은 이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였다. 초연 당시 그는 3막의 어느 지점에서 지휘를 멈추고, 푸치니가 남긴 악보가 끝나는 순간을 관객에게 알리며 "이 순간, 거장이 세상을 떠났습니다"라고 선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장면은 〈투란도트〉라는 작품이 단지 성공적인 레퍼토리를 넘어 '한 시대의 종결'로 기억되는 이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유작이자 현실을 넘어 상상과 환상이 만들어낸 거대한 무대다. 차가운 궁정의 잔혹함과 동화적 색채, 서구의 시선으로 재구성된 동양의 신비 그리고 푸치니 특유의 서정성이 한데 엮이며,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가장 웅장하고 강렬한 오페라 중 하나로 살아있다. 2024년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맞아 다시 조명되었듯 〈투란도트〉는 지금도 작곡가로서 그의 마지막 투지가 남은 작품으로 기억된다.

'Nessun dorma'를 부른 테너 성악가들 - 누가 더 낫다고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명불허전, 실력도 출중하지만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의 미소는 넘 매력적이다( ˘ ³˘)

등장인물

투란도트 Turandot - 중국 황실의 공주 / 소프라노

알툼 황제 The Emperor Altoum - 중국의 황제, 투란도트의 아버지 / 테너

티무르 Timur - 추방당한 티타르의 왕, 칼라프의 아버지 / 베이스

칼라프 Calaf - 티무르의 아들, 추방된 티타르 왕국의 왕자 / 테너

류 Liù - 노예소녀, 티무르를 따르는 인물 / 소프라노

핑 Ping – 황실 재상 / 바리톤

팡 Pang – 황실 재상 / 테너

퐁 Pong – 황실 재상 / 테너


상세줄거리

#제1막: 북경 황궁 앞

북경 황궁 앞 광장에 군중이 모여 있고 만다린이 황제의 칙령을 낭독한다. 공주 투란도트는 왕족 신분의 구혼자에게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내며, 이를 모두 맞힌 자와 혼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하나라도 틀리면 즉시 처형된다. 이제 막 실패한 페르시아 왕자는 달이 뜨는 순간 목숨을 잃게 될 운명이다. 군중이 처형을 기다리며 들끓는 가운데, 폐위된 타타르 왕 티무르가 노예 소녀 류의 부축을 받으며 나타난다. 사람들은 그를 거칠게 몰아세우지만, 한 젊은 남자가 그를 알아보고 달려온다. 그는 티무르의 아들 칼라프이며, 유랑 속에서 헤어진 아버지를 극적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류는 나라를 잃은 뒤에도 티무르 곁을 떠나지 않았는데, 칼라프가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오래전 칼라프가 자신에게 미소 지어준 순간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달이 떠오르고 페르시아 왕자가 처형장으로 끌려오자, 군중은 순간 연민을 느끼며 투란도트에게 자비를 호소한다. 그러나 투란도트는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고, 아무 말 없이 처형을 명령한다. 그 차가운 권위와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칼라프는 아버지와 류, 대신들인 핑·팡·퐁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전의 신호인 징을 울린다. 그는 투란도트의 또 다른 구혼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제2막1장: 대신들의 방

핑·팡·퐁은 투란도트의 통치 아래 계속되는 처형과 공포의 분위기를 한탄한다. 세 사람은 한때 평화롭던 고향과 조용한 삶을 떠올리며, 언젠가 투란도트가 사랑을 받아들이고 이 피의 악순환이 끝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광장으로 모여드는 군중의 소란은 또 하나의 수수께끼 재판이 시작될 것을 알린다.

#제2막2장: 황궁 앞 대광장

황제 알툼은 늙고 지쳐 있으며, 칼라프에게 도전을 포기하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칼라프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투란도트가 나타나 자신이 왜 남자를 증오하는지 설명한다. 그녀의 조상인 루링 공주가 침략자에게 능욕당하고 살해된 비극 이후 투란도트는 남자를 믿지 않으며 누구도 자신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이윽고 수수께끼가 시작된다. 칼라프는 첫 번째 질문에 '희망'이라 답하고, 두 번째에는 '피'라 답하며 정답을 맞힌다. 마지막 질문에서 마침내 '투란도트'라는 이름을 외치며 세 번째 수수께끼까지 풀어낸다. 군중은 환호하지만 투란도트는 충격과 분노 속에서 황제에게 혼인을 철회해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황제는 맹세와 법에 따라 약속을 거둘 수 없다고 말한다. 투란도트가 끝까지 거절 의사를 밝히자, 칼라프는 그녀를 몰아붙이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제안을 한다. 만약 투란도트가 동틀 무렵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낸다면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겠지만, 알아내지 못한다면 투란도트는 그와 혼인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투란도트는 이를 받아들이고, 황제는 새벽이 오면 모든 것이 끝나리라 기대한다.

#제3막1장: 황궁 정원

밤이 되자 전령들이 북경 전역에 명령을 내린다. "누구도 잠들어서는 안 된다. 낯선 왕자의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도시는 공포에 잠기고, 칼라프는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 확신하며 이를 되뇌인다. 핑·팡·퐁은 칼라프에게 재물과 여자, 명예를 제시하며 떠나 달라고 설득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격분한 군중은 고통의 원인을 칼라프에게 돌리고, 병사들은 칼라프와 함께 있는 것이 목격된 티무르와 류를 끌고 온다. 사람들은 그들이 왕자의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라 의심한다. 투란도트가 나타나 티무르에게 이름을 말하라고 강요하지만, 류는 자신만이 비밀을 알고 있으며 결코 말하지 않겠다고 나선다. 병사들이 그녀를 고문하자 투란도트는 묻는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강하게 만드는지. 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답하며, 투란도트 또한 머지않아 사랑을 알게 될 것이라 말한다. 고문이 계속되자 류는 단검을 빼앗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군중은 그녀의 죽음에 숙연해지고, 티무르는 절규한다. 류의 시신이 운구되며 무대에는 칼라프와 투란도트만 남는다. 칼라프는 투란도트의 베일을 벗기고 충동적으로 그녀에게 입을 맞춘다. 투란도트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그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사랑하고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칼라프는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이름을 직접 알려준다.

#제3막2장: 황제 앞

다시 황제와 백성들 앞. 투란도트는 마침내 낯선 왕자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녀가 말한 이름은 왕자의 이름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투란도트와 칼라프가 서로를 받아들이며, 황제와 군중은 새로운 결말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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