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Massenet(1842-1912, 프랑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다시 읽었다. 중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께서 브론테의 〈제인 에어〉와 함께 이 책을 소개해 주셨는데, 작품 자체보다도 그 감동을 이야기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내겐 더 멋있어 보였다.
국립오페라단이 올해 첫 공연으로 4월에 선보일 쥘 마스네의 오페라 〈베르테르〉의 원작이 바로 이 작품이다. 사람이 사람을 이토록 열렬하게, 간절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랑인지 열병인지 모를 그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버겁고도 어려운 일 아닌가. 그런 감정이야말로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고유한 것이기에 한 개인의 절망과 고백으로 시작된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읽히고 또 사랑받는 게 아닌가 싶다. 자그마치 250년이 지난 오늘의 독자에게 이 작품은 진부하고 통속적인 연애소설처럼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1774년 이 소설이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 유럽 사회에 끼친 파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작품 속 베르테르를 모방해 자살하는 청춘들이 유행처럼 번졌다는 이야기는 그 시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얼마나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이 작품이 발표되던 시기는, 음악사적으로는 고전주의의 균형과 절제가 미학으로 자리 잡아가던 때였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구축한 세계는 조화롭고 단정했으며, 감정은 품격 있게 다듬어 표현되었다. 그런 시대에 베르테르는 자신의 감정을 아무런 여과 없이 내던져 버렸다. 그 고백이 당대에 얼마나 파격적으로 들렸을지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마치 하이든의 음악을 듣던 어느 날, 몇 세기를 뛰어넘어 낯선 시대의 음악을 맞닥뜨린 것처럼 말이다. 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시대의 눈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 현대의 감각만으로 고전을 재단한다면, 작품이 품고 있는 진한 울림을 놓치게 될 테니까. 시대의 정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분명 고되지만, 책장을 덮은 뒤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건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잊지 말아야 할 고귀한 감정이 무엇인지 고전이 조용히 말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생애
쥘 마스네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낭만주의 시대의 정서를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무대 위에 옮긴 인물이다. 그는 평생 30편이 넘는 오페라를 남겼으며, 그중에서도 《마농, 1884》과 《베르테르, 1882》는 오늘날까지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으로 꼽힌다. 마스네는 어린 시절 파리 음악원에서 수학했고, 프랑스 음악가들에게 최고의 영예였던 로마 대상 Prix de Rome을 수상하며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후 파리 음악원에서 오랫동안 작곡을 가르치며 프랑스 음악계의 중심 인물로 자리했고, 동시에 오페라 작곡가로서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아우르는 감각을 발휘했다. 그의 음악은 거대한 영웅담이나 장엄한 혁명보다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감정의 결을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 마스네는 대사와 음악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극적 흐름, 섬세한 관현악 색채 그리고 서정적 선율을 통해 인물의 심리를 '설명'하기보다 '느끼게' 만든다. 특히 사랑, 망설임, 죄책감처럼 말로 다 담기 어려운 감정들을 음악 안에서 조용히 증폭시키는 방식은 그의 가장 큰 강점이다.《베르테르》는 이러한 마스네의 미학이 극도로 응축된 작품이다. 초연 당시에는 "너무 우울하다"는 이유로 파리에서 외면받기도 했으나, 결국 시간이 흐르며 진가를 인정받았다. 이 오페라는 괴테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지만, 《베르테르》는 사건을 따라가는 오페라가 아니라 마음이 무너지는 과정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낭만적 열정과 부르주아적 질서가 충돌하고, 사랑과 의무 사이에서 인간의 내면이 갈라지는 순간을 마스네는 음악으로 섬세하게 드러낸다. 결국 마스네는 '극적인 사건'을 과장하기보다는 한 인간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아름답고도 잔혹할 만큼 정교하게 그려낸 작곡가였다. 그래서 《베르테르》를 듣고 나면, 우리는 비극을 본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 한 영혼의 마지막 숨결을 들은 듯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1877년 4월. 마스네가 밀라노의 출판업자 리코르디에게 보낸 자필 편지, 그는 이탈리아를 사랑하며 2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던 로마에서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은 날, 펑펑 울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오페라 베르테르 Werther
전 4막
Werther 베르테르 - 젊은 시인 / Tenor
Charlotte 샤로테 - 베르테르가 사랑하는 여인 / Mezzo-Soprano
Sophie 소피 – 샤로테의 여동생 / Soprano
Albert 알베르 – 샤로테의 약혼자, 남편 / Baritone
Le Bailli 르 바이유 - 집행관, 샤로테와 소피의 아버지 / Bass
Johann 요한 – 르 바이유의 친구 / Baritone
Schmidt 슈미트 – 요한과 함께 등장하는 친구 / Tenor
줄거리
#제1막: 7월, 마을 판사의 집
여름날, 마을 판사의 집에서는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캐럴 연습을 하고 있다. 집안의 중심은 장녀 샤로테로, 어머니를 잃은 뒤부터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집안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샤로테가 곧 알베르트와 결혼할 것이라 믿으며, 그날 밤 열릴 무도회를 기다린다. 이 집을 찾아온 젊은 시인 베르테르는 샤로테가 동생들에게 저녁을 챙겨주는 따뜻한 장면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는 자연과 감정에 민감한 낭만적 인물로 샤로테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긴다. 무도회가 끝난 뒤 베르테르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며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 순간 샤로테의 아버지가 알베르트의 귀환을 알린다. 샤로테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알베르트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음을 고백하고, 베르테르는 절망 속에 빠진다.
#제2막: 9월, 마을 광장
몇 달 후, 샤로테는 이미 알베르트와 결혼한 상태다. 마을 광장은 일요일의 평온한 분위기로 가득하지만, 베르테르의 마음은 황폐하다. 그는 샤로테를 잊지 못한 채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통받는다. 알베르트는 겉으로는 친절하고 신사적으로 베르테르에게 우정을 내미나, 베르테르의 감정은 전혀 사그라지지 않는다. 한편 샤로테의 여동생 소피는 밝고 순수한 성격으로 베르테르에게 다가가 그를 위로하려 하지만 그는 더욱 공허해질 뿐이다. 샤로테가 등장하자 베르테르는 다시 사랑을 호소하고, 샤로테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떠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흔들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베르테르에게 "크리스마스에 다시 오라"는 말을 남긴다. 이 말로 인해 베르테르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무너지고, 소피에게 작별을 고한 채 사라진다. 알베르트는 그제야 베르테르의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제3막: 크리스마스이브, 알베르트의 집
크리스마스이브, 샤로테는 베르테르가 보내온 편지들을 읽으며 괴로워한다. 불태우지도, 끊어내지도 못한 채 감정에 휩쓸린 그녀는 이미 마음속에서 베르테르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소피는 언니의 기분을 밝게 만들고자 애쓰지만, 샤로테의 슬픔은 깊어질 뿐이다. 그때 약속된 날이 다가오자 베르테르가 나타난다. 그는 창백하고 지친 모습이며, 떠나려 했지만 끝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샤로테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베르테르에게 오시안의 시 번역을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베르테르가 낭독하는 비탄의 시는 두 사람의 감정을 폭발시키고, 결국 베르테르는 샤로테를 끌어안아 입을 맞춘다. 샤로테는 잠시 흔들리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베르테르에게 "다시는 만나지 말자"며 달아난다. 남겨진 베르테르는 이제 죽음만이 유일한 출구라고 확신한다. 잠시 후 알베르트가 돌아오고, 베르테르가 남긴 편지가 도착한다. 그는 여행을 떠난다며 알베르트의 권총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샤로테는 공포에 질리지만, 알베르트는 냉정하게 권총을 내주도록 한다.
#제4막: 베르테르의 방
샤로테는 불길한 예감을 견디지 못하고 베르테르의 방으로 달려간다. 그곳에는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한 베르테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죽음이 가까운 순간, 샤로테는 더 이상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자신 또한 베르테르를 사랑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녀는 의무와 약속 때문에 알베르트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오고, 삶의 평온한 축제 소리는 방 안의 죽음과 잔혹하게 대비된다. 베르테르는 샤로테의 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며, 사랑과 절망의 생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