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남
(2024. 9. 14.) 요새 사는 게 좀 힘들어서 엄마 묘소에 갔다가 근처 카페에서 잠시 독서멍- '커피 한 잔에 좋아하는 책 한 권, 맑게 갠 창밖에 구름 몇 점,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의 나뭇가지에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내가 아닌가?'라는 걸 깨달으며 스스로를 잠시 다독인 시간. 그래, 모든 건 결국 흘러가고 다 지나간다.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선생님의 책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힘든 내게 너무 큰 힘이 되어준 책이다.
[P24-25] 물론 열여덟 살 때 바로 위 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방황하며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살 거라면 잘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난 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데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병이 찾아온 걸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어렵게 두 아이를 낳고 이제 막 내 뜻을 펼쳐 보겠다고 병원을 개업한 지 1년도 채 안 되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정신분석 공부를 더 하려는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었던 것일까. 큰아이가 중학생이고 둘째는 초등학생인데 그 아이들은 또 어쩌란 말인가. 당시 나는 평상심으로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병원 문을 닫고 집에 있는데 거의 한 달 동안을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만약 내가 의사가 아니었다면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받아도 병에 대해 잘 모르니까 덜 끔찍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의사였고 병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미래가 빤히 그려졌고 그것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꼼짝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 한없이 천장만 쳐다보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중략) 그러나 나는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런 병에 걸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눈앞이 깜깜했고,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으며, 세상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러는 사이 우울은 더 깊어져 갔고 차라리 이대로 죽어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나는 그대로인데, 단지 달라진 게 있다면 내 미래가 불확실하고 현재가 조금 불편해진 것밖에 없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내가 왜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망치고 있는 거지?'
[P33-36] 2014년 1월 3일 아침 출근하려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병이 조금씩 악화되어 그렇게 미뤄 왔던 치료제 레보도파를 사용한지 10개월째였는데 더 이상 환자를 진료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한 달만 쉬어야 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고 출근을 포기했다. 첫아이를 유산하고, 어렵게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와중에도 결코 포기한 적이 없는 출근을 내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증상은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엔 병원 문을 닫고 체질 개선과 요양을 목적으로 제주도에 내려갔다. 선흘리에 있는 조그만 집에서 혼자 머무르며 치료에만 집중했는데 처음에는 진료도 그만두고 공기 좋은 곳에 내려가서인지 병세가 호전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점점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레보도파 약효의 지속 시간이 세 시간밖에 안 돼 하루의 반 정도는 누워서 약 먹을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려야 했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 하룻밤에도 옷을 세 번 정도 갈아입어야 했다. 게다가 약기운이 떨어지면 자율신경계가 깨져서 심박동수가 120을 넘고,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돌아눕기도 힘들고, 이불이 무겁게 느껴져서 발로 차 내려고 해도 다리가 뻣뻣해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다리를 1센티미터 옆으로 옮기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 파킨슨병을 묘사할 때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는 움직여 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는데 그 상태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커다란 고통이었다. (중략) 내가 가려는 먼 곳을 쳐다보며 걷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발을 쳐다보며 일단 한 발짝을 떼는 것, 그것이 시작이며 끝이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데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높은 계단을 오를 때 저 위를 보고 가면 못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분명 많이 올라왔는데 계단 끝까지 가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주저앉게 되기 때문이다. 주저앉아 언제쯤 저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하다 아예 올라가기를 포기하게도 된다. 그러나 도저히 못 갈 것 같은 순간에도 발을 쳐다보며 한 발짝 떼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다. 그리고 계단 끝을 보며 올라갈 때는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올라가는 일 자체가 고통스러운데, 신기하게도 발을 쳐다보고 한 발짝 떼는 데 집중하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온 신경이 그저 한 발짝을 내딛는 데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P37] 그리고 내 경험상 틀린 길은 없었다. 실패를 하더라도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면 그것은 더 이상 실패가 아니었고, 길을 잘 못 들었다 싶어도 나중에 보면 그 길에서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을 배움으로써 내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 때론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 때문에 화가 난 적도 있지만 분노의 힘이 나를 살게 한 적도 있다. 그러므로 가장 빠른 직선 코스로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버린다면 한 발짝을 떼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이유는 없다. 남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 봐야 그 기쁨을 같이 나눌 사람이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슬픈 일이다. 그러니 어떤 순간에도 삶을 포기하지 말고 용기 내어 일단 한 발짝만 내디뎌 보라. 나를 화장실에 가기까지 5분이 걸렸지만 도착한 순간 해냈다는 기쁨에 환호성을 질렀다. 당신이 누구든, 어떤 상황에 있든 한 발짝을 내디딘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용기 내기를 참 잘했다는 것을.
[P50] 자신의 역사를 써 나간다는 것, 그것은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누가 나를 함부로 대하고, 나를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해도 그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간다는 의미다. 친정 부모의 횡포와 시부모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애써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적당히 거절할 건 거절하고, 들어줄 건 들어주는 것이다. 그들에게 휘둘려 내 소중한 에너지를 다 써 버리는 대신 그것을 카페를 운영하고 내 삶을 살아가는 데 투자하는 것이다.
[P56] 내가 아는 한 워킹맘은 너무 지치고 힘든 날에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한 시간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있곤 했다. 가족들에게는 차가 밀려 귀가가 좀 늦어질 것 같다는 거짓말을 하고선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삶을 즐기는 것은 '~해야 한다'는 말을 줄이고, '~하고 싶다'는 말을 늘려 나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못 당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의무감과 책임감만으로 살아가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눈앞의 놓인 과제들에 내 인생을 다 내어 주기보다는 좀 더 멀리 보며, 나를 더 아껴 주고, 틈틈이 나에게 즐거운 음악을 들려주고, 달콤한 휴식을 허락할 것이다.
[P87-88] 한 가지 더, 지금까지 삶을 돌아보니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10명 중 2명 정도였다. 그리고 나와 맞지 않는 2명은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결코 가까워지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좋은 남자와 좋은 여자를 만나게 해 줘도 그들 사이에 끌림이 없으면 연인 관계로 발전하기 힘든 것처럼, 아무리 괜찮은 사람들이라도 둘 사이는 막상 그리 친하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껄끄러운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에 너무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친해지고 싶고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싶은 사람들을 챙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랜만에 연락해도 그들은 당신을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환대는 분명 당신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예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 인간관계가 피곤한 노동처럼 느껴진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라. 아직도 당신을 아는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P166] 우리의 일상은 쳇바퀴처럼 굴러간다. 특별한 일도, 재미있는 사건도 별로 없다. 게다가 나 같은 경우 좋았다 나빴다 반복하는 병을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매일 삼시 세끼 약을 챙겨 먹고, 운동을 하고, 고기류를 아예 먹지 않는 등 병을 이겨 내기 위한 노력을 쉼 없이 해야 한다. 그래서 가끔은 정말 지칠 때가 있다. 특히나 고통이 가시기는커녕 심해지는 날엔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고통스럽다 생각하며 누워만 있는 것보다는 소소한 삶의 재미를 만들어 가는 것이 훨씬 좋았다.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고, 또 그걸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 떠올리는 것만 해도 좋았으니까. 컨디션이 좋은 날엔 예쁜 옷을 꺼내 입고는 외출을 하고, 컨디션이 안 좋아 누워 있는 날에도 키우는 꽃과 나무에 새로 핀 잎사귀는 없는지 살펴본다.
(2026. 3. 17.) 재작년에 책을 읽고 필사해서 남겨 둔 부분을 브런치에 옮기면서 다시 읽는다. 어수선한 생각들이 두 가지로 정리되는 것 같다. 팔다리가 멀쩡하고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삶에 겸허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감사인지. 또 한 가지는 최근 자주 생각하게 되는 '사람에 대한 기대'에 관한 것이다. 이젠 적당히, 사람에 대한 기대를 좀 내려놓고 살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마음으로 오는 사람들한테야 당연히 더 잘해야겠지만, 세상에 꼭 그런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