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일기 - 프롤로그

by 유연한프로젝트

최근에 이승희 ‘기록의 쓸모', 강원국 ‘나는 말하듯이 쓴다’ 책을 읽고 나도 뭔가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때는 내가 글을 잘 쓰고 글쓰기를 업으로 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김영하 작가를 보면서 글만 쓰면서도 해외 여러 도시에서 생활하는 노마드 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어렴풋한 희망도 가졌었다. 그러나 10년이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책도 신문도 읽지 않고 고작 SNS에 올라온 다섯 줄 정도의 글들만 읽게 되면서 나는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내 감정을 남기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까지 생각이 들어 일기조차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몇 해전 브런치가 유행을 하면서 나도 다시 글을 쓰고 싶어 졌다. 꼭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어 져서가 아니라, '누구나 작가가 되는' 이 말에 끌려서 나도 다시 글을 쓰고 싶어 졌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때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한 문장을 완성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글쓰기를 포기하고 작은 수첩에 일기만 가끔씩 써 내려갔다.


그 일기 쓰기는 작년, 재작년 난임시술을 받으면서 정점에 이른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내 감정을 써봤다. 아마 임신에 성공하면 나이 든 사람의 난임 과정을 책으로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쓰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때는, 너무 절박했던 그때는, 누군가의 임신 성공 소식을 들으면 나도 곧 임신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실패한(?) 나의 난임 일기를 남길까도 생각 중이다. 임신만이 답이 아닐 수 있다고... 나처럼 난임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마 시작은 이럴 것이다.


‘이 글은 1년 넘게 난임으로 고생하다가 임신이라는 목표보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 쓴 글입니다. 아직 간절히 임신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 유의 바랍니다.’


임신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이 회사를 더 이상 다닐 이유가 없어졌다.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다는 것이 한때는 유일한 장점이었던 이 회사를 더 이상 다닐 의미가 없어졌다. 하루하루 지옥같이 힘든 생활에서 나의 정신과 건강을 악화시키는 곳에 나는 더 이상 다닐 이유가 없어졌다. 물론 후회한 적이 없다고는 말 못 한다. 몇 개월만 푹 쉬고 다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맘껏 여행을 하지도 못하고, 다른 일을 쉽게 시작할 수도, (나이 40에) 스타트업에 들어갈 수도 없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충분히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인생의 절반에 다가온 시점에서 되돌아보는 좋은 시간을 갖고 있다. 왜 주구장창 퇴사를 주제로 하는 책이 나오는지 알 것 같다. 그런데 그 퇴사 책은 고작 2-3년 직장생활 한 사람들이 많이 낸다. 20년, 30년씩 일한 사람들은 묵묵히 회사를 다니고 있는 아이러니한 세상.


나는 솔직히 내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른 채 회사에 출근하는 날이 많았다. 가끔 일요일 저녁이 되면 멍하니 월요병에 시달리면서 다음 주말에는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카페에 가서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야지 (참고로 나는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상 서랍 정리, 냉장고 정리, 생각 정리) 다짐을 하며, ‘나는 왜 살지, 주말에 코스트코에 가서 돈 쓰려고 사나.’ 잠깐 생각해보다가 잠이 들기 일쑤였다.


10년 간의 직장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그리고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반복해서 10년을 같은 회사에 출근하는 일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 공간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일에 대한 기억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퇴사 6개월이 넘은 지금까지도 나는 회사 꿈을 자주 꾼다. 정확히는 회사 사람들이 등장하는 꿈이다. 친했던 사람도 물론 꿈에 나오지만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심지어 친분이 없던 사람들도 나온다. 어젯밤에는 어제까지 출근했던 사람처럼 후배 직원에게 뭔가 조언을 해주는 꿈을 꿨다. 잠에서 깨고 생각해보니 그 직원은 항상 무언가 문제 상황에 놓여 있었고, 전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는 사람이라 내가 항상 해결 방법을 제시해줬던 기억이 나 웃음이 났다. 아직도 그 친구는 그렇게 일을 하고 있겠지. 요즘 계속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인지 회사 생각이 많이 나긴 한다.


회사를 다니던 어느 날, 직원 중 누군가 퇴사를 한 날, 혼자 이런저런 생각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여기 남아 있는 사람이 결국은 승자라고, 지금 퇴사한 저 사람은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도망친 것이라고 혼자 결론 내렸던 날이 있었다. 그때는 그게 맞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게 맞을 수 있다. 그때의 생각을 떠올리고 나니 내가 실패자가 된 것 같다.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버텼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금은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할 길이 없어진 느낌이다.


얼마 전 TV에서 이효리가 임신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뭔가 서운해졌다. 아이 없이 사는 부부도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대변해주는 사람 같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에 서운해졌다. 어딘가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그래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