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막바지 제주는 뜨거웠다. 온 세상이 잠길 것 같은 우렁찬 비가 쏟아져 뜨거운 공기를 식히고 나면 다시 투명한 햇볕이 내리쬐었다. 우리는 비가 오면 실내에서,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해가 나면 나가서 놀았다. 특별한 놀이 기구가 없어도 바다와 바위, 숲으로 충분했다.
친구들은 아마추어 연극 배우들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이기는 하지만, 배우인 친구들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관객 앞에서 ‘연기’하는 대담함이 있다. 친구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면 무대 위의 배우가 되었다. 나는 그들의 끼를 흉내 내기 어려워 입을 틀어막고 웃기만 했다. 가끔 그들을 따라 해 보려 했지만, 뻣뻣한 몸이 맘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넘실대는 파도와 날씨에 따라 변하는 바다색처럼 변화무쌍한 무대 배경은 그들의 연기를 돋보이게 했다.
나이 들어 만난 대학교 친구들인 우리에게 20대 젊음의 잔재는 살아났다. 우리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 시절의 열정을 되새기며 돌아다녔다. 제주의 자연은 환갑 젊은이들을 포용하고 함께 웃어주었다. 비가 온 직후 해변, 한적한 올레길, 새벽 바다. 관중이 없는 무대에서 거리낌 없이 신나게 아이들처럼 뛰어다니고 팔짝 뛰면서 적지 않은 나이를 잊었다.
한참 놀 대학생이었을 때는 몸을 사렸다. 남의 눈을 의식하고 체면을 차린다고 얌전한 척했다. 과년한 처녀가 주책을 떨고 다니면 혼사 길이 막힌다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혼사길'이 그때는 치명적이었다. 독립적인 여성으로 살아가기보다 누군가의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라고 보고 듣고 자랐다. 공부도 신붓감으로 적당할 만큼 했고,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얌전하게 지내다가 맞선을 보고 결혼했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젊은 여자들이 비슷한 길을 갔기 때문에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결혼을 미루고 유학을 가고, 취직하는 친구들이 유별나 보였다. 똑똑하고 야무졌던 여자들은 결혼이라는 굴레에 스스로 들어가 갇혔다. 그들의 세상은 남편과 아이들, 시집과 친정이라는 테두리에 머물러 식구들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아이들에게 어떤 과외를 시켜야 할까 골몰했다.
좁은 세상에서 복닥이며 살았지만,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때 정답이라고 믿었던 삶의 가치가 완벽한 정답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어느 순간,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반드시 옳지만은 않았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열정을 마음 가는 대로 풀어 나가며 스스로 만족할 뿐이다. 나이와 교육, 관습과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온새미로 펼쳐지는 제주의 자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