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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준비하면서 시작한다

여행은 준비하면서 시작한다. 목적지를 정해 알아보고, 대충 여정을 짠 다음 교통편을 예약한다. 일찍 예약할수록 저렴하다. 나는 오미오(omio)라는 앱을 이용했는데 기차나 페리 공식 웹사이트에서 직접 하면 더 싸고, 결항에 대한 정보도 빠르게 전한다. 같이 갈 친구들과 조금 더 상세한 여정을 짠 다음 숙소를 정한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인터넷, 책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2년 전 스페인 여행 준비에는 없던 AI친구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세부적인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 짐을 싼다.


두 달 전, 한 친구가 시칠리아에 가자고 제안했다. 스페인에 다녀온 후 여독이 심해 이제 이런 자유여행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칠리아? 이름만으로도 매혹적인 지중해의 섬 이름을 듣자마자 힘들었다는 사실은 잊고 나는 여행 준비에 몰두했다.

우선 블로그나 유튜브에 나오는 여행기를 읽고 각 도시에서 꼭 봐야 할 목록을 만들었다. 이를 토대로 나의 로봇 친구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했다. 시칠리아는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지정학적인 요지이기 때문에 아주 오래전부터 이 땅을 차지하려고 하는 민족이 많았다. (그리스–카르타고–로마–비잔틴–아랍–노르만–슈타우펜–앙주–아라곤–스페인–부르봉) 삼각형 모양으로 동쪽은 그리스, 서쪽은 서유럽, 남쪽은 아프리카를 향해있는 제주도의 14배가 되는 큰 섬이다. 소설 《표범》에서는 시칠리아를 ‘고대의 아메리카’라고 비유했다. 기원전에 세워진 신전이 있고, 교회는 보통 몇백 년이 넘었다. 새로운 민족이 지배할 때마다 그들의 문화는 겹겹이 쌓여 독특하게 융합하고 화합했다. 한겨울에도 따뜻하고, 화산토라 달디단 농작물이 쑥쑥 자란다고 했다.

독립 왕정 국가였던 시칠리아가 지척에 있는 이탈리아 국적을 갖게 된 지도 채 200년이 되지 않았다. (1860) 그 당시 상황을 잘 표현한 소설이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표범》이다. 주인공 돈 파브리치오는 시칠리아가 이탈리아로 편입되기 전 마지막 팔레르모의 귀족이다. 격동의 시기에 그는 애써 저항하지 않고 흐름에 맞추어 의연하게 대처했다. 그가 아들보다 사랑하는 조카 판크래디는 가리발디 장군 혁명에 찬성하여 치열하게 싸우다가 한쪽 눈 위에 상처를 깊게 입었다. 주인공은 부와 명예를 다 누렸지만, 세상의 물결에 애써 저항하지 않았다. 영주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팔레르모 팔라쵸와 돈나푸가타에 있는 여름 별장에 대한 묘사를 읽고 나는 시칠리아를 더욱 낭만적으로 상상하게 되었다.

작가 김영하는 “그동안 가고 싶었던 곳이 없었냐”는 PD의 질문에 마치 ‘오래 준비해 온 대답’처럼 “시칠리아요”라고 대답했다고 《오래 준비해 온 대답》에서 말했다. 시칠리아에 다녀오기 전에는 모호했던 작가의 ‘오래 준비해 온 대답’의 의미를 이제는 이해한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이 여행기를 다시 꼼꼼히 읽으면서, 나는 그 섬이 벌써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시칠리아는 ‘오래 준비해 온 대답’이었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고 보았던 수많은 정보가 여행 다니면서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낯선 땅에서 운전할 걱정이 커서 떠나기가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막상 부딪혀 보니 머리에 마구 넣고 꼼꼼하게 메모했던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느낌은 사라지고 나만의 시칠리아만 남았다. 걱정한 대로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사람 사는 이치는 비슷했고 가슴 저릿한 풍경이나 말도 되지 않게 오래된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보면 역시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의 여행기가 시칠리아로 떠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시시한 여행기로 그 섬의 기품과 낭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것인가. 그냥 떠나보시길. 그 섬에 가면 거짓말처럼 당신만의 이야기가 드러나 ‘오래 준비해 온 대답’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