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들

나폴리에서 팔레르모로 (2026년 1월 5

로마에서 나폴리로 가는 기차는 한산했다. 전날 도착해서 바짝 긴장했던 우리는 한 친절한 멋쟁이 아저씨 덕분에 나폴리로 가는 기차가 서 있는 플랫폼을 쉽게 찾았다. 테르미니역은 예전과는 달리 밝게 재건축해서 주변 지역도 안전해 보였지만, 우리는 여권과 현금이 든 크로스색을 앞으로 단단히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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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의 전원 풍경은 스페인과 비슷했다. 넓은 초록색 구릉에 둥근 수형의 올리브 나무나 오렌지 나무가 드문드문 심겨있고, 평화스러운 시골집이 뚝뚝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나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나 비슷하게 시골 풍경은 위안을 준다. 나는 두 주간의 여행을 시작하는 기대와 걱정을 빠르게 움직이는 차창 밖으로 내던졌다.

나폴리 항구에서 시칠리아 팔레르모까지 가는 페리 그랜디 나비 벨로치(GNV)는 저녁 8시나 되어야 출발했다. 우리는 오후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폴리역에서 ‘산 젠나로 두오모 성당’을 향해 걸었다. 1월 겨울 햇살은 포근했고, 역전 거리는 시끄럽고 혼잡했다. 어수선한 좁은 골목에 있는 성당에 들어서자, 분위기는 갑자기 장중하고 고요해졌다. 나폴리를 위기에서 구해주었고 해마다 순교의 피를 녹이는 기적을 보여 도시가 무탈할 것이라 안심시켜 주는 성인 젠나로. 나폴리 사람들은 700년 동안 성인을 극진하게 모시고, 1년에 세 번 피가 액화되면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여러 민족이 쌓은 건축 문화가 거대한 성당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우리는 거리로 나와 이탈리아 사람처럼 길바닥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셨다. 로마에서 따로 오는 다른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이탈리아 남녀가 와서 의자를 가져가도 되겠냐고 묻고는 옆에 앉았다. 아줌마들은 화장을 곱게 하고 머리를 기름으로 착 넘긴 아저씨들은 꼭 끼는 바지를 입어 잔뜩 멋을 낸 모습이었다. 한 남자가 우리에게 맥주를 권하면서 한잔 사겠다고 했지만, 사양했다. 그들은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국토의 말발굽에 있는 Puglia에서 온 가족이었다. 우리는 서로 통하는 언어가 하나도 없는데도 영어 단어 한두 개로 소통하며 크게 웃었다. 아마도 한마을에 사는 아들, 딸, 며느리, 사돈인 것 같았다. 나는 얼마 전 재미있게 읽은 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가 생각났다. 1950년대 나폴리 빈민 계층의 두 소녀가 어찌어찌해서 한 명은 대도시의 교수가 되고, 한 명은 고향에서 부자와 결혼한다. 그들의 사랑과 질투, 야망의 표현이 적나라하고, 주변 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민망하게 사실적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의 주변 인물임이 분명해서 그런지 작가는 끝까지 익명을 요구했다. 나는 꽤 긴 3부작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단숨에 읽었다. 혼인으로 얼기설기 얽힌 가난했던 나폴리 외곽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루도 되지 않아 소문이 나고 사람들은 거기에 살을 붙여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질문을 하는 그들을 보고 그 소설의 인물들을 떠올렸다. 맥주를 거절하는 이유가 이슬람교라서 그런가, 아니지?(그들은 맥주를 거절하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너네들 엄청 젊어 보인다, (동양인을 거의 보지 못한 듯하다), 피부가 좋은데 무슨 화장품을 쓰느냐라고 물었다. 친구는 인터넷에서 우리나라 화장품을 보여주고 구매하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었다. 여행 첫날 만난 유쾌한 가족 덕분에 잔뜩 긴장했던 우리는 조금 편안해졌다.

골목길을 걷다가 점심을 먹으러 조용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점잖아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식당 안에서는 사람들이 시끄러운 깐소네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쟁반을 나르던 아저씨는 테이블 위로 올라가 유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무슨 행사라서 모인 사람들인가 했는데 그냥 손님들이었다. 천장에는 빨래처럼 겉옷, 속옷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가정집 분위기를 내려고 빨래를 넌 것처럼 식당에 옷을 걸어놓는다고 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노래와 춤을 즐기며 식사했다. 여행의 긴장은 조금 더 느슨해졌다.

다시 역으로 와서 맡겨놓은 짐을 찾아 항구로 갔다. 큰 배는 벌써 와서 정박 중이었다. 밤 바닷가의 공기는 차가웠다. 첵크인 시간이 남아서 밖에서 한참 기다린 후에 여자들만 4명 자는 침대칸에 짐을 풀었다. 작은 화장실과 이층 침대가 두 개 있었다. 친구들이 밤바다와 나폴리 항을 봐야 한다면서 갑판으로 나가자고 하는데 나는 하루 종일 걸었고 기다림에 지쳐서 눕고 싶었다. 커다란 배가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 배가 묵직하게 요동하면 바다를 헤엄치는 꿈을 꾸었다. 일찍 자서 새벽에 눈을 떴는데 친구들의 잠을 방해할 수 없어서 그냥 눈을 감고 기도하거나 명상했다. 테레니아해를 떠가고 있다고 상상하니 좁은 선실에 갇혀있어도 정신은 자유로웠다. 해가 뜨고 선실이 분주해지면서 배는 드디어 시칠리아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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