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에 첫발을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 (2026년 1월 6일)

배 밖 새벽 공기는 달콤했다. 우리는 12시간 동안 선상 감옥에 갇혀있다가 해방되었다고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하루를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페리 여행이 크루즈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차를 빌리기 위해 공항까지 가야 하는데 누군가 다가와 택시를 타라고 했다. 버스는 없고 공항까지는 멀지만 싸게 해 주겠다고 했다. 스산한 항구에서 얻어 타고 가는 차에서 조금 불안했지만, 기사는 순박하고 친절했다. 그는 우리의 질문에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어서 답해주었다.


AVIS에서 돈을 좀 더 내고 GPS와 사계절용 바퀴가 있는 ‘포드 푸가 suv’로 바꿨다. 차를 빌릴 때 차 이름 뒤에 similar라고 쓰여있으면 현장에 가서 비슷한 다른 차를 줄 수 있다. 고심해서 정했는데도 막상 가보니 추가로 내야 할 돈이 많았다. (보험, 운전자 추가 등) 빌린 차는 세 명의 큰 가방을 싣고도 넉넉하고 하이브리드라서 우리는 만족했다.

도로에는 차가 별로 다니지 않았다. 제한 속도 표시를 얌전하게 지키고 가는데 다른 차들은 우리를 앞질러 갔다. 교통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게 같이 빠르게 달리다 보면 카메라가 보여 브레이크를 밟았다. 시칠리아의 속도 제한 카메라는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몇 달 후 어느 날 속도위반 티켓이 날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샤카(Sciacca)를 지나니 지중해가 보였다.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비가 오는가 하면 저쪽에서는 해가 나고 조금 있다가 무지개가 떴다. 하늘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바다와 들, 바로크 양식의 농가, 구릉을 연결하는 돌다리, 그 위에 선명한 일곱 색깔 무지개. 우리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완벽한 반원의 무지개다리를 보고 환호하며 운전 속도를 늦췄다. 여행의 출발을 축하한다는 뜻일까. 우리가 보기에는 기적 같은 풍경이 여기서는 다반사인지 다른 차들은 씽씽 달렸다.

팔레르모에서 두 시간 정도 운전해 아그리젠토에 도착했다. (125~130km) 기원전 6세기에 해발 300m 산 위에 그리스 식민도시 아크라가스가 생겼고, 중세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사람들이 와서 살면서 지금의 산상 도시 아그리젠토를 이루었다. 여기에서 우리의 첫 번째 난관이 시작되었다. 숙소를 정할 때는 중세 마을의 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집 앞 골목이 좁아서 차를 근처에 세우고 짐을 끌고 계단을 올라갔다. 로마 시대 아피아 가도 같은 돌길에 트렁크 바퀴가 잘 굴러 가지 않고, 계단이 많아 애를 먹었다. 낑낑대며 올라가 보니 레몬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가 있는 이층집이었다. 짐을 던져놓고 우리는 ‘신전의 계곡’으로 향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지만,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우선 식당을 찾았다. 아침에 페리에서 김을 싼 밥을 먹은 게 전부였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는 시간인데 우리를 흔쾌히 받아줘서 고마웠다. 식당에서는 신전이 보였다. 배가 고프고 피곤해도 우리는 고대의 신전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2,500년 전 지중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받아들이며 찬란하게 빛났을 헤라 신전 앞에서 시간은 멈추었다. 지금까지 남은 16개의 기둥만으로도 여신 중의 여신의 신전은 위풍당당했다. 그 옛날 신을 모시는 사람들의 모든 기도가 아직도 남아 언덕을 신비롭게 감싸고 있었다. ‘신전의 계곡’에는 동쪽부터 서쪽까지 헤라 신전, 콘코르디아 신전, 헤라클레스 신전이 서 있다. 그중 콩코르디아 신전은 후대에 교회로 이용해서 상태가 가장 온전하다. 어떤 신을 모셨는지 알려지지 않은 콘코르디아 신전이 아직 우리에게 제대로 남아있는 것은 ‘concordia(화합)’만이 인류가 살아갈 길임을 가르쳐 주는 것일까. 거의 흔적만 남아있는 제우스와 그의 쌍둥이 아들들 디오스쿠로이 신전을 돌아보고 오는 길, 콩코르디아 신전은 지는 해를 받아 황금색 왕관처럼 빛났다. 지중해에서 이 섬을 향해 오는 사람들은 신전의 위용에 기세가 꺾였을 것이다. 신전 덕분에 산상 마을 사람들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왔을 것이다. 벚꽃 나무가 철없이 잔뜩 꽃을 피워놓고는 찬 바닷바람에 떨고 있었다.

숙소 앞 주차는 또 난관이었다. 다른 차 세운 곳에 끼어서 넣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불안했다. 친구가 밤에 나가 집 근처 골목에 자리가 났다고 다시 세우고 나서야 우리는 안심했다. 마을에 하나씩 노란 조명이 켜졌다. 교회와 광장, 상점이 주택과 어울려 있는 전형적인 중세 마을이었다.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 전, 종이 울려 퍼졌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와서 어둑한 거리를 돌아다녔다. 우리는 작은 상점에 가서 저녁거리를 사 와서 시칠리아에서의 첫날을 축하했다. 시칠리아산 와인이 풋풋했다. 운전과 주차, 낯선 곳을 찾아다니는 여정이 만만하지는 않았지만, 무지개와 신전만으로도 우리는 만족했고, 수학여행 온 소녀처럼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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