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삶

가브리엘 그라시아 마르케스

우리에게 이야기는 또 다른 ‘일용할 양식’이다. 원형 극장에서 비극을 관람하던 고대 그리스인이나,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긴 소년 왕의 짧고 슬픈 인생을 극장에 앉아 보는 현대인이나 마찬가지이다. 인류는 남의 이야기를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삶을 위로해 왔다. 여러 작가가 문학의 종말을 선언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듣던 옛날이야기부터 소설, 수필, TV 드라마, 영화까지 우리에게 이야기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이겨내는 든든한 도구이다. 혼을 쏙 빼놓는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을 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어릴 적 외갓집에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조부모가 살았던 반백 년 전에 일어난 이야기는 '마술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이지 않아도, 어린아이에게는 이미 충분히 마술적임을 나도 알고 있다.


남동생이 태어난 후 나는 외갓집에 자주 가서 생애 첫 '고독'을 달랬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작가적 정신이 있었다면 마르케스처럼 그 이야기를 기록해 두었겠지만, 별로 총명하지도 않고 어리숙했던 내게는 할머니의 표정과 어렴풋한 내용만 기억날 뿐이다. 할머니는 1914년에 평양 근처 해주 지주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학문에 대한 욕심이 남달라 열심히 공부했고, 그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자 고등학교 '진남포고녀'에 다녔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 학생과 경쟁해서 아무리 잘해도 1등은 어려웠고, 졸업생 대표는 어림도 없었다. 졸업식 날, 1등을 한 일본 학생이 아파서 오지 못하는 바람에 2등인 할머니가 대표로 졸업장을 받았다. 조선인이 졸업식 단상에 서기 어려운 시절이라 사람들이 놀랐다고 했다. 할머니는 나에게 공부를 가르치며 이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나는 그 대목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손녀에게 당신의 학창 시절 이야기로 용기를 북돋아 주셨던 것일까. 단상에 선 소녀 할머니를 상상하기는 어려웠지만, 나도 할머니를 닮아 공부를 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살벌했던 일제 강점기의 편견과 부당함을 이겨낸 할머니의 '운'과 노력이 신기했고, 몇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이야기였다.

한국 전쟁 때 인민군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식량을 약탈했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먹이려고 숨겨둔 마지막 식량을 인민군이 빼앗으려 하자, 오열하며 끝까지 품 안의 곡식을 놓지 않았다.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은 나는 깜짝 놀라며 '괴뢰군'이 할머니를 그냥 두었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그들도 다 사람인지, 어미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순순히 돌아갔다고 했다. 공산당도 '사람'이라고 말하는 할머니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할머니가 '이승복 어린이'처럼 되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 술을 좋아하던 할아버지는 친구들과 마시고 난 빈 병으로 방을 가득 채웠다고 했다. 60세에 고혈압 진단을 받고 단칼에 술을 끊어 손녀에게 한 번도 술 마시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분이 말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소주병이 차곡차곡 쌓인 방이 나는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가끔 할아버지는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의 명사십리 해안을 이야기했다. 그 모래사장이 얼마나 끝없이 펼쳐졌는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을 지그시 감고 말하면, 가볼 수 없는 그곳이 더욱 멀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카리브해 연안 아라카타카(Aracataca)에서 8세까지 살며 외조부모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외조부모는 딸의 결혼을 반대했지만, 외손주가 생기자, 딸 내외를 위한 방을 마련해 아이를 정성으로 돌봐주었다. 외할아버지는 천일전쟁(Guerra de los Mil Días) 참전 용사였다. 그는 손자에게 전쟁과 죽음, 무자비한 이념의 대립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기자가 사실을 전하듯 '벽돌 같은 얼굴'(brick face)로 들려주는 사람이었다. 《백 년의 고독》이나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가 직접 보고 경험한 주변 사람들이다. 그의 여동생은 레베카(《백 년의 고독》)처럼 흙을 먹었고, 아버지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콜레라 시대의 사랑》)처럼 전신 기사였다. 집에는 금 세공실이 있었고, 근처 바나나 농장에서는 대학살이 일어났지만 다들 쉬쉬했다. 나는 소설을 읽다 피식 웃기도 하고, 누군가 안타깝게 죽으면 가슴이 찡했다. '마술적'이지만 잔인할 만큼 사실적인 문장을 읽으면서,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비가 사 년 십일 개월 이틀 동안 내렸다."

"공기가 얼마나 축축했는지, 물고기가 문으로 들어와서는 방 안 공기 속을 헤엄쳐 창문으로 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미녀 레메디오스는 침대 시트를 널다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이 나는 새도 쫓아가지 못할 만큼 높은 상공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고독하고 슬픈 일상사에 무한한 상상력을 덧붙여 웃고 지나가게 만드는 작가의 재주는, 어릴 때 들은 옛날이야기의 힘이었을까. 나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이야기도 얼마나 신기하고, 유머가 있고, 문학적이었던가.

마르케스는 미완의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첫 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나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살아 있다. 일본인 학생 대신 단상에 오른 조선 소녀는 여전히 나에게 공부를 권하고, 눈을 감고 명사십리를 그리던 할아버지는 아직도 그 끝없는 모래사장을 걷고 있다. 이야기하기 위해 기억하는 한, 그 삶은 끝나지 않는다.



외할머니.jpg 내리 손녀만 보다가 첫손자를 얻은 증조할아버지 그리고 그리운 외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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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의 외조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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