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할아버지의 미소

소설 《파친코》

외할아버지는 여섯 형제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그중 넷째는 일본 오사카에서 정형외과 의사였다. 우리는 그 분을 ‘넷째 할아버지’ 혹은 ‘일본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평양의전을 졸업하고 지방에서 개업의를 했다. 실력이 좋고 자상해서 인기가 높아 돈도 많이 벌었다. 전쟁 후 스승이었던 교수의 초청으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사람의 양자가 되어 귀화했다. 그곳에서도 실력과 인성이 훌륭하다고 알려져서 오사카에 있는 병원도 번창했다. 일본 사람으로 살았지만 ‘조선인’임은 암암리에 소문이 나서 동포들이 많이 찾아왔다.

두 아들은 모두 아버지처럼 의사가 되었고, 두 딸은 일본인, 재미 한국인과 각각 결혼했다. 그들도 물론 철저하게 일본 사람으로 성장했다. 잘 생기고 실력 있는 의사인 두 아들들이 일본 여자와 결혼할 때도 한국인임을 애써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어릴 때 외할아버지가 일본에서 보내온 그들의 결혼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주인공과 식장이 할리우드 배우의 결혼식처럼 화려했다. 제일 큰딸은 조금 기억나는 한국말을 하지 않고 살다가 ‘겨울 연가’가 유행하자 다시 모국어를 썼다. 이제는 거리에서 한국말을 하면 여자들이 와서 가르쳐 달라고 한다고 말하면서 환하게 웃던 여배우처럼 아름다운 이모의 얼굴이 생각난다. 그것도 이미 오래전 이야기지만.

80년대가 되어서야 넷째 할아버지는 한국을 방문했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그 당시 형님이라면 그랬듯이 자식이 줄줄이 있는데도 동생의 의대 학비를 부담했었다. 동생은 형의 은혜를 기억하고 한국에 올 때마다 외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선물을 사 오고, 같이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외할아버지는 동생이 정기 구독해 보내주는 일본의 유명한 월간지인 ‘문예춘추’를 한 달 동안 읽고 또 읽었다. 짙은 눈썹이 하얗게 된 두 노인은 일본말을 섞어 대화를 나누다가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닌데 파안대소하며 즐거워했다. 눈썹이 짙은 다른 두 동생까지 함께하면 유쾌한 신선들의 모임 같았다.


내가 30년 전 오사카에 처음 갔을 때, 일본 할아버지는 기차 좌석이 어딘지 물어보고 플랫폼으로 마중을 나왔다. 콤비 신사복을 단정하게 입은 할아버지는 정확히 우리가 내리는 곳에서 기다리다가 손을 흔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는 오사카와 나라를 꼼꼼하게 설명하며 전문 가이드처럼 안내하고 맛집을 데리고 가서 밥을 사주었다. 처음 먹어보는 게 요리 정식, 스시 같은 일본 음식이 참 맛있었다. 하나씩 나오는 요리마다 짧은 시가 곁들여 나왔다. 사람들이 올 때마다 자상하게 관광을 시켜주어서 그런지 어느 여행사의 관광상품보다도 할아버지의 여정이 알찼다. 일본의 도시와 가이드 할아버지는 한 치의 흐트러짐이 단정해서 나도 모르게 옷매무시를 고쳤다. 그 당시 연세가 꽤 많았던 할아버지는 30도가 넘는 한여름 더위에도 온종일 지치지 않고 우리를 데리고 걸어 다녔다.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으면서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할아버지의 걸음걸이가 당당해서 자신의 고향을 숨기고 살아온 분처럼 보이지 않았다.

저녁을 먹은 후 할아버지는 오사카 시내에 있는 집을 보여주었다. 일본식 단층집은 간소하지만, 세련된 와비사비 (일본의 문화적 전통 미의식, 미적 관념의 하나이다. 투박하고 조용한 상태를 가리킨다) 스타일이었다. 새로 들여놓은 최신식 침대를 리모컨으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우리에게 자랑했다. 서재에서는 그동안 다녀온 여행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가 갈 수없던 중국이나 쿠바 같은 나라의 진기한 풍경이 담긴 사진은 할아버지처럼 단정하고 정확하게 앨범에 정리되어 있었다.


“역사가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의 이야기인 이민진의 소설《파친코》의 첫 문장이다. 4대에 걸친 주인공들은 잔인한 역사의 흐름 안에서 삶의 의지와 굳건한 정신, 선한 행동을 이어갔다. 그들은 지지리도 못사는 나라에서 태어났고, 신체적으로 미약하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과 짐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박해받아도 그들은 어진 성품을 잃지 않았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철저하게 조선인을 탄압했지만, 악의 없이 도와주는 일본인도 있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위풍당당하고 멋있었던 일본 할아버지가 귀화해서 한국인임을 드러내지 못했던 이유를 비로소 이해했다. 그분도 평생 ‘조선인’임을 맘껏 드러내지 못했던 슬픔과 분노를 ‘노아’처럼 품고 있었을까. 할아버지는 '노아'가 선택한 죽음이 아니라 '선자'나 '이삭'처럼 열정과 헌신, 그리고 능력으로 세상의 불의에 굴하지 않고 살았다.

일본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다.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그분이 하고 싶은 또 다른 고통과 슬픔 그리고 희망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플랫폼에서 기다리던 넷째 할아버지의 넉넉하고 세련된 미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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