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미가 넘치는 5월의 제주. 나뭇잎은 소녀의 뺨처럼 통통하게 살이 올랐고 꽃과 풀의 진한 향이 황홀하게 흩날렸다. 바다는 젊은 여자의 가슴처럼 탱탱하게 부풀어 올라 근사한 태양을 받아들여 눈부시게 빛났다. 제주 중산간의 차 나무만 선명한 연두색의 말차를 만들기 위해 검은 장막 속에서 음전하게 자라고 있었다. 만물이 짙은 초록색으로 성숙해가는 5월 모루 농장 다회의 주제는 신록이었다.
제주 모루농장 5월의 차회에서 찻상을 마주하고 앉은 사람들과 떡차를 만들었다. 금방 딴 찻잎을 쪄서 떡처럼 모양을 만들어 말려 가운데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엽전 모양이라 전차(錢茶)라고도 한다. 보통 녹차는 오래 두고 먹을 수 없는데 이 전차는 발효되어 시간의 힘으로 점점 맛이 좋아진다. ‘맛의 아크’에 들어간 이끼가 낀 주화 모양의 장흥 천태전처럼 생겼다. 우리는 몇 년 전 이미 만들어 놓은 떡차를 음미했다. 달큰하고 고소했다. 차밭에서 불어오는 녹색 바람이 차의 맛을 더했다. 창 밖의 돌담 위로 구름이 하얀 풍선처럼 뭉게뭉게 떠 올랐다. 차를 천천히 마시는 사람들의 표정이 찻물처럼 맑았다.
끓는 물을 알맞은 온도로 식히고, 찻잎에 내려 기다렸다가 조금씩 따라 차를 마시는 느린 시간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얼마 전 독서토론 모임에서는 친구들과 인공 지능에 관해 읽은 책을 두고 이야기했다. 뉴스 기사로만 접해 막연히 동경하고 두려워하던 인공 지능의 실체를 코끼리를 더듬다 눈을 뜬 소경처럼 감을 잡는 기분이었다.
“더 커밍 웨이브”의 저자 무스타프 슐레이만은 인공 지능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얼마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 설명했다. 그는 비교적 낙관적으로 기술 발전의 미래를 예측하지만, 산업 혁명 시대에 손으로 하는 일을 기계가 해주었을 때처럼 사람들은 당황하고 반항할 것이라 했다. 이미 인류는 컴퓨터가 세상을 거미줄처럼 엮어 빠르게 소통하게 만들었을 때의 파도를 경험했고, 위험한 원자력 에너지를 안전하게 이용할 방법을 찾았으니 이 '다가오는 파도' 또한 잘 넘어갈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인공 지능 회사 “딥마인드”의 창업자인 작가는 기술 발달이 일으킬 사회의 불평등과 국가의 존폐 위기에 대해 현명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병탁 이진경 선을 넘는 인공 지능”은 철학자와 과학자, 그리고 SF 소설가의 대담이다. 그들은 지능과 의식이라는 근본적인 주제로 논의를 시작했다. 철학자 이진경은 인간만이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식물도 생존을 위해 빛과 물, 공기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인간은 생존을 목표로 지능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신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인공 지능의 한계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뇌가 진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초지능이 나타나려면 예상보다 더 기다려야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과학자도 동의했으며 이진경은 장병탁이 ‘스피노자 스타일의 인공 지능 과학자’라고 불렀다.
우리는 각자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간단히 이야기했는데 수준이 예상보다 더 빨리 높아질 AI를 잘 이용하여 재미나게 살고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의견을 일치했다. 그리고 각자 지금 chat-gpt나 번역기같은 인공 지능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이야기했다. 한 친구는 chat-gpt와 처음 대화할 때 공손하게 질문하고 고맙다는 답례 인사까지 했다면서 웃었다. 나도 요즘은 웬만한 외국어 기사는 번역기를 돌려 읽는다. 이제는 데이터가 많아 문맥에 맞는 단어를 잘 골라다 쓰는 번역기가 고마우면서도 나의 외국어 실력은 점점 퇴보하는 기분이 들어 얼떨떨하다. 사실 기억력이 감퇴하는 줄 알면서도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기억하려고 애쓰지도 않고 검색기능을 이용하는데, 번역까지 기계에 맡기니 우리의 지능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아니면 퇴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구글의 엔지니어인 블레이크 르모인(Blake Lemoine)은 자신이 개발하고 연구하는 대화형 인공 지능 람다 (The Language Model for Dialogue Applications, LaMDA)가 존재 의식과 감정이 있다고 주장하다가 해고당했다. 인간은 사물을 의인화해서 애착을 두기도 하니 매일 대화하는 인공 지능과 교감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느님은 금단의 열매를 몰래 따먹고 자아를 의식한 아담과 이브를 낙원에서 쫓아냈다. 그렇다면 인간만의 영역을 침범한 의식과 감정을 가진 기계를 용납할 수 없는 인간은 신의 자리에 도달한 것인가.
인공 지능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채워져 있다가 손으로 한 잎 한 잎 따서 오랜 시간 숙성한 차를 모여 앉아 마시는 자리에 오니 ‘인간’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고 고귀해 보였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인간적인’ 감성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믿음은 어리석은 오만일까.
chat-gpt에게 인공 지능 시대에도 사람들은 차를 마실까 하고 재미 삼아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차를 마시는 문화는 그 자체의 고유한 가치와 의미로 인해 지속될 것입니다. 차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인간의 정체성, 사회적 유대감, 심신의 안정을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입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느끼는 따뜻함과 평온함,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감성은 어떤 기술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차를 마시는 문화는 인공지능 시대에도 우리에게 위로와 안식을 제공하며, 지속적으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언젠가 사람처럼 생긴 인공 지능 로봇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