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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다녀왔을까

32산 거문도 섬산 (2021년 6월)

by Claireyoonlee

버스는 자정에 출발했다. 불편하게 쪽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여수의 항구였다. 먹색 어둠을 뚫고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 나오는 항구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배를 기다렸다. 쾌속선이 바다 위를 떠서 날아가는 동안 서서히 어둠이 사라졌다. 버스 정류장처럼 초도 정류장에 잠시 선 배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배는 다시 빠르게 바다 위를 질주했다. 멀미할 겨를도 없이 바다 한가운데 신기루처럼 섬이 나타났다. 그렇게도 가보고 싶던 남해 한 가운데의 섬, 거문도였다.


거문도의 세 섬이 둘러싼 바다는 잔잔하다. 세 갑장 친구 같은 고도, 동도, 그리고 서도는 망망대해에서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한때는 바닷길로 왕래했으나 이제는 다리로 연결되어 한 섬이 되었다. 고도의 항구에서 만난 초등학생 소년들은 마을버스를 타고 서도에 놀러 간다고 말했다. 본토와 제주 사이의 바다를 앞마당같이 쓰는 섬사람들은 아이들까지 깊은 바다를 건너가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


세 섬 중에 가장 작은 고도는 거문도의 중심지이다. 우리를 데려다준 쾌속선 ‘니나’호, 작은 낚싯배나 요트, 커다란 고깃배까지 드나드는 항구와 우리가 머문 숙소와 음식점, 작은 가게가 있는 마을이 있다. 고도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동도, 서쪽으로는 서도가 보인다.

서도의 수월산, 동도의 망향산의 무시무시한 기암절벽에 파도를 하얗게 부서뜨리는 바다는 어질어질하게 깊고 푸르다. 세 섬이 둘러싼 내해를 빼고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바다가 끝이 없어 그 아득한 무한의 세계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뭍에서 쾌속선을 타고 한 시간 반이나 오지 않았는가. 바다를 끼고 이어진 섬 산의 좁은 길에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는 풍경을 만날 때마다 탄성의 한숨을 내뱉었다.


숙소인 ‘해밀턴 호텔’ 옆의 식당에서 가두리 양식장에서 잡은 참돔회를 먹고 고도의 언덕을 올라갔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이었다. 조가비 같은 작은 집들이 바다를 경배하는 것처럼 엎드려 있었다. 납작한 돌을 쌓아 만든 돌담을 따라 올라가니 제법 높은 언덕배기에 마을과 바다를 바라보는 영국인 묘지가 있었다. 묘비에는 역사책에 잠깐 나오는 ‘거문도 사건’에 대해 쓰여있다.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요지로 지목해 해밀턴항구라 명하고 불법점거 했다.” 살벌한 한 줄의 설명과 다르게 ‘불법 점거한 이방인’의 묘지는 조상님을 모신 것처럼 정갈하고 숙연했다. 세 개의 묘비 옆에 있는 빛바랜 사진에는 눈이 크고 얼굴이 긴 서양 군인과 갓을 쓴 양반, 평민, 아이들, 개가 가족같이 어울려 있다. 평화롭게 낚시하고 농사를 짓던 섬사람들은 어떻게 느닷없이 들이닥친 먼 나라의 군인들과 이웃 친척처럼 편안하게 사진을 찍었을까. 기습 점거한 외국인의 묘지를 만들어 놓은 것도, 침입자와 친구처럼 어울려 찍은 사진도 이상했다.

영국군은 2년 동안 섬에 머물면서 ‘영국 신사’답게 공정한 급여를 주면서 일을 시켰고, 주민들과 분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들은 주민들을 상세히 조사하고 “거문도에 사는 수백 명(당시 조선 기록에는 2,000여 명)의 어부와 농부들은 아무런 정치적 견해도 갖고 있지 않고 자신들이 조용하고 평화롭게 생선을 잡고 쌀로 밥을 지으며 살 수만 있다면 (우리가 점령해도) 아마도 계속해서 그럴 것이다”라고 보고했다. 탐관오리의 폭정에 시달리며 강제노동을 하던 사람들은 오히려 외국인의 공정한 치정을 반겼다.

섬사람들은 따뜻한 인연을 맺은 영국군이 이곳에서 세상을 떠나자, 그들의 묘를 지었다. 우리는 이방인의 무덤을 뒤로하고 앉아 바다에서 해가 지는 모양을 어린 왕자처럼 감탄하며 쳐다보았다. 해는 바다 위 하늘에 고운 색깔을 마음껏 흩어놓았다. 우리 마음에도 섬사람들과 ‘기습 점거’한 외국인의 우정이 석양 같은 여운을 남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등대를 가기 바로 전, 한 친구가 넘어져서 심하게 손을 다쳤다. 공중 보건의가 토요일에 근무하지 않지만, 환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쁘게 자전거를 타고 와서 응급 처치해 주었다. 의사는 상처와 처치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해 주어 걱정하는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어딘가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동네 어르신에게 별거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하는 젊은 의사가 믿음직스러웠다. 우리는 친구의 손에 야무지게 붕대를 감은 의사의 손길과 따뜻하고 이성적인 대처에 감동했다.


다음 날, 망향산을 올라가다가 쑥밭에 일하러 가는 할머니를 만났다. 흙이 잔뜩 묻은 몸빼바지를 입고 막 일을 시작하려다가 우리를 보고는 인적이 드물어 “산길이 제대로 나지 않았으니 올라가서 백도랑 보고 길이 없으면 내려와 부려”라고 말해주었다. “할머니 쑥밭에서 쑥 좀 뜯어가도 돼요?”라고 했더니 맘대로 뜯어가라고 했다. 바닷바람을 마시고 쑥쑥 키가 큰 거문도 해풍쑥은 알맞게 향이 익었다. 할머니의 노고를 거저 가져가는 것 같아 밭에 있는 쑥은 놔두고 산에 지천으로 있는 쑥을 잔뜩 뜯었다.


우리는 하루를 묵고, 섬 산을 오르면서 섬을 보고 느꼈다. 거문도는 속이 들여다보이도록 맑은 바다, 오래된 등대, 향그러운 쑥밭과 동백나무숲,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과 살았던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로 상자 속 초콜릿처럼 다양하게 맛있었다. 늦은 밤에 서울에 도착하니 인공의 빛이 명멸하여 눈이 따가웠다. 구석구석 보물이 숨어있는 그 남해의 섬을 정말 내가 다녀온 것일까. 쑥을 씻어 말려 차를 만들었더니 섬 산의 향이 피어올랐다. 머나먼 섬을 다녀온 기억이 향기로 남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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