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나는 딩크로 살아보려고 한다.
나는 31살, 남편은 35살. 결혼식을 올린 지 만 2년이 지난 시점의 결심이다.
"오빠는 왜 아이가 낳기 싫어?"
그에게 수십 번을 물었다. 그것도 꽤나 조심스럽게.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것이 취미인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두어 번 숙성회를 곁들여 음주 타임을 가진다.
각자 한 병 정도 마셨을 때. 딱 기분은 좋되 취하지 않은 그 시점. 나는 언제나처럼 같은 질문을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답변 역시 동일하다.
"지금처럼 우리 둘인 게 좋아. 누군가를 책임지면서까지 내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어릴 적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었던 것도, 물려주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컴플렉스가 있는 것도 아니란다. 나도 다 물어봤다. (주변에서 하도 이런저런 추측들을 많이 하길래.) 우리 가정의 형편은 대한민국 평균 30대와 비교했을 때 그리 부족한 편도 아니다. 둘이 합쳐 왠만한 대기업 직원이 받는 월급 이상을 매달 저축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개인 사업자다. 임신과 출산을 한다고 하여 커리어가 끊길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남편은 굳건하게 아이를 거부한다. 만 8년을 넘게 회사에서 다이어트를 위해 도시락을 까먹는 그의 우직함이 이럴 때는 참 아니꼽게 미덥다.
사실 이건 갑작스러운 결심까진 아니다. 우리가 결혼을 이야기하던 시점부터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함께 다니던 직장에서 인연을 맺었다. 각자 오래 만났던 연인이 있었고 헤어진 시기 역시 비스무리했다. 다시는 이런 연애를 하지 않겠다며 룰루랄라 어깨동무하며 놀다가 눈이 맞았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출산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간호학과를 나온 내가 3학년 첫 실습으로 나갔던 곳은 산부인과였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 곳에서 만났던 몇몇 보호자들은 아내보다는 태어난 아이를 챙기기 바빴다. 한 생명을 준비하면서 망가지는 여성의 신체에 대해 적나라하게 공부했던 나는 자연스레 이 과정을 겪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입덧 뿐인가? 방광염, 변비, 요통, 가려움증, 피부 변색, 임신성 치은염, 부종, 다리 경련, 발목 통증, 요실금 등 수많은 증상에 고통받는 임산부들을 수없이 보았다.)
친하게 지내던 사촌 언니들과의 대화 역시 나로 하여금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굳히기 충분했다. 형부들과의 사적인 일화를 차치하고서라도 둘 다 잘 다니던 직장을 임신 때문에 그만 두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일과 돈 욕심이 가득했던 나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기 위해 아이를 포기하겠노라 마음 먹었다.
지금의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고 그 역시 본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며, 일단 우리 둘의 삶이 중요한 것이니 그 나머지는 차차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였다. 양가 부모님께도 '지금 당장은 생각이 없다.' 정도로 정리해두었다.
이것이 나의 기억에는 '추후 결정해보자'로, 그의 기억에는 '딩크 협약'으로 남았다.
사실 나는 이 때까지만 해도 독립심이 강한 여성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 과하게 이성에게 의지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이었달까. 지금 생각해보면 배신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상처 받지 않고 싶은 마음이 방어기제로 발동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보니 걱정했던 것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점점 안정을 찾아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덕분에 주저하던 일들에 도전했고 또 좋은 결과를 내었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그와 함께하는 삶이 서로를 성장시키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런 행운이 나에게 찾아오다니! 마음 속 쌓아두었던 성벽이 하나 둘 무너졌고 자연스레 나는 다음 단계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가져도 일이 끊기지 않겠구나.' 그리고 '우리 둘을 닮은 아이는 얼마나 예쁠까.'
나와 가정을 위해 매순간 노력하는 그는 충분히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역시 아이를 위해 주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하루하루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더욱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양가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아도 충분히 우리 힘으로 한 생명 정도는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의 안정적인 생활이 거듭될수록 그는 더욱 굳건하게 아이를 거부했다. 지금의 삶이 충분히 만족스러우며 굳이 섣부르게 선택을 잘못했다가(?)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퇴근하고 아내와 술 한 잔 또는 게임 한 판 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며 이 평화를 구태여 부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좋아. 다음에 다시 이야기해보자.
라고 생각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앞서 말한 수십 번이 과장은 아니다. 나름 심리학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서 접근해봤고 매순간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는 매번 동일한 이유를 말하며 '싫다'고 일관된 의사를 내놓았고 나는 거듭된 거절에 익숙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아래의 단계를 거치며 복잡한 마음의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그걸 누구에게도 쉽사리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1. 부정 - "정말로 아이가 싫은 걸까?"
2. 자책 - "내가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까봐?"
3. 서운함 - "나만 좋자고 하는 게 아닌데."
4. 슬픔 - "정말 아이를 가지는 게 싫은 거구나."
5. 대안 모색
어느덧 5단계에 다다른 것 같다. 한동안 많이 슬펐는데 이제 조금 무뎌졌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얼마나 지치고 힘든 상황이겠는가. 나는 단순히 아이가 아닌 '지금 남편의 아이'를 원하는 것이기에 결국 지금 있지도 않은 아이의 존재는 마음 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이에 대한 고민을 동기들과의 자리에서 가볍게 토로한 적이 있다. 그 때 한 친구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일단 난자를 얼려보는 건 어때?"
그 말을 듣고 정신이 제대로 차려졌다. 내 나이 31살.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다. 누군가는 30대 후반에도 아이 잘만 낳는다더라며 여유있게 생각하라고 하지만 - 이건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을 미루고 미루다 나중에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비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그래서 그냥 딩크를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나의 의지다.
지난 1년간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그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 1년 넘게 애쓰다 뚫려버린 마음 속 이 구멍은 꽤나 오랫동안 채워지지 않겠지. 어떻게 그 허전함을 메울 수 있을 지는 지금부터 차차 고민해보기로 한다.
자, 그래서 오늘부터 나는 딩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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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8일 수요일 오전 12시 40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