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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현 Jun 20. 2024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사람-6장

6.


쌀쌀한 한기를 느낀 길버트 씨는 잠에서 깨어났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섬의 나무들 사이를 뚫고 그의 몸에 부딪치고 있었다. 길버트 씨는 덮고 있던 재킷을 들어 다시 입은 다음,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바닷가는 그의 집에서 동쪽이었고, 해는 이제 길버트 씨가 사는 아파트 쪽으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 저 해를 따라잡자.’

길버트 씨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 해를 향해서 날아갔다. 발밑으로 섬이 저 멀리 멀어져갔고, 그 다음 바다의 푸르디푸른 물결이 멀어져 갔다. 한적한 어촌의 모래사장과 얼마 안 되는 집들의 지붕이 멀어져 갔고, 나무들과 풀숲도 멀어져 갔다.

그러나 해는 벌써 서쪽으로 일찌감치 도망가 버렸고, 길버트 씨가 자기가 사는 도시 근처까지 날아왔을 때쯤에는, 벌써 어둠이 여기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발밑으로 이제 자연은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집들과 그 사이의 도로와, 그 도로 위의 자동차들이 보였다. 그리고 사람들도 보였다.

길버트 씨는 손을 들어 눈 위에 댄 다음, 여기가 어딜까 하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오른쪽에 커다란 아파트가 나타났다. 길버트 씨가 원래 살고 싶어 했던 그 아파트였다. 비싸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길버트 씨는 그쪽으로 방향을 돌려 날아갔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길버트 씨는 높다란 건물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는 아파트 단지 위로 날아가 가장 왼쪽 건물의 옥상에 착륙했다. 날아오느라 피곤했기 때문에 여기서 한숨 돌리고 싶어진 길버트 씨는 옥상의 한편에 마련되어 있던 탁자와 의자 네 개를 보았다. 그 중 한 의자에 걸터앉은 길버트 씨는 호젓한 마음으로 밤의 공기를 즐겼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달이 뜰 것이다. 길버트 씨는 달빛을 받으며, 하늘을 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빗자루만 있으면 완전히 마녀인데…….’

길버트 씨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옥상의 네 귀퉁이를 살펴보니 마침 대나무로 만들어진 빗자루가 몇 개 눈에 띄었다. 아마 옥상 청소용일 것이다. 길버트 씨는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빗자루를 골라 다리 사이에 끼워 보았다. 자신의 모양새를 보니 너무나 웃음이 나왔다. 다 큰 어른이 두 다리 사이에 대나무 빗자루를 끼고 옥상에 서 있었다.

‘이거 뭐하는 짓이람?’

그러나 하늘에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르자 길버트 씨의 마음에서 어색함은 깡그리 없어지고, 대신 그 자리에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길버트 씨는 먼저 빗자루의 성능을 시험하고자 발을 살짝 굴러보았고, 예상대로 그는 옥상의 허공에 붕 떠오를 수 있었다. 길버트 씨는 빗자루를 타고서 옥상의 난간을 따라 한 바퀴 휘익 돌아보았다. 당연히 공중에 뜬 채로.

이제 빗자루까지 준비된 길버트 씨는 두 다리로 바닥을 박찬 다음, 빗자루를 허벅지로 꼭 조였다. 그러면서 양 팔을 벌려 힘찬 날갯짓을 했다. 길버트 씨는 하늘로 솟구쳐 보름달을 향해 날아갔다. 그는 보름달을 왼쪽으로 보고 날아가다가 방향을 왼쪽으로 바꿔 보름달의 한가운데를 질러갔다. 보통의 마녀라면 빗자루를 타고 그냥 날아가야겠지만, 길버트 씨는 마녀가 아닌지라, 두 다리로 빗자루를 붙들고, 대신 두 팔로 새처럼 보름달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질러갔다.

“야! 저게 뭐야?”

“뭐? 어? 정말? 마녀다! 마녀!”

지상에서 밤 나들이를 즐기던 사람들 몇몇이 자기들 머리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지나가자 하늘을 보았고, 마침 그때 보름달을 가로질러 가던 길버트 씨를 발견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는 길버트 씨는 이번에는 반대로 보름달을 가로질러 날아갔고, 지상에서는 더 큰 소동이 일어났다.

“야! 빨리 경찰에 신고해!”

사람들은 야단법석을 떨었고, 잠시 후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 소리는 하늘에 떠 있던 길버트 씨에게도 들렸다. 아래를 내려다 본 길버트 씨는 경광등을 번쩍이면서 경찰차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았고, 보름달을 마지막으로 가로지르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쪽으로 날아갔다.

“어? 사라졌다.”

“어디 간 거야?”

경찰차에서 내린 경관들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하늘을 보았으나, 이제 그들의 눈에는 하늘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떠들어댔으나, 경관들은 어깨만 으쓱하더니, 다시 차에 타고 돌아가 버렸다. 남은 사람들은 다시 하늘을 보았고, 보름달을 보았으나, 이제 그들의 눈에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자, 다들 밤 나들이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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