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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현 Jun 24. 2024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사람-8장

8.



“이제 뛰세요. 길버트 씨.”

길버트 씨는 녹색 선에서 출발하여, 천천히 걸었다. 그 순간 삑 하는 휘슬이 울렸다.

“길버트 씨! 걷지 말고 뛰어요!”

멀론스키 씨의 호통에 길버트 씨는 다시 녹색 선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힘차게 달렸다. 그리고 하얀 선이 보이자, 다시 속력을 줄인 다음, 양 팔을 퍼덕거리면서 두 발로 땅을 찼다. 길버트 씨의 몸은 허공으로 떠올라 약 7 미터 정도 날아, 모래에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부드러운 모래에 한쪽 발이 먼저 묻힌 길버트 씨는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삑! 삑!’

멀론스키 씨는 휘슬을 연거푸 두 번 불더니, 길버트 씨를 모래에서 끄집어내었다.

“흠, 어디 보자. 7 미터라……. 그래도 기록이 이 정도면……. 그런데 길버트 씨, 자세가 전혀 안되어 있네요. 발 구름판에서 속력을 줄이면 안 됩니다. 그리고 양 팔을 몸에 붙인 다음, 공중에서 위로 올렸다가 다시 앞으로 내밀면서 몸을 앞으로 끌어당겨야 해요. 그리고 다리는 그게 뭡니까? 두 다리로 허공을 걷는 것처럼 해야지요. 내가 다시 한 번 보여드리지요.”

멀론스키 씨는 다시 한 번 시범을 보였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자세로 허공에 떠오른 다음, 모래 더미 위를 날아, 더욱 더 완벽한 자세로 모래 위에 떨어졌다.

길버트 씨는 멀론스키 씨의 자세를 흉내 내어, 발 구름판에서 뛰어 올랐고, 두 다리로 허공을 차며, 두 손으로는 몸을 앞으로 끌어당기는 시늉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처음보다 저조했다.

“6 미터 50 이라……. 길버트 씨, 아마 처음이라 당황한 것 같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다시 해 봅시다.”

길버트 씨는 땀에 흠뻑 젖은 런닝복을 벗어버리자, 홀가분한 심정이 들었다.

멀론스키 씨와 헤어져 집으로 오는 내내, 길버트 씨의 어깨는 무겁기만 했다.

‘왜 그 사람은 나에게 호통만 쳤을까?’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길버트 씨는 아파트 정문에 도착하자, 고개를 하늘로 들어 자신의 집 8 층을 바라보았다. 길버트 씨는 가볍게 땅을 발로 찼고, 그의 몸은 공중에 살짝 떠올랐다. 그 다음 길버트 씨는 새처럼 두 팔을 저으며, 하늘로 날아올라, 8 층 창문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닫지 않고 나온 그 창문으로.

다음 날부터 길버트 씨의 훈련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회사에서도 그에게 금메달을 기대하며, 시합 때까지 무기한 휴가를 주었다. 길버트 씨는 아침부터 운동장에 나가 멀론스키 씨의 호통을 들으며 멀리뛰기 훈련을 했다.

“길버트 씨, 아직도 자세가……. 다리를 가위처럼 벌렸다가 다시…….”

“길버트 씨, 양 팔을 퍼덕거리지 말고…….”

“길버트 씨, 발 구름판까지는 죽을 힘을 다해서…….”

하루의 훈련이 끝나면 길버트 씨의 몸은 데쳐놓은 채소처럼 축 늘어져 버렸고, 그런 길버트 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멀론스키 씨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길버트 씨, 훈련은 힘들어요. 나도 다 그렇게 했어요. 자 나를 보세요. 첫째도 자세, 둘째도 자세. 자세가 좋아야, 멀리 날 수 있어요. 알겠습니까? 길버트 씨.”

훈련이 끝나고 아파트로 와서, 비록 지치고 땀에 전 몸이지만, 두 다리로 땅을 차고, 양 팔을 우아하게 흔들면서 8 층의 자기 방으로 날아가는 것만이 길버트 씨의 유일한 낙이 되었다. 이제 휴일에도 피곤이 쌓여서 바닷가에 가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길버트 씨의 훈련 기록은 들쭉날쭉 했으며, 그럴 때마다 멀론스키 씨의 호통 소리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갔고, 길버트 씨의 마음은 점점 더 위축되기만 했다. 어느 힘든 훈련이 끝난 날, 길버트 씨는 아파트 뒤 오솔길에서 8 층의 자기 방을 보며 날아올랐으나, 그만 6 층 정도에서 비척거리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다시 시도해 보았으나, 역시 6 층까지밖에 날아오르지 못하자, 길버트 씨는 다른 사람 집 베란다에 살짝 매달려 숨을 고른 다음 나머지 2 층을 날아올라갔다. 그 다음 간신히 8 층의 창문을 통해서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멀론스키 씨는 길버트 씨에게 여전히 자세에 대한 교정을 요구했고, 길버트 씨는 자기가 하늘을 날던 방식대로 하고 싶었으나, 멀론스키 씨에게는 이것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훈련이 거듭될수록 길버트 씨의 몸은 점점 더 멀론스키 씨의 자세를 닮아갔고, 그럴수록 아파트 8 층이 아니라 이제는 4 층까지도 날아올라가기가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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