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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현 Nov 04. 2024

닉을 찾아서(Finding Nik)-29

53.


“우리가 싸우는 방법이요? 그건 단순해요. 지금 여기는 자동차들도 많이 있더군요. 그런 것이 있으면 우리도 아마 그걸 타고 싸우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말 그대로 우리는 몸으로 싸웁니다. 아, 물론 무기도 들지요. 어찌 맨손으로 싸울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는 무너진 건물들 천지입니다. 건물 잔해 속에는 녹이 슬대로 슨 철근들이 많이 있답니다. 우리는 그걸 모아서 사용합니다. 먼저 녹을 다 벗겨내고 다듬지요. 칼을 만드는 거예요. 한쪽을 날카롭게 갈아서 칼날을 만들고, 손잡이 부분은 나무껍질 같은 걸로 칭칭 감아서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칼의 겉에는 녹을 방지하기 위하여 동물의 기름을 칠합니다. 어떤 금속을 주워서 만드느냐에 따라 갖가지 모양의 칼이 만들어집니다. 각자 자신에게 맞도록 길이도 적당한 걸로 사용합니다. 물론 운이 좋으면 진짜 칼을 구할 수도 있답니다. 이걸로 찌르기도 하고 베기도 하고 그러지요. 방어를 위해서는 방패를 사용합니다. 금속은 무거우니까 보통 나무로 만듭니다. 얇은 나무판을 여러 개 만들어 넓게 붙이고, 이것을 두어 층 쌓으면 됩니다. 얇고 넓은 금속판을 그대로 사용하기는 사람도 있기는 해요. 거기에서는 땅에서 주운 것들로 이것저것 만들어서 사용합니다. 옷도 주워서 입기도 하고,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 입기도 합니다. 식물도 이용합니다. 여기는 좋은 것들이 너무나 많아요. 건물들도 높고 크고. 이런 건물들이 전부 무너져 버렸습니다.”


센트럴 파크의 어느 나무 아래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삼삼오오 모여서 추위를 피하고 있던 노숙자들도 하나 둘씩 잠이 들기 시작했다.


“전투는 치열합니다.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상대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지요. 포로를 잡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 먹기도 힘든데 포로까지 먹일 여유는 없으니까요. 부상자는 그냥 버려두고 갑니다. 그러면 나중에 적들이 데리러 와요.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그때까지 부상자가 살아 있다면요. 실제로 전투 중에 부상자를 데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물러갈 때까지 싸우니까요. 칼로 찌르고 방패로 막고, 쓰러진 적을 다시 찌르고, 내가 쓰러지면 상대의 발을 걸고, 다시 일어나고 그런 식입니다. 부상을 당하면 어떻게 하냐고요? 스스로 우리 쪽 후방으로 기어서 가던지 해야 합니다. 전투 중에 동료에게 신세를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전투가 끝나면, 우리 편이 이겼다는 전제 하에, 부상자들을 데리고 병영으로 갑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상대편 부상자들은 그냥 두고 갑니다. 어쩔 수 없어요. 너무하다고요? 다시 말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줄리어스의 이야기를 호기심 있게 듣고 있던 노숙자, 머리가 드문드문 하얀 사람이 줄리어스를 찬찬히 보더니 말을 꺼냈다.

“당신은 말을 참 재미있게 합니다. 그런 걸 어디에서 배웠습니까?”

“이런 이야기들이요?”

줄리어스가 대꾸를 하자,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 내용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꾸며내는 방법 말입니다. 혹시 당신 작가입니까? 여기 센트럴 파크에 와서 노숙자들의 어려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한 사전 조사라도 하는 겁니까?”

“작가가 어떤 사람이지요?”

줄리어스는 그 사람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은 바로 대답을 하였다.

“당신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지요. 그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내면, 우리가 돈을 내고 그걸 산답니다.”

줄리어스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말을 하였다.

“작가라....... 그런 사람들도 있군요.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무언가를 그 사람에게 주지는 않아요.”

그 사람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같이 웃었다.

“당신, 정말 미래에서 온 사람 같아요. 정말 재미있습니다. 내가 당신 이야기를 써 볼까요?”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줄리어스가 묻자, 그 사람은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내가 당신 이야기를 써서 그걸 책으로 냈는데, 사람들이 너도나도 재미있어 해서, 돈을 내고 내 책을 산다면, 나는 여기 공원을 떠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사히 일을 끝낸다면, 그것도 가능할 겁니다.”



54.


아침이 밝자 줄리어스는 센트럴 파크를 떠났다. 그는 계속 남쪽으로 걸어서 45 번 스트리트를 지나고 타임스 스퀘어도 지났다. 그는 좌우에 있는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38 번 스트리트까지 왔을 때 줄리어스는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것을 보았다. 앞에 두 명 그리고 뒤에 두 명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앞서 오던 두 명이 줄리어스를 에워싸더니, 그 중 한 명이 말을 붙였다.

“헤이, 어디를 찾으시나?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데.”

젊은이들이었다.

“실은 이걸 팔고 싶은데.......”

줄리어스는 바지 주머니에서 금을 꺼내 보였다. 그들은 노랗게 반짝이는 것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뒤쪽에서 오던 또 다른 두 명을 쳐다보았다.

“야아, 이걸 팔고 싶다? 그럼 보석점에 가야지.”

“베니, 너 이모부가 메이시스(Macy’s; 메이시스 기업이 경영하는 미국의 백화점 체인으로 1858년 뉴욕시에 세워졌다. 2009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 백화점이었으나, 한국의 부산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에서 보석 가게 한다며?”

네 명의 젊은이들은 자기들끼리 말을 해댔다.

“메이시스에 가면 없는 게 없지. 따라온다면 우리가 안내를 해 줄 수 있는데.......”

줄리어스는 처음 말을 붙였던 두 명 사이에 끼어서 6 번 애비뉴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뒤에서 다른 두 명이 따라왔다. 줄리어스의 옆에서 걷던 두 명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줄리어스도 따라 들어갔다. 골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쪽 끝까지 대략 사오십 미터 정도였다. 출구에 환한 대로가 보였다.

골목 중간쯤에서, 처음 말을 붙였던 젊은이가 나란히 서 있는 두 건물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줄리어스를 밀었다. 머리를 짧게 깍은 녀석은 운을 뗐다.

“길게 말하고 싶지.......”

"억!"

줄리어스는 상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녀석의 배를 걷어찼다. 배를 채인 녀석은 길에 주저앉아 캑캑댔다. 줄리어스는 재킷 안쪽에 오른손을 넣었다. 칼이 만져졌다. 같이 오던 녀석은 쓰러진 녀석을 안았다. 줄리어스는 칼날이 밑으로 향하도록 손잡이를 쥐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두 명 중 하나가 줄리어스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줄리어스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줄리어스는 칼을 꺼내들고, 왼손을 들면서 뒤로 물러섰다. 상대는 가드를 올렸다. 줄리어스는 칼을 왼손으로 옮겼다. 오른손을 앞으로 밀면서 상대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몸을 숙이면서 칼로 녀석의 왼쪽 허벅지 안쪽을 찔렀다.

"으악!"

좁은 골목에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신의 몸에 기대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상대를 줄리어스는 확 밀었다. 밀린 녀석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다시 비명을 질러댔다. 허벅지에 칼이 꽂혀 있는 것을 본 녀석은 기절해 버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이 기절한 동료 옆으로 다가왔다. 줄리어스와 쓰러진 친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방금 줄리어스 일행이 들어온 방향 쪽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네 명의 남자들은 서로 노려보았다. 줄리어스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는 동료를 안고 있는 두 명을 돌아보았다. 둘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 했다.


6 번 애비뉴로 빠져 나온 줄리어스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곧장 내려갔다. 그는 네 블록을 거침없이 달려갔다.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려댔다. 34 번 스트리트까지 갔다. 헤럴드 스퀘어.

메이시스 백화점이 보인다. 그는 재빨리 백화점 앞으로 갔다. 건물 정문으로 쑥 들어갔다. 뒤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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