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
아파트 정문에서 1 톤짜리 택배 트럭이 나오더니, 방향을 돌려 길가에 섰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최준영이 운전석에서 나왔다.
택배 기사.
준영은 뒤로 돌아, 다시 운전석 안으로 몸을 밀어 넣더니, 기어 박스 옆에서 뭔가를 꺼냈다. 앞으로 숙인 그의 등에는 [안던 택배]라는 로고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준영은 트럭 안에서 꺼낸 폰을 손가락으로 터치했다.
“음, 어디 보자. 여기서 멀지는 않구나. 성북동이라…….”
준영은 트럭 짐칸에 기댔다. 모자를 벗은 다음,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준영은 아파트 앞 도로를 바라보았다.
차들이 많이 지나가고 있었고, 차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초여름의 해가 쨍쨍 내리쬐었다.
“휴, 덥구나.”
준영은 다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딩동!
“누구세요?”
“예. 택배 왔습니다.”
띠 하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대문이 빠끔히 열렸다. 준영은 자그마한 상자를 품에 안고, 대문을 어깨로 밀었다. 열린 대문 틈으로 준영의 눈앞에 계단이 보였다. 그리고 계단 너머에는 녹색 잔디가 쫙 깔려 있는 운치있는 정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정원 한 켠, 다른 집들과 경계를 이루는 담 옆으로는 소나무 등, 준영은 소나무 밖에는 이름을 몰랐으니까, 서로 다르게 생긴 여러 나무들이 하늘로 쭉쭉 뻗어 있었다.
‘좋은 집이다.’
준영이 택배 상자를 들고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가자, 멋들어진 정원 뒷편에서 웬 아줌마가 달려 나오고 있었다. 분명 가정부일 거라고 생각을 하며, 준영은 잔디 위에 듬성듬성 놓여져 있는 돌판, 이걸 딛고 들어오라는 것이겠지, 돌판을 밟으며 웅장한 집의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준영이 잔디밭 가운데쯤 갔을 때, 준영의 앞까지 온 가정부는 준영이 내미는 택배를 얼른 받아들었다.
“여기 사인을 해 주세요.”
가정부는 준영이 내민 단말기에 사인을 하였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준영의 말에 가정부는 얼굴을 들었고, 준영의 얼굴을 보았다. 준영은 다음 택배 배달 장소를 보느라 단말기에 눈길이 가 있었으나, 가정부는 안 그랬다. 그녀는 준영의 얼굴을 다시 자세히 보더니, 그만 눈이 점점 커지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가 자기를 뚫어지게 보면 그 기운을 느끼는 법이다. 준영은 가정부의 눈길을 눈치채고 그녀의 눈망울을 쳐다보았다. 가정부의 눈 속에서 놀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눈이 화등잔만해진 통통한 몸매의 그녀는 택배 상자를 꼭 껴안은 채 슬슬 준영에게서 뒷걸음질을 쳤다.
“사모님, 사모님…….”
가정부는 뒷말을 잇지 못한 채 집의 현관으로 달려갔다. 그때 현관문이 쓰윽 열리면서 잘 차려입은 부잣집 사모님이 나왔다.
“허 실장, 왜 그러나?”
“사모님, 저기, 저기, 사모님…….”
가정부는 손가락으로 준영을 가리키면서 연신 입술만 핥았다.
정원 가운데, 돌판 위에 서 있던 준영은 현관문 앞의 두 여인네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대화는 거리가 멀어서인지, 준영에게 들리지는 않았다.
“준영아…….”
준영을 본 여인은 입속으로 자그마하게 이름을 되뇌었다. 그 다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비싸 보이는 옷이 여인의 몸에 깔리며 쭈그러졌다.
“사모님!”
식사 및 주방을 제외한 다른 집안 일을 담당하고 있는 가정부, 허 실장은 깜짝 놀라며 얼른 그녀를 붙잡았다.
‘아줌마가 어디 아픈가?’
이제 할 일은 마친 준영은 모자를 고쳐 쓴 다음, 뒤돌아서 계단을 내려갔다. 대문이 열린 채 그대로 있었다.
* * *
최종환은 송순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고, 바로 순화가 전화를 받았다.
“나요. 그래, 입금 확인했어?”
“예. 들어왔어요.”
“그래……. 벌써 이십 년도 넘었는데……. 참 대단한 사람이야.”
“그렇지요?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럼, 끊어.”
“여보, 구청에는 별 일 없어요?”
“별 일 없어. 일이 있을 턱이 없지.”
종환은 전화를 끊은 후, 발길을 돌려, 마포구청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 못 미쳐 자그마한 골목에 정장을 입은 남자들 서넛이 모여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어이, 빨리들 피고 들어와.”
“예.”
젊은이들은 얼른 담배를 등 뒤로 숨기며 종환에게 인사를 했다.
* * *
“본부장님, 북해산 브랜트유 건입니다.”
깔끔하게 차려 입은 남자가 책상에 앉아 있는 손혜정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어떻게 처리를 할까요?”
혜정은 김성식 부장의 질문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아버님이, 아니 회장님이 보류해 두라고 해서요.”
“아, 그렇군요.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김성식 부장이 등을 돌리고 문으로 향하자, 혜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배웅했다.
“부장님, 감사합니다.”
혜정이 앉아 있던 책상 위에 ‘태화 투자 신탁 회사 선물 파트 본부장 손혜정’ 이라는 명판이 보였다.
* * *
6 월치고는 꽤 더웠던 하루가 지나가려 하고 있다.
성북동의 저택 거실에서 이현석은 아까부터 박미현을 째려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째려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 분명 아직 치매가 올 나이도 아니고……. 미친 것도 아닐 텐데…….’
현석은 미현에게 조근조근히 다시 말을 시켰다.
“자, 여보, 이제 처음부터 천천히,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말을 해 봐.”
소파에 깊숙이 앉아 있던 미현은 팔짱을 풀었다.
“당신은 내가 한 말을 전혀 이해를 못하겠어요? 내가 오늘 준영이를 봤다니까요.”
현석의 눈이 이상하게 변했다.
“당신, 제 정신이 아니군.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미현은 한숨을 쉬었다.
“자, 들어 봐요. 오늘 택배가 왔는데……. 그러니까 택배가 왔는데……. 글쎄, 택배 기사가 준영인 거에요.”
현석은 소파에 기댔다. 천장을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내려 미현을 보았다.
“김 실장! 김 실장!”
주방에서 중년의 여인이 허둥지둥 뛰어왔다.
“사장님, 왜 그러세요?”
“김 실장, 나 술 좀 줘.”
주방을 담당하고 있는 가정부, 집에서는 다들 김 실장이라고 부르는 여자, 김 실장은 다시 주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현석은 김 실장의 흔들리는 엉덩이를 보더니, 얼굴을 미현에게로 홱 돌렸다.
“그러니까, 음, 당신 말은, 우리가 입양 보낸 준영이 말하는 거지? 그렇지?”
미현을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여보, 현석 씨. 세상 일이 그렇잖아요. 그때 기억나요?”
* * *
온통 하얗게 칠해진 방 안. 한쪽에 침대가 있고 거기에 젊은 여자가 누워 있다. 아래는 다 벗었고, 두 다리는 버팀대에 올라가 벌어져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하얀 가운을 걸친 젊은 여자 두 명이 서 있었다.
“힘을 주세요. 어머니, 자, 힘을 주세요.”
“으으으…….”
미현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 몸에 힘을 주었다. 온 몸이 찢어지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자, 조금만, 조금만 더……. 이제……. 이제…….”
순간 미현의 온 몸을 쾌감이 휩쓸고 지나갔다. 자신의 몸에서 무엇인가가 쑥 하고 빠져나가는 그 느낌. 그녀의 몸이 들썩거렸다. 다리 사이에서 시작된 흥분은 금방 머리 끝까지 솟구쳤다. 미현의 두 눈에서 그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미현의 입이 벌어지며 한숨이 새어 나오더니, 곧 그녀의 몸이 침대 위로 축 늘어졌다.
“응애, 응애, 응애.”
미현은 아이를 낳은 것이다. 새 생명을 이 세상에 내어 놓은 것이다. 남자는 못 하는, 여자만 할 수 있는, 아니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을 방금 해 낸 것이다. 미현의 얼굴에는 그 동안의 모든 힘듦과 방금 전의 고통까지 전부 이겨내고도 남을 그런 미소가 피어났다.
의사는 갓난아기를 받쳐 들어, 미현에게 잠깐 보여준 다음, 뒤에 서 있던 간호사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아기를 받은 간호사는 두 손으로 받쳐들었고,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간호사가 아이의 입에 쪽쪽이를 넣더니, 작고 귀여운 입속에 남아 있던 양수를 빼냈다. 그런 다음 거즈로 아이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사는 일어서지 않고 계속해서 미현의 몸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다시 미현의 몸이 휘어졌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까보다는 고통이 덜 심한 것 같았다.
“응애, 응애.”
의사는 다시 아이를 받았다.
“축하합니다. 아들 쌍둥이군요.”
의사는 두 번째 아이를 간호사의 손에 들려주었다.
* * *
현석은 투명한 크리스털 잔을 기울여 황금빛 액체를 입으로 부어넣었다. 지난 번 파리 여행에서 미현이 하도 우겨서 억지로 산 바로 그 잔이었다. 그때는 비싸다고 투덜댔던 현석이었으나, 지금은 그런대로 마음에 들어서, 가끔씩 여기에다 위스키를 마시곤 했다.
위스키를 목구멍에 들이부은 현석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크……. 이놈의 술은 아무리 먹어도 적응이 안 돼.”
미현은 자기 앞에 놓여 있던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표정이다.
현석은 미현을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이제 아무 말도 하지 마. 다 우리의 죄야. 그게 다 돈이 없던 우리의 죄라니까.”
미현은 위스키를 죽 들이켰다. 뜨거운 액체가 그녀의 목을 타고 넘어가자 몸서리를 쳤다.
“꺼억, 여보, 현석 씨. 이제 어떻게……. 우리 준영이, 어떡해…….”
미현은 뒷말을 잇지 못했고, 그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현석은 벌떡 소파에서 일어나 미현의 옆으로 가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왼팔로 미현의, 이제는 상당히 통통해져버린 어깨를 감싸 앉았다.
“어쩔 수가 없었어. 그때는……. 그건 내 잘못도 아니었고, 더구나 당신 잘못은 더더욱 아니야. 다 그 빌어먹을 돈 때문이었지.”
“흑흑흑.”
미현은 현석의 품에 안겨서 흐느꼈다.
“그래도 이제는 우리가 벌만큼 벌었잖아. 준영이를 보고 싶어. 여보!”
미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실의 중문이 살짝 열렸다.
현석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윤영이구나. 어서 오렴. 그런데 너 요새 너무 늦게 다닌다?”
이윤영은 혀를 날름했다.
“치이……. 아빠도, 참. 흐흐……. 분위기 좋아요. 네, 계속 그렇게 하세요. 잘하면 스무 살도 더 차이 나는 동생 보겠습니다요. 흐흐흐.”
현석은 윤영의 말에 당황하며, 자신의 품에 안겨 있던 미현을 얼른 밀어냈다.
미현은 윤영을 보더니 현석에게서 떨어져 앉았다. 그리고 헛헛 하고 헛기침을 해댔다.
“너 언제 왔냐?”
미현은 머리를 매만지며 딸에게 물었다.
“방금 왔어요. 설마 두 분의 비밀 얘기를 들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난 하늘에 맹세코 아무 것도 못 들었답니다.”
윤영은 나풀거리는 파란색 치마를 흔들며 2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걸어갔다.
그런 그녀를 부부는 지켜보았다.
계단 중간쯤에서 윤영은 멈추더니, 아빠와 엄마를 보면서 입을 떼었다.
“나, 내일이나 모레 택배 올 것 있어, 좀 받아 줘. 아주 아주 중요한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