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Gold)과 피(Blood)-7

by 윤금현

7 장.



“3 년 만이에요.”

“그래. 정말 딱 3 년 만이야.”

종환은 허허허 웃으며 너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자 거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가 즐거워 하고 있다. 드디어 종환과 순화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축하해주러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일가 친척들.

“얼마나 좋아?”

거실 바닥에는 준영이, 이제는 세 살이 된 준영이 힘차게 걸어다닌다.

“준영이도 좋겠네? 동생 생겨서.”

어린 준영이는 무슨 말이지도 못 알아듣지만, 그래도 얼굴에 웃음이 한 가득이다.

“아빠, 아빠. 엄마, 엄마.”

이제 말도 곧잘하는 준영이가 입을 열자, 모여 앉은 사람들이 다들 웃어댔다.

“이거 좀 먹어 봐.”

다들 과자며 과일이며 음료수를 권한다.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을까?

종환은 지난 2 년간의 시간이 새삼스럽게 회상이 되었다.

준영이를 처음으로 안아본 날. 그날 이후로 가족의 삶은 달라졌고, 순화 역시 더욱 행복해했다. 그리고 드디어, 딸이 생긴 것이다.

순화는 이제 석 달 열흘, 그러니까 백 일이 지난 갓난아기를 안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아기를 싼 포대기를 열어 젖혀 모두에게 아기를 보이고 싶었으나, 혹시라도 감기라도 옮길까봐 조심하고 있었다. 백 일 동안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관습에 따라, 그동안 참고 참았었다. 곰과 호랑이도 백 일 동안 동굴에서 살았다고 하는 전설을 일부러 꺼낼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순화는 그 동안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하는 심정으로 이 새 생명을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

“아가, 이제 그만 좀 쉬려무나.”

종환의 아버지이자 순화의 시아버지인 최청식은 연신 벙글벙글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서 시어머니 유금자도 역시 기쁜 표정이다. 아니, 그냥 기쁜 마음이 아니라 세상을 다 얻은 심정일 것이다. 어느 집이든 아기가 태어나면 다 똑같으니까.

“이제 내가 좀 안아보자.”

시어머니가 일어나 순화에게 오더니 아기를 달라고 했다.

순화는 아기 포대기를 잘 여민 다음, 금자에게 아기를 안겨 주었다.

“까꿍! 까꿍!”

“아이, 어머니, 그런다고 아기가 알아들어요?”

“얘 좀 봐라. 사람이 얼마나 똑똑한대? 이리 말해도 다 알아들어. 애들은 그래.”

금자가 순화에게 핀잔을 주었다.

“어이, 애비도 술 한 잔 하게.”

최청식이 아들 최종환에게 술을 권했다. 원래 본인이야 술을 좋아하지만, 아들 종환은 그렇게 술을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종환도 마음 편하게 술잔을 아버지에게서 받았다.

“우리야, 원래 소맥으로 마셔야지. 안 그러냐?”

청식은 커다란 유리 글라스에 맥주를 삼분의 이쯤 따른 다음, 거기에다가 소주를 병째 들고 들이부었다.

“아버지, 뭐하시는 겁니까?”

종환이 깜짝 놀라면서, 청식의 손을 제지했으나, 청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 야, 이렇게 먹어야 짭짤하게 맛있는 법이다. 너는 술을 못하니 그런 멋도 없지?”

청식은 소맥이라기보다, 거의 맥소롱이 되어버린 술잔을 아들에게서 뺐더니, 먼저 한 잔 들이켰다.

“크어!”

잔을 탁하고 내려놓더니, 혀가 살짝 꼬이는지 인상을 써대는 청식이었다.

“하하, 아버지도 참……. 그러게 왜 그렇게 마셔요?”

청식은 유리 글라스를 손으로 쓱 하고 한 번 닦더니, 아들에게 내밀었다.

“자, 받어.”

종환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아버지에게서 잔을 받아들었다.


* * *


“휴, 힘들다. 당신도 이제 좀 쉬지 그래?”

현석이 미현에게 조용히 말을 했다.

그러나 미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좁은 거실을 걸어다니고 있는 진영만 보고 있었다.

현석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앉은뱅이 밥상 위의 캔맥주를 하나 들더니, 칙 소리와 함께 맥주를 땄다.

입에 댄 맥주를 꿀꺽꿀꺽 마셨다.

“여기 와서 앉아 봐.”

“진영아! 이리 온.”

엄마의 말을 들은 진영이 아장아장거리면서 미현에게 다가오자, 미현은 얼른 진영을 안아 올렸다.

“이제 49 제만 치르면 되네.”

현석의 말을 들은 미현의 눈에서 눈물이 뚝하고 떨어졌다.

“미현아, 나는 아주 어릴 때 겪어서, 그냥 넘어간 면도 있는데……. 너는 힘들지?”

현석은 미현의 맘을 달래주고 싶었다. 결국 미현의 어머니, 현석의 장모인, 나현주가 세상을 떠났다.

어디에선가는 새 생명이 태어나고, 또 어디에선가는 생명이 사라져 간다.

“현석 씨, 준영이도 어디서 잘 크고 있겠지?’

미현의 말에 현석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래. 그럴 거야.”

이 말을 끝으로 현석은 입을 닫아버렸다. 그 얘기는 다시 하고 싶지 않은 현석의 아픔이었다. 그러나 미현은 아직까지도, 3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다.

‘그래, 절대 못 잊겠지. 나도 그래.’

그러나 현석은 준영이 이야기를, 아니 준영이라는 이름 자체를 절대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지난 3 년 동안 죽어라고 일만 했다. 3 년 전에 받았던 하얀 봉투 덕분에, 그래도 자그마한 월세집을 얻을 수가 있었는데, 아직도 그 월세집에 살고 있다.

‘로또라도 사야 하나?’

현석은 자신의 헛된 망상에 그만 스스로에게 실망을 하고 만다. 항상 돈, 돈, 돈. 미현도 힘들기는 매한가지겠지만, 그래도 미현은 돈 이야기는 안 했다. 현석을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현석 씨, 내일 진영이, 병원에 가 봐야 하는데.”

“그래?”

“만 원만 줘.”

현석은 미현이 지갑에 만 원짜리 한 장도 없이 지낸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때 준 돈은 어떻게 했어?”

현석은 미현을 못 믿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궁금해졌다.

미현은 이제야 빙그레 웃으며 말을 했다.

“우리, 전세로 옮겨 가야지. 나 저금 하고 있어.”

현석의 가슴이 찡해졌다. 찬찬히 미현을 보니, 역시나 다 낡아빠진 옷을 걸치고 있었다.

‘꾸미면 이쁠 텐데…….’

미현이 진영을 다시 안아 올리자, 미현의 다리가 벌어지며, 속옷이 현석의 눈에 보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얀색이든 분홍색이든 여자 속옷이 보여야 당연하겠지만, 미현의 두 다리 사이에는 현석의 속옷, 지난 번에 버리려고 내놓은, 네모난 회색 줄무늬의 남자 트렁트가 보였다.

‘자기 속옷도 안 사는구나.’

현석은 맥주캔을 입에 대고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이리 줘. 내가 진영이 재울께.”

현석은 진영을 안으며, 미현에게 살짝 눈웃음을 쳤다. 그 의미를 알아챈 미현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 * *


“너는 뭐 마실래?”

혜정이 병승에게 말하자, 병승은, “나는 그냥 커피 마실래.” 하고 말했다.

혜정은 손을 들어 웨이트리스를 불렀다.

“바닐라 라떼 하나, 그리고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예.”

호텔 커피숍의 여직원이 친절하게 대답하자, 혜정은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누나는 진영이 형이랑 결혼할 거야?”

“…….”

“안 할 거야?”

“병승아, 그 질문에 대해서 정확한 답을 원한다면, 나는 예스다.”

병승의 눈에 놀라움이 피어났다.

“오! 그래! 정말 누나는 대단한 사람이야. 사랑도 없이 결혼을 한다니…….”

음료를 들고 직원이 와서 서빙을 하자,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멈췄다.

두 잔의 커피가 각자의 앞에 놓이자, 병승은 커피의 향을 살짝 맡았고, 혜정은 그런 병승을 보기만 했다. 병승은 이런 사소한 일에도 예술가적인 기질을 보여주었으나, 무슨 일을 하던지 목적 지향적인 혜정은 커피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랬으니 커피향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병승아, 너는 그림이 좋지?”

병승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잔을 내려놓았다.

“누나는 그럼 인생에서 뭐가 중요해?”

“너, 진짜 알고 싶냐?”

병승은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혜정을 바라보았고, 이번에는 혜정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말이야. 행복하고 싶다. 나의 행복.”

“뭐?”

뜻밖의 대답에 병승은 깜짝 놀랐다.

“누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병승아, 너, 행복이 뭔지 아니?”

병승은 고개를 모로 저었다.


* * *


“대체 왜 회사는 안 나오는데? 뭐라 말 좀 해봐. 이 바보 오빠야!”

선경의 화난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선경아, 그게 말이지…….”

“지금 당장 출근하던지, 아니면 나한테 내가 납득이 가도록 설명을 해!”

“선경아, 너 지금 어디냐?”

“왜? 이리 오게?”

준영은 참으로 난감하였다. 어제 진영이와 새벽까지 술을 마셔댔더니, 아주 몸이 완전히 축 늘어져 버렸다. 머리도 지끈지끈거리고, 뱃속도 메슥메슥거렸다. 진영이가 자기 집에 가자고 하는 것을 끝까지 거절하고, 혼자 사는 자취방으로 온 게 아마 새벽 다섯 시나 되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여덟 시. 택배 회사에는 출근도 안 했고, 그러자 당장에 선경의 전화가 날아왔다.

“대체 어쩌자고 그래? 내 얼굴은 뭐가 되고? 이 오빠야!”

준영은 아무 말도 없이, 일단 방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켓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인 다음, 한 모금 빨아대자 그제야 눈이 제대로 떠졌다.

“어쭈! 지금 담배 펴?”

“선경아, 진짜로 미안하다. 진짜로…….”

“그래? 그럼 지금이라도 출근해!”

“선경아, 내가 납득이 되도록 설명을 할께. 이따 저녁에 만나자.”

일단 선경이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준영은 저녁에 진영이와의 약속이 있었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안돼. 지금 당장 말해 !”

‘후우’

준영은 이제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말해 버리자.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텐데……. 빠르냐 늦느냐 그것 뿐.

“선경아, 잘 들어.”

“그래! 귀를 활짝 열고 듣고 있다! 말해!”

“나, 진영이 만났다.”

전화기 저편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 다음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뭔가 풀이 죽은 선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영이가 누군데?”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준영은 선경의 목소리에서 미묘한 떨림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진영이가 누구야?”

아까보다는 진정이 된 목소리, 그러나 여전히 떨림은 준영에게 전달되어 왔다.

“동생.”

‘딸깍’

그걸로 끝이었다. 선경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

준영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선경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