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Gold)과 피(Blood)-8

by 윤금현

8 장.



“형,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

진영이 재털이에 담배재를 털면서 말을 했다.

준영은 연기를 훅 하고 뿜어내면서, 진영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보면 볼수록 자신하고 똑같다. 진짜 거울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일란성 쌍둥이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잠기면서, 준영은 옛날 생각이 났다.


* * *


“오빠, 이제 어떡하려고 해? 학교도 그만 두고…….”

준영은 선경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 선경이도 중학교 2 학년이다. 제법 여자 티가 났다.

“상관 없어. 나는 이 세상을 혼자서 개척할 거야. 내 의지로 태어나지도 않았고, 내 의지로 부모를 택하지도 않았어.”

“오빠, 그건 너무 심하다.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그리고 우리 집이 어때서?”

준영은 다시 선경의 손을 더욱 꼭 쥐었다. 선경도 준영의 손을 꼭 쥐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엄마 아빠는 참 좋으신 분들이야. 난 후회 안 해.”

“오빠, 그러면 우리 헤어지는 거야?”

준영은 선경의 손을 놓고 나서, 이번에는 선경의 두 눈을 들여다 보았다. 참 맑은 눈이었다.

“아니. 선경이가 원하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 안 헤어져.”

선경은 준영의 팔짱을 끼며 그에게 몸을 기대왔다.

“여, 그림 좋다? 어린 새끼들이 잘 한다.”

갑자기 들려온 험상궂은 목소리에 선경이 화들짝 놀라며 준영에게서 몸을 떼었다.

준영은 벌떡 일어나서, 옆을 보았다. 척 보아도 스물 초반으로 보이는, 동네 양아치 분위기를 폴폴 풍기는 젊은 남자들 두 명이 담배를 꼬나물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준영은 아무 말도 없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야, 너, 뭐냐? 이 새끼가…….”

그러나 말을 꺼낸 남자는 계속 말을 잇지 못하고, 억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준영이 아랫배를 발로 걷어차 버린 것이다. 친구가 주저앉자, 옆에 있던 또 다른 남자는 두 손을 올렸다가 준영에게 덤벼들었다. 준영은 옆으로 주먹을 흘려 보낸 다음, 안으로 파고 들며 턱에 왼손 한 방을 먹였다. 덜컥 소리와 함께 상대의 얼굴이 돌아갔다.

턱을 맞으면 머리가 돌아가고, 그러면 뇌가 흔들린다. 순간적으로 눈 앞이 안 보일 수도 있다.

준영은 바로 오른손으로 어퍼컷을 날렸다. 정통으로 다시 아래턱에 명중했고, 상대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준영이 옆을 보니, 배를 걷어차인 남자가 이제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준영은 그 남자에게로 다가가 옆차기로 얼굴을 차 버렸다. 허공에 피가 터지며, 그 남자는 쭉 뻗어 버렸다. 어쩌면 그에게는 그게 다행이었는지도 몰랐다. 준영은 뒤로 넘어지기는 했으나, 아직 정신이 있는 남자에게로 다시 다가갔다. 준영이 다가오자 남자는 엉덩이를 길바닥에 댄 채, 슬슬 뒤로 물러났다. 준영의 눈에 분노가 솟았다. 준영은 살짝 몸을 띄우면서 그 남자의 배를 왼발로 밟았다. 비명 소리가 터졌다. 준영은 왼발로 배를 밟은 상태 그래도 오른발로 얼굴을 찼다. 그걸로 끝이 났다.

준영이 뒤를 보자 선경이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 * *


“형, 그래서?”

“그때가 막 퇴학당하던 때였는데. 그 일을 계기로 누가 나를 찾아왔어.”

진영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서 준영을 쳐다보았다.

“마셔. 마시면서 얘기 해.”

준영은 마지못해 유리컵을 들었다. 그러나 얼른 마시지는 않았다.

“왜? 술 줄까?”

“그래라. 차라리 그게 낫겠다.”

“오케이!”

진영은 깨끗하게 정리된 주방으로 가더니, 문짝이 네 개나 되는 냉장고를 열었다.

“뭐 줄까? 양주? 맥주? 소주? 아니면 막걸리? 아무 거나 골라.”

준영은 수다스러운 진영을 향해서 웃어보였다.

“야, 그냥 너 마시고 싶은 걸로 골라.”

진영은 맥주 두 캔을 꺼내더니, 시원스런 몸짓으로 뚜껑을 땄다. 칙 소리와 함께 검은 빛이 감도는 액체가 살짝 올라왔다. 진영은 한 손에 하나씩 맥주를 들고 오더니, 준영에게 한 개를 내밀었다.

“그래서?”

“찾아온 사람들은 금융업 하는 사람들이었지.”

“뭐, 금융? 은행에서 형한테 무슨 볼 일이 있었지?”

준영은 하하 웃었다. 이 녀석은 곱게 컸구나.

“그게 아니고. 사채업자들.”

이번에는 진영이 와하하하 하고 웃어제꼈다. 맥주가 그의 손에서 출렁출렁거리더니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졌다.

“야, 너 그거 흘린다.”

그러나 진영은 신경도 안 썼다.

“이따 아줌마가 치울 거야. 신경 쓰지 마.”

“너, 여기 혼자 사냐?”

준영의 말에, 진영은 거실을 주욱 둘러보았다.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크지 않냐?”

진영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맥주를 입에 대더니 그대로 계속 마셔댄다. 맥주 한 캔을 다 마셔버린 진영은 손으로 입가를 스윽 닦았다.

“그럼 우리 같이 살까?”

준영은 깜짝 놀랐다.

“원래대로라면, 우리는 아기 침대에서 같이 컸어야 하잖아. 그때 못한 거, 지금 하자.”

진영의 시원시원한 말에 준영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럴까?’

“그럼 그렇게 하는 거다.”

진영은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가더니 싱크대에 맥주 캔을 던져 버렸다. 그리고 거실 저편에 있는 문으로 가더니 쑥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방에서 나온 진영은 준영에게 하얀 봉투를 던졌다.

“형, 이거 한 달 생활비.”

“뭐?”

“형도 돈이 있어야지. 그리고 이사올 때, 꼭 필요한 것만 챙겨. 나머지는 다 버려. 난 물건 많은 거 아주 질색이거든.”

준영은 봉투를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오백 만원이야. 절반.”

준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용돈 절반.”

준영은 사채업을 할 때는 그래도 돈 좀 만져보았었다. 오백만 원에 흥분되는 그런 심장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건 진영이가, 피를 나눈 형제가 자신의 돈에서 절반을 뚝 떼어 준 것이다.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고맙다.”

준영은 봉투를 넣었고, 진영은 그런 준영의 옆에 앉았다.

“그런데, 그 누구냐, 선경이라는 애하고는 아주 친했네?”

“그래.”

갑자기 준영의 목소리가 우울해졌다. 진영이 그런 형의 어깨를 툭 쳤다.

“형도 좋아했구나.”

“언제 나도 보여 줘.”


* * *


손진태는 이제 막 저녁 식사를 마쳤다. 옆에 정화와 혜정 그리고 병승도 함께였다.

진태는 마시던 물잔을 내려놓더니, 혜정을 쳐다보았다.

“혜정아, 요새 진영이하고는 잘 만나냐?”

혜정은 아버지에게 싱긋 웃어보였다.

“예. 잘 만나요.”

“피식.”

병승이 웃어버렸다.

“병승아, 왜 웃니? 무슨 일이라도 있니?”

정화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물었다.

“누나는 인생에서 행복이 최고랍니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진태는 병승에게 눈을 부라려보였다.

“너는 그런 거 신경쓰지 말고, 회사 일이나 더 신경 써라.”

병승은 진태의 말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빠는 나만 갖고 그래?’

그러나 병승의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속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혜정아, 아리랑의 이현석 회장은 나하고 죽마고우야. 너도 잘 알겠지만, 그 친구가 고생을 많이 했어. 나는 그래서 진영이에게 기대를 하는 거야. 아버지가 그만큼 고생을 했으니, 그 기질이 진영이에게도 있다고 생각해서…….”

“아빠, 그래서 정혼을 한 거에요?”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다. 혜정아, 나는 네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래,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야. 나도 전적으로 동의해.”

진태의 말이 혜정에게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그깟 남자 하나가 뭐라고…….’

“아빠, 진영 씨하고의 일은 걱정마세요. 제가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으니까요.”

“하하, 그럼, 그래야지. 너만 믿는다.”

진태는 모처럼 기분좋게 웃으며, 고개를 돌려 병승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병승은 아버지의 눈길에 절로 고개를 숙였다.


* * *


“왜 이 망할 놈의 택배는 바꿔도 속을 썩이냐고요? 대체 왜!”

윤영이 거실 한가운데에서 있는 힘껏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옆에서 미현이 안절부절하고 있다. 하나인 딸, 윤영의 성질을 알기 때문이다. 태권도 공인 3 단인 윤영이 택배 회사라도 찾아가서 난리를 치면, 분명히 그 뒷감당은 현석이 아닌, 자기가 해야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윤영아, 택배가 안 오니?”

그러나 윤영은 엄마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택배 회사 전화번호를 찾더니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고, 바로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상냥한 여자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나왔다.

“고객 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보세요? 택배가 하늘로 갔는지 땅으로 갔는지, 왜 안 오나요? 신경질나게스리…….”

“예? 고객님, 잠시만요. 이 번호로 찾아보겠습니다.”

전화기에서 잠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곧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나왔다.

“예, 고객님, 오래 기다리렸습니다. 여기 있네요. 최준영이라는 기사가 배달을 했다고 나옵니다. 배달된 걸로 나오는데요.”

“아니, 나는 안 받았는데, 배달이 되었다니…….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어요?”

윤영은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그 기사를 당장 바꿔요.”

“고객님, 최준영 기사는 그만두었습니다.”

이제 윤영은 곧 돌아가실 지경이 되었다.

“뭐라고? 지금 장난해?”

전화기 너머의 여자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진 윤영은 더 밀어붙였다.

“여보세요, 당장 내 물건을 내놓던지,아니면 내가 그리 쳐들어갈까요?”

“아닙니다. 고객님, 이 건은 저희 소관이 아니고, 최준영 기사 문제이니까…….”

“그럼, 당장 그 기사 연락처를 줘요!”

윤영은 쩌렁쩌렁 고함을 질렀다.

“예. 원래 규정에 어긋나기는…….”

“규정? 내가 그리 쳐들어갈까요?”

“예. 알겠습니다. 010-XXXX-XXXX입니다.”

윤영은 전화번호를 순간 암기하더니,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윤영은 메모장을 열어 ‘최준영’이라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기록했다.

“너, 이제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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