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Gold)과 피(Blood)-9

by 윤금현

9 장.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면서, 최준영은 혼자 살던 원룸에서 이사를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영의 같이 살자는 제안에 동의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준영은 크게 괘념치 않았다. 자신의 선택으로 태어난 인생도 아니었고, 자신의 선택으로 택한 부모도 아니었기 때문에, 준영은 앞으로 살 공간도, 특별히 자신이 선택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다보니 모두 다, 작은 추억이 엮여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러나 준영은 아낌없이 그것들을 버렸다.

“이것도 버리고……. 이것도 버리자.”

백 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물건들이 하나씩 던져지면서, 그 커다란 봉투가 점점 채워져갔다. 그리고 그만큼 준영의 마음은 비워져만 갔다. 결국 커다란 여행용 가방 하나하고, 백팩 하나만 남았다. 준영은 그걸 방 한구석에 치워 두고 홀로 덩그러니 남은 간이침대에 벌렁 누웠다.


고등학교 2 학년 때 가출을 하고, 거리에서 만난 비슷한 또래들과 친구가 되고, 나쁜 짓도 하고, 돈이 생기면 여관에 가기도 하고, 돈이 없으면, 길거리 구석진 곳이나, 비어 있는 건축 현장 같은 곳에서 잠을 자기도 했었다. 그러다 예전에 자기를 찾아왔던 사채업자를 찾아갔고, 거기서 2 년 정도 굴렀다. 그 다음 군대를 가게 되었고, 군대를 마치고 나왔으나, 역시 갈 곳은 마땅치 않아서, 결국 예전에 일했던 사채업자에게로 다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쫓겨났고, 선경이 소개해 준 택배마저도 그만두었다.

‘참, 내 인생이…….’

준영은 뭐라 표현을 하고 싶었으나, 머리에 특별한 말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상관없어. 이제 친형제와 사는 거야.’


* * *


“어이구, 이게 누구십니까?”

최종환은 사무실로 찾아온 남자를 너무나 반갑게 맞았다.

“잘 지내셨습니까?”

이현석은 최종환에게 인사를 했다.

“나가시죠. 이제 점심 시간인데, 마침 잘 되었습니다.”

종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같은 사무실의 직원들에게 먼저 나간다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직원들이 일어나 식사 맛있게 하시라고 말들을 했다.

“마포구청에 거의 20 년 정도 계시지 않나요?”

현석이 종환에게 물었다.

“그렇죠. 그 정도 될 겁니다.”

“준영이도 이제 17 살이겠습니다.”

현석의 말에 종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본 현석은 서둘러 이야기를 꺼냈다.

“둘째 녀석도 지금 한참 말을 안 듣고 있습니다.”

그제야 종환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아무리 입양을 했다지만, 현석은 준영의 친부이다. 종환으로서는 조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 음식이 괜찮지요?”

“네. 잘 먹었습니다.”

현석은 종환에게 웃어보인 다음, 양복 안주머니에서 하얀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 봉투를 테이블 위에서 종환 쪽으로 밀었다.

“이제 제가 돈을 좀 벌었습니다. 앞으로 매달 드릴 생각입니다.”

종환은 심히 당황스러웠다.

“이게 대체 뭡니까?”

“준영이 부양비라고 생각해도 좋으시고, 아니면 준영이 앞으로 저금을 해 주셔도 좋습니다.”

“저금이라고요?”

“그때는 정말로 가난했었는데, 지금은 어찌 된 일인지 살림이 풀려, 돈을 잘 벌고 있습니다. 직접 키우기는 못했지만, 그래도 준영이에게 뭔가를 주고 싶습니다. 부탁입니다.”

현석은 얼굴에 난처한 빛을 띄우며, 종환에게 간곡히 부탁을 했다.

종환은 봉투를 끌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이건 준영이 앞으로 저금을 해 두겠습니다.”

종환은 거절을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여보, 이거 말이야…….”

종환이 내미는 봉투를 받으며, 순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뭐에요?”

순화는 봉투를 열어보더니, 깜짝 놀랐다.

“이거 백만원짜리 한 다발이네요.”

종환은 그저 웃기만 했다.

“이이가……. 당신 뇌물 받았어?”

순화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아니야, 아니야.”

종환은 손을 내저으며 극구 부인했다.

“그럼 뭐에요?”

“그건 말이야…….”

종환은 순화에게 이현석과 점심 식사를 한 이야기를 했다.


* * *


“비도 오는데, 다 같이 한 잔 할까?’

진태는 오늘 기분이 좋은지 집에 들어오자마자, 전 가족을 불렀다.

정화는 주방에서 뛰어나오며, 진태의 옷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주방 쪽을 보았다.

“술상 좀 봐줘요. 막걸리하고 파전 있어요?”

“사모님, 막걸리는 있고, 파전은 금방 부치면 되요.”

싱크대와 아일랜드 식탁 앞에서 일을 하고 있던 두 명의 가정부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혜정아, 병승아.”

진태는 요란스런 소리로 두 자식들을 부르며, 식탁 의자에 털석 앉더니, 정화의 손을 끌었다.

“옷은 저기다 던져 두고, 여기 좀 앉아 봐. 내 오늘 할 말이 있어.”

방에서 나온 혜정과 병승이 식탁에 앉았다.

“저기 문 좀 닫고.”

진태의 말에, 정화가 식사를 하는 공간과 주방 사이의 미닫이 문을 닫았다.

“혜정아, 너는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랬지?”

“네, 아빠. 그런데요?”

“그럼 너는 내가 왜 진영이를 골랐는지 알겠니?”

혜정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건 말이야. 일단 술 먹기 전에 얘기를 끝내자. 그래야지 기분좋게 술 마실 수가 있지 않겠니?”

병승은 옆에서 하품을 해댔다. 아빠가 또 시작이라는 표정이다.

“이놈 자식이, 아빠가 말하는데…….”

진태가 눈을 병승에게 부라렸으나, 병승은 본 체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진태 회장이 하나도 안 무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 얘기하세요.”

“그래. 나하고 현석이하고 친구인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실은 말이야. 돈이 없는 집 자식이 우리 집에 들어와 봤자, 문제가 생겨.”

“왜요?”

“돈은 말이야. 상당히 무거운 물건이란다. 돈이 없이 자란 사람은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네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남편에게 신경을 안 써야 된단다. 남자란 말이야…….”

진태는 이 말을 하면서 정화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그러자, 정화의 얼굴에 찬바람이 휙 하니 불었다.

“하하, 남자란 말이야……. 어느 프랑스 여자가 그랬더라. 남자란 인간과 동물의 중간이라고…….”

혜정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고, 병승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했다.

“돈 문제로 속 썩이는 남편, 이거 아주 문제다. 알겠지?”

“아빠, 그만 하세요. 충분히 알고 있어요.”

진태는 혜정의 어깨를 툭 쳤다.

“그래. 너는 내가 믿는다.”

옆에 앉은 병승의 입이 댓발이나 나왔다.

“병승아, 너도 믿지. 그러니 내가 회사를 맡기려고 하잖아, 이 녀석아.”

“혜정아, 난 말이야. 네가 편하게 살았으면 한다. 그래서 부잣집 아들을 고른 거야.”


* * *


“이것도 좀 먹어보세요.”

미현은 현석에게 고기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 그런 미현이 현석의 눈치를 살살 살핀다.

“대체 왜 그래? 오늘 무슨 일 있어?”

“여보…….”

현석은 숟가락을 놓았다.

“그래 말해 봐.”

미현은 윤영의 얼굴을 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들어가 봐라.”

윤영은 부모의 심상찮은 표정을 보더니, 살그머니 의자에서 일어나 2 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녀는 절반을 올라가서, 층계참에 살짝 숨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아래층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 그만 두었…….”

“뭐……. 어떻게…….”

“윤영이……. ……. …… 택배…….”

“윤영아!”

현석의 고함 소리에, 윤영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쿵 소리가 났다.

“너, 이리 와봐!”

윤영은 급히 1 층으로 다시 내려갔다.

“택배 기사 이름이 뭐라던?”

현석이 윤영에게 물었다.

“최준영.”

현석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래, 그만두었다고 하더냐?”

“아빠, 대체 왜 그래요?”

미현의 눈이 벌써 빨개지고 있었다.

“엄마, 왜 그래?”

“엉엉엉.”

미현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현석은 천장만 쳐다보았다.

“그럼 어디로 갔을까?”

현석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나왔다.

“정말 얘기 안 해줄거야?”

이제는 윤영이 큰소리를 쳤다.

“윤영아, 걔가 네 친오빠다.”

미현은 눈물을 닦으며, 윤영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