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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Nov 20. 2024

서울 기생관광 vs. 도쿄 성매매관광

[윤경민칼럼] 서울 기생관광 vs. 도쿄 성매매관광


# 1.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아르바이트로 관광가이드 보조 일을 하며 겪었던 충격. 한국인 여성 관광가이드와 함께 김포공항에 도착, 일본인 중년 남성 3명을 마중하는 것으로 일이 시작됐다. 관광객 3명은 기억을 더듬어보면 지금의 내 또래 정도였다. 토목건축 관련 회사 간부였고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 관광을 온 것이었다, 김포공항에서 승합차를 함께 타고 올림픽대로를 내달렸다. 서울의 야경을 만끽하며 강남 모 호텔에 도착, 커피숍에는 20대 중반의 아름다운 한국인 여성 세 명이 남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와 내가 남성들의 체크인 수속을 밟는 동안 중년 일본인 관광객 남성들은 젊고 섹시한 한국인 여성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체크인이 끝나자 그들은 각자 짝을 지어 객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 관광 일정을 위해 호텔에 도착해 기다리는데 어제의 그 짝끼리 팔짱을 낀 채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말로만 듣던 '기생관광'이었다. 변형된 기생관광. 

# 2. 

1990년대 중반, 기자 초년병 때의 일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학 때 아르바이트 경험을 떠올리며 일본인의 한국 기생관광 실태 취재에 나섰다. 일본 유학과 직장 경험이 있는 카메라기자가 나와 함께 일본인으로 위장했다. 서울 시내 모 호텔에 전화를 걸어 출장 온 일본인 두 명이 한국인 여성 두 명을 찾는데 소개해달라고 주문, 현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와 카메라기자는 일본인인 것처럼 행세하기 위해 둘이서 일본말로만 하기로 했다. 호텔 커피숍에 도착하니 우리를 알아보고 직원이 젊은 여성 두 명을 테이블로 안내했다. 20대 초중반의 세련된 여성들이었다. 일본어는 거의 하지 못했다. 우리 둘은 소매 안쪽에 장착한 몰래카메라로 현장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빠짐없이 촬영했다. 백업용으로 커피숍이 바라다보이는 건너편 건물에는 또 다른 카메라기자가 ENG카메라로 촬영 중이었다. 카메라기자의 소매에는 와이어리스 마이크가 숨어 있었다. 혹시 들키면 어쩌지 하는 긴장감 속에 우리의 대화는 지속되었다. 여성들은 빨리 객실로 올라가자고 채근했다. 우리는 흥정을 시도했다. 실제 객실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거기서 충분히 성매매 직전의 흥정이 이뤄지는 장면과 녹취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우리를 안내한 호텔 직원이 만류하며 흥정의 중재자 역할까지 해 곤혹스러웠으나 우리는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우리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기자들이었음을 들키지 않아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 3. 

도쿄 특파원이었던 2000년대 중반. 도쿄 아카사카의 한 한국 '크라브'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 20대 후반의 이 여성은 한국에서 은행원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다단계에 잘못 빠져 적지 않은 빚을 지게 되었고 그 빚을 단기간에 갚기 위한 방법으로 일본 유흥주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도쿄로 왔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수입이 꽤 괜찮아 욕심이 생겼다며 곧 1억 원을 벌어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 4. 

일본인 여성 80여 명을 입국시켜 국내에서 성매매를 알선한 한국인 두 명이 지난달 말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들은 온라인 사이트에 '열도의 소녀들'이라는 제목의 광고를 올려 성매매를 알선, 6개월 동안  성인물 배우를 포함한 80여 명의 일본인 성매매 여성을 고용해 약 3억 원의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 5. 

2024년. '아시아의 새로운 섹스 관광의 수도, 도쿄에 온 걸 환영합니다'.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11월 17일 자 기사 제목이다. SCMP는 "일본 경제 호황기 때는 일본 남성이 가난한 나라의 여성이 제공하는 금지된 쾌락을 위해 해외로 떠났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의 경제불황, 엔화 약세를 원인으로 꼽았다. 

30여 년 사이에 180도 달라진 풍경이다. 1990년대 초 거품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을 거치며 쇠락의 길을 걸어온 일본, 그 사이 일본을 따라잡고 넘어선 한국. 올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만 봐도 한국이 3만 6천132달러로 일본의 3만 2천859달러를 크게 앞섰다. [국제통화기금, IMF가 지난달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보고서] 

성매매를 소재로 한일의 경제력을 비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기생관광이라는 오명이 다시 현실에 소환되지 않을 만큼 우리 경제는 앞으로도 튼튼할 것인가. 초저출생, 인구절벽, 지역소멸, 저성장이라는 한국경제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리는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지금의 역전에 결코 만족해서는 곤란하다. 위기를 타개할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면 언제든 다시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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